10월 6일 전남 여수시 웅천친수공원 요트 정박장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긁어내는 작업을 하던 특성화고교 3학년 홍정운군이 현장 실습 중 숨졌다. 현장에는 지도교사도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매일같이 노동 현장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지는 한국에서 김숨의 신작 <제비심장>은 픽션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제비심장>은 김숨이 소설 <철> 이후 13년 만에 조선소를 배경으로 쓴 알레고리 소설이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와 하루살이 여성 노동자, ‘철상자’로 표현되는 조선소 내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주제로 한 연작소설을 장편으로 묶었다.
빛도, 바람도, 공기도 통하지 않는 철상자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주 길을 잃는다. 물을 많이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 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는 하루 노동량을 채울 수 없기에 이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일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조퇴를 청하면 반장은 “집에 가서 영원히 쉬”라고 일갈한다. 뛰지 않으면 오늘 안에 끝낼 수 없는 업무량을 줘놓고, “뛰지 말라” 외치고, 넘어져 다치면 “그러게 뛰지 말라 하지 않았냐”며 펄쩍 뛴다. 70년대 대표 노동소설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거칠게 비교한다면 <제비심장>에 묘사되는 오늘날의 노동 현장은 고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피아 구분을 할 수 없다. 조선소는 하청 업체에 일을 주고 하청 업체는 반장에게 재하청을 준다. 21세기 플랫폼 노동자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고 고용주들은 거대한 모니터 뒤에 있듯이 조선소 계층도 여러 겹으로 나뉘어 있다. 도장공, 발판공, 용접공, 샌딩공, 단열공 등 제각각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피와 근육과 뼈를 녹여 철배를 짓는다. 이들은 서로 자기 일이 다른 작업보다 덜 위험하다고 자조한다. “우리 일이 훨씬 나아. 폐병이 들어 수명이 줄어도 근육이 파열되는 포설공보다 낫”다고.
어째서 쇳덩이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걸까.(362쪽) 언론이 노동 현실을 고발한다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발은 있지만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소설은 인간으로 남기 위해 노래를 하자고, 서로를 껴안아야 한다고 쓴다. 우리는 부품도 철도 아니고 피가 흐르는 사람이니까. 현재의 한국문학이, 21세기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무언가가 김숨의 소설에 있다.
현실에 직면하기
조선소에서 철배를 만드는 우리는 세 부류로 나뉜다. 정규직 노동자, 하청 업체에서 파견한 노동자, 하청 업체에서 재하청을 받는 물량팀에서 파견한 노동자. 나는 물량팀 노동자다. 망치공, 용접공, 샌딩공, 배선공, 파워공, 취부공, 도장공, 발판공, 불 감시자. 하는 일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 우리는 조선소에서 일하지만 조선소에서 임금을 받지 않는다. 박 반장 같은 물량팀 반장들이 우리에게 임금을 준다. 조선소가 아니라 반장들이 우리를 고용했기 때문이다. 조선소에서 하청 업체에 하청을 주는 것은 노동자들을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인건비가 적게 들어서다.(47~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