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대지, 어머니, 여신’을 상징하던 시절에는 남성과 대등한 관계였을까. <제2의 성>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대지, 어머니, 여신은 인간 질서의 바깥에 있는 상징이고 공적 사회적 질서는 남성의 몫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 여신이 아무리 중요해도 최고의 왕은 남성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태양신 ‘라’인 것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농경사회에서 재생산이 중요해지며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떠맡고 가정에 묶인 후로 여성들은 재산권이나 교육의 기회 등 공적 영역에서 소외되었다. 여성들이 그나마 두각을 드러낸 분야가 문화예술이나 종교 분야처럼 상징과 맞닿은 우회적 분야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생산 방식의 혁명이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오면서 여성이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또 과학의 발전으로 임신과 출산을 통제하게 되면서 여성의 지위도 달라진다. 물론 19세기 내내 이어진 개혁 운동과 투표권 쟁취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제2의 성>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1권에서는 역사와 신화 등 여러 방면에서 여성 억압을 고찰하고 2권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여성의 경험을 탐구한다. 여자 어린이는 자신을 절대적 주체로 여기고 있지만, 세상은 일찍부터 여자 어린이에게 남성 중심적 위계로 구성된 세상을 보여준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른 공포에 시달리는 한편 사춘기가 오며 변하는 몸에 쏟아지는 이런저런 세상의 품평과 월경이라는 충격적 경험도 겪는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라는, 이 책을 유명하게 만든 문장이 보여주듯, 핵심은 여성이 어른이 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적 여성성이 여성에게 상처와 모순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겪는 심리적 혼란과 신체 혐오, 학창 시절의 동성애, 모녀 관계 등의 주제를 여러 문학적 사례들에서 끌어오며 풍부하게 분석하는 부분은 여성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에 대한 통찰을 넉넉히 제공한다. 제대로 판권 계약을 하고 전공자가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되었다는 사실도 반갑지만, 고전이란 현대에도 계속 읽힐 만한 가치가 있기에 고전으로 꼽힌다는 점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책이다.
보부아르의 말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여자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내세워야 할 것은 그녀의 상황이지 신비스러운 본질이 아니다.”(9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