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김종분 여사는 단 한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다
2021-11-11
글 : 김현수
사진 : 최성열
<왕십리 김종분> 김진열 감독

왕십리역 11번 출구에서 행당시장 입구쪽으로 직진해 걷다보면 50년 넘게 한자리에서 노점상을 꾸려온 김종분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한자리에서 50여년 동안 장사를 해온 이력도 대단한데 김종분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욱 놀랄 역사가 펼쳐진다. 누가 알아챘더라도 영화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은 할머니의 삶을 주목한 건 <잊혀진 여전사>(2007), <나쁜 나라>(2015)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진열 감독이다. <오마이뉴스>에 소개된 기사를 보고 할머니, 그리고 그의 둘째딸 김귀정 열사에 관한 소식을 접한 감독은 “처음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생애 구술을 영상으로 담아보면 좋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접근했다가 마침 2021년이 김귀정 열사 30주기라는 걸 알게 되어서 추모사업회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4월경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1960년대에 서울로 시집을 오면서 왕십리에 지금의 노점 터를 잡고 1남2녀를 키워왔던 할머니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 건 1991년 5월, 정권 퇴진 시위를 벌이던 성균관대생 김귀정씨가 경찰의 폭압적인 진압에 내몰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다. “김귀정 열사와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인터뷰를 하고 작품에 담았지만 결국 지금까지 노점을 운영하고 계신 종분 할머니의 삶이야말로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김진열 감독은 영화 전체의 방향이 할머니로 향하도록 김귀정 열사에 관한 이야기와 할머니의 노점 인생을 적절히 배치해야 했다.7남매의 장녀로서 대가족을 이끌고 살아온 할머니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영화 곳곳에서 가족과 친척,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할머니가 버틸 수 있었던 것, 딸을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무얼까 궁금해 지켜본 결과 할머니 인생에서 할머니 혼자만 남겨진 순간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는 김진열 감독의 말처럼 할머니의 주변은 일상이 잔치를 치르듯 정신이 없다. “노점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찍다가 지인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 거리를 정리해야 할 정도”였던 촬영 현장에 어느 날은 30년 만에 빌린 돈을 갚겠다는 행인도 나타났고 그것이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 누구보다 든든한 손녀딸도 할머니의 노점을 종종 찾아와 건강을 살피고 간다. E채널의 <노는언니>에 출연해 대중에 잘 알려진 수영선수 정유인이다. 김진열 감독은 김종분 할머니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면서 “김귀정 열사의 추모사업회가 지금까지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당시 그녀의 선후배들이 그 성품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김귀정 열사의 성품은 종분 할머니에게서 온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됐다”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도 진출해 할머니와 가족들이 직접 부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영화 개봉 후에 왕십리CGV에서 상영이라도 하게 되면 관객에게 가래떡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하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도 가족들이 낼 정도”로 할머니의 삶을, 그리고 김귀정 열사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어머니의 위대함이야말로 <왕십리 김종분>을 보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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