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성 감독의 야구 사랑은 그의 초등학교 4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던 베이스볼 키즈에게 “당시 야구라는 스포츠 전체를 지배한 최동원 선수”는 영웅 그 자체였다. 10년 전 최동원 선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를 기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조은성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웅에게 연서를 띄웠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1984 최동원>이 시작됐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1984년 한국 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이끈 최동원 선수의 투혼을 다룬다. 최동원을 아는 세대는 추억을 되새기고, 그를 잘 모르는 세대도 흥미롭게 경기를 관전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일대기를 다루는 대신 한국 시리즈가 치러진 열흘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동원 선수는 자기 생의 화양연화가 언제라고 생각할까. (1984년의) 그 열흘을 떠올릴 것 같았다.” 최동원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생생히 기록하기 위해 조은성 감독은 당시 경기에 참가한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 감독, 구단의 팬과 야구 전문 기자까지 다양한 인터뷰이를 섭외했다. “야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KBS스포츠에서 야구 프로그램을 연출한 적이 있어 섭외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최동원 선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했을 때 할 말 없다며 거절한 분이 한명도 없었다.” 그중 최동원 선수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같은 관계였던 삼성의 김시진 선수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한국 시리즈에서 결국 단 한번도 최동원 선수를 이기지 못했음에도 그를 가장 그리워하신다. 영화의 진정한 화자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의 내레이션은 롯데 자이언츠의 오랜 팬인 배우 조진웅이 맡았다. “‘무조건 내가 할 거니까 다른 사람 섭외하지 말라’며 달려와선 진심을 가득 담아 내레이션을 해줬다.” 영화는 경기 흐름을 자세하게 짚는 대신, 짧은 호흡의 편집으로 경기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일부 신은 경기 내용이나 최동원 선수의 구질 등에 관한 인터뷰이의 설명에 경기 영상을 붙이는 방식으로 박진감을 더한다. “원하는 답을 의도적으로 유도하진 않았다. 대신 그 말이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리고 나중에 그에 맞는 영상을 찾아 편집했다. 그게 다큐멘터리의 미덕이지 않나.” 자료의 절반 이상은 KBS미디어의 도움을 받았고 유족들에게서도 17개가량의 비디오 영상을 제공받았다. “임호균 선수는 자신의 아들 돌잔치 때 최동원 선수가 노래를 부른 영상을 전달해줬다. 경기장에선 한없이 날카롭지만 일상에선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었단 걸 알게 됐다."
최동원 선수가 은퇴한 뒤 그라운드에 올라서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자료를 조사하며 우연히 찾은 정말 귀중한 장면이다. 유니폼을 벗는 순간 선수들은 자신의 평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더라. 가슴이 먹먹했다. 관객이 텅 빈 그라운드의 공백을 느끼길 바라서 일부러 긴 호흡으로 그 신을 편집했다.” 조은성 감독의 차기작 리스트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 그리고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올라가 있다. 야구에 대한 감독의 사랑이 또 다른 새로운 창작물로 피어나려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