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서프라이즈!” 어두운 골방에 틀어박혀 붉은 가발을 뒤집어쓰고 걸걸한 목소리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BJ 이동욱의 정체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지옥>의 첫화부터 독특한 비주얼로 시선을 잡아끌더니 마지막화에서 반전을 선보이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곡성>에서 성직자, <반도>에서 주인공 정석(강동원)의 매형을 연기한 김도윤이다. 그는 <반도> 촬영이 끝난 뒤 연상호 감독으로부터 <지옥> 출연을 제안받았다. <염력> <반도>, 그리고 드라마 <방법>에 이어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네 번째다. 그가 맡은 동욱은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유아인)만큼이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동욱은 새진리회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집단 ‘화살촉’에 올바르지 못한 방향을 제시하고 폭력성을 증폭시키는 캐릭터다. 그는 정진수 의장의 ‘공포’에다 ‘분노’까지 더한 전략을 편다. “동욱은 ‘분노가 우리의 힘’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선을 이루는 대의를 위해서는, 다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어찌 보면 동욱은 새진리회보다 더 급진적이다.”
“인터넷 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인 동욱을 표현하기 위해 김도윤은 한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관찰하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 본연의 모습과 멀어질수록, 시리즈 초반과 후반의 모습이 딴판일수록 캐릭터의 생동감은 더 커졌다. 특히 웹툰에서 흑백으로 묘사된 BJ 이동욱의 화려한 외양은 오직 시리즈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김도윤은 입술을 초록색으로 칠하고, 동공이 작아 보이도록 렌즈를 껴서 외적인 변화를 주었다. 목에 힘을 주고 긁는 듯한 톤으로 평소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르게 표현하기도 했다. 원작 웹툰에선 이름 없이 그저 ‘추장 모자’로 불렸던 캐릭터는 그의 연구 끝에 “기괴하고 섬뜩한 보이스”를 입게 되었는데, 외국 종교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모습을 영상으로 접하고 동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거친 목소리가 “최종화에서 동욱이 맨얼굴로 돌아왔을 때 못 알아보게 만드는 장치가 될 거”라고 봤다.
<지옥>은 그동안 김도윤이 연기해온 피해자 캐릭터에서 살짝 비껴간 인물이다. 혼란에 빠진 부제(<곡성>), 좀비와 숨바꼭질하는 소시민(<반도>), 2세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목숨을 잃는 형사(<방법>)와 달리 동욱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다. 박정자(김신록) 가족의 신상 정보를 까발리면서 조리돌림을 하고, 배영재(박정민), 송소현(원진아) 가족에게는 물리적 위해까지 가하는 인물이다. 불안하고 유약했던 이전 캐릭터와 달리 스스로에게 도취된 상태로 “나는 지금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야”라고 내지르기도 한다. 오컬트, 재난블록버스터 등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을 여럿 연기해왔으나 그중에서도 <지옥>은 그에게 하나의 변곡점이 될 작품이다.
그렇다고 김도운이 반드시 ‘센 영화’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어쩌다보니 장르영화를 많이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고, 어떤 장르의 전문 배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떤 작품이든 처음 연기를 시작해서 연극 무대에 설 때 배운 대로 “곰처럼 무식하게 연기하려고 한다”. 연상호 감독은 어느 때부턴가 배우들에게 다른 배우가 연기한 모습을 보여주며 연기 자극을 주곤 하는데, <반도> 때는 그가 연기한 숨바꼭질 장면이 단골로 재생되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장르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종교적인 테마가 깔린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곡성>의 부제에 이어 <지옥>에서는 신흥종교에 심취한 인물을 연기하게 됐는데, 김도윤 스스로는 기독교인, 그것도 모태신앙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접하고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덕분에 여러모로 연기에 도움이 되었다.김도윤은 주변부에서 슬쩍 나타나더라도 반드시 한방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이제는 극 전반을 이끄는 배역이 욕심날 법도 한데 그는 “조급함은 없다. 천천히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오고 싶다”라고 답했다. 올 한해도 부지런히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그를 보니, 그가 말한 상승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지옥> 연상호 감독이 말하는 배우 김도윤
“성실함과 예민함을 몸 안에 품고 연기하는 연기자다. 특유의 창의성을 가지고 역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현장에서 보여주는 에너지가 대단하고 그 뒤편으로 끊임없이 고민한다. 더 다양한 톤의 영화에서 김도윤 배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2019 <반도> <럭키 몬스터>
2017 <혐오돌기> <7호실>
2016 <곡성>
2012 <26년>
2012 <마이 라띠마> <하울링>
드라마
2021 <지옥>
2020 <도시괴담>
2017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연극
2011 <대한국인 안중근>
2010 <별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