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킹메이커' 서은수, 투지의 왕
2021-12-22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대사를 부산 사투리로 해도 될까요?” 서은수는 변성현 감독이 쓴 <킹메이커> 시나리오를 받고 이렇게 물었다. 변성현 감독의 전작을 좋아하는 데다 함께하는 선배 배우들의 이름을 듣고 속마음으로는 “대사가 없어도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기뻤지만, 그는 약간의 디테일을 더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김운범(설경구) 캠프의 젊은 선거운동원 수연은 본래 서울말을 구사하는 캐릭터였다. “이 보좌관(전배수)도 사투리를 쓰는데 수연도 지방에서 김운범을 돕기 위해 서울로 온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정치 현장에서 선거 캠프가 꾸려지면 각지에서 온,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데 마침 부산에서 온 캐릭터가 없기도 했다. 변성현 감독은 “부산 사투리를 쓰는 캐릭터가 없으니 대사를 바꿔도 좋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부산 사투리라면 자신 있는 서은수는 그길로 대사의 어미를 모두 바꾼 뒤 변성현 감독에게 보여줬고, 리딩 때 그가 손질한 대사로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가 맡은 수연은 관객에게 신호를 던지는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과거사를 다룬 작품은 대개 역사적 인물과 배경에 대해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설명을 곁들이지만 <킹메이커>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대신 수연이 그 빈틈을 메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김영호 의원(유재명)이 처음 등장할 때 캠프 막내 수연이 가장 먼저 알아보고 ‘최연소 국회의원에 최연소 원내총무’를 지낸 그의 이력을 관객에게 빈틈없이 짚어주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수연은 열정이 넘쳐서 온갖 궂은일에도 열심이고, 정치판에 남자들이 많았던 시대에 어리지만 강단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서은수는 작품 전체에서의 기능뿐 아니라 수연만의 서사도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작품 초반에 수연은 서창대(이선균)의 선동에 크게 동하고 따르지만, 여의도 생활을 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을 쌓아나가고 서창대를 반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서은수는 “처음 수연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고 눈치를 보고 목소리도 조용조용했다면, 뒤로 갈수록 자기 목소리를 내고 의견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대사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런 차이를 넌지시 드러내려고 했다.

인턴 변호사(<리갈하이>), 결혼을 앞두고 실종된 여자 친구(<미씽: 그들이 있었다>), 출생의 비밀을 가진 이란성 쌍둥이 동생(<황금빛 내 인생>) 등 방송 드라마에서 여러 캐릭터를 시도한 서은수는 <킹메이커>로 “제대로 참여한 첫 상업장편영화”를 갖게 되었다. <너의 결혼식>에서 주인공의 새 여자 친구로 잠시 등장하긴 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김운범 캠프의 일원이 되는 경험은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나이대가 이렇게 차이나는 선배들과 호흡한 것도 처음이었고 선배들의 연기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리고 “‘라떼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첫 영화인 <킹메이커>의 첫 촬영을 그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선거운동을 위해 갯벌에서 일하고 있는 주민들을 향해 걸어가던 수연이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당차게 외친 뒤 발이 빠져 고꾸라지는 신이 있는데, 서은수는 이 장면을 가장 먼저 촬영했다. 그는 이날 난생처음 갯벌을 경험했다고 한다. “‘액션’ 때는 분명히 잘 서 있었는데 ‘컷’ 하고 나면 무릎까지 갯벌에 잠겨 있었다.”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젊은 세대를 표현하기 위해 “요즘 입어도 세련된 정장”을 맞춰 입고 수연으로 분했던 그는 첫 촬영 때 그렇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갯벌에 몸을 던졌다. 고증 차원에서 ‘배 바지’를 입은 김운범을 표현하고자 “의상팀이 설경구 선배의 바지를 추켜올렸다”고 그는 회상했는데, 그 역시 갯벌로 자꾸만 빨려들어간 탓에 스탭들에 의해 다른 의미로 끌어올려졌다.태어나서 대선 투표라곤 딱 한번 경험해봤다는 서은수, 이제 그는 첫 영화의 개봉을 준비하며 차기작을 물색하고 있다. 순수하고 발랄했던 수연이 정치판에서 점점 더 단단해졌듯이 서은수의 필모그래피도 곧 두터워지지 않을까.

스타일리스트 조보민·헤어 꽃비·메이크업 서옥

의상협찬 가브리엘 리, 딘트, 쥬세페자노티, YCH, 레이첼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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