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BEST OF 2021: 해외영화 BEST 5
2021-12-25
글 : 송경원

1위 <퍼스트 카우>

“역사의 모래 속에 묻힌 사람의 자리를 발굴하는 서부극”(김소희)인 <퍼스트 카우>는 “뉴 웨스턴의 최전선에서, 미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쓴 기념비적인 작품”(남선우)이다. 2019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국내에 공개되기 전부터 비평적 찬사가 이어졌고 마침내 도착하여 예정된 경탄을 안긴다. <퍼스트 카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지지를 받았다. 첫 번째는 영화가 품고 있는 온기, 인간과 우정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애정 가득한 무심함이라는 형용모순이 켈리 라이카트의 세계에서는 실제로 벌어진다”(김성찬), “우정과 존중, 집안일과 빵 굽기, 말없는 소와 잠든 친구에게 건네는 몇 마디 말로도 역사가 생성된다”(김소미), “소박하지만 삶에 꼭 필요한 것들, 이를테면 우연히 맺은 우정과 기름진 빵을 주재료로 삼아 아메리칸드림의 자본주의를 해부하는 솜씨가 섬세하기 그지없다. 어떤 뼈아픈 진실을 드러내건 간에 켈리 라이카트는 늘 영화에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내포해왔다”(남선우)는 평들은 이 부분을 지적한다. 상찬의 두 번째 근거는 이러한 주제를 아름답게 장면으로 표현한 정갈한 형식미에 있다. “<퍼스트 카우>는 이미지의 영화이고, 시네마의 자기 반영성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영화’이며, 의도된 ‘장치’를 거쳐 드러나는 물질적인 결과물이다. 켈리 라이카트 특유의 미니멀함은 장르뿐만 아니라 장치와도 연결되어 있다.”(이지현) 특히 “<퍼스트 카우>의 오프닝 시퀀스는 스크린에서 끝내 대구를 이루지 않지만 관객의 머릿속에서 그 어떤 영화의 오프닝보다도 분명하게 재생되기에 이른다. 그 충격적일 정도로 강렬한 미니멀리즘의 효과와 신비”(김소미)는 “기존의 서부극 영화가 보여줬던 시대와 방식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개척의 역사의 본질을 보여”(김현수)준다. 그렇게 켈리 라이카트는 “미국의 개척정신을 옹호하고, 폭력의 역사를 고발하는 두개의 시선으로만 존재해왔던 서부극에 새로운 시선과 접근으로 전인미답의 세계를 창조했다”(허남웅).

2위 <스파이의 아내>

오프닝부터 압도적이다. “서서히 줌인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음산하고 불안한 기운이 증폭하는 게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답다.”(김성찬) 구로사와 기요시의 첫 시대극인 <스파이의 아내>는 “첩보물과 역사물이라는 외피 이면에 맹목적인 멜로드라마를 펼쳐내는 아름다운 영화”(이보라)다. “고전 첩보물과 멜로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깨어나게 하는”(듀나) 장면들은 “초기 영화의 환각적 이미지, 첩보물과 멜로드라마의 장르를 교직해 시네마의 본질을 묻는”(김소미)다.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기운을 언제나처럼 우아하게 포착”(박정원)하는 이 영화는 장르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구로사와 기요시의 특질도 함께 품고 있다. “프레임 내 외부로 무엇을 보여줄지 말지에 대한 선택과 이를 통한 긴장을 구축, 응축시킨 뒤 결정적인 순간 에너지를 폭발”(오진우)하는 것이다. 한편 스파이의 이름을 빌려 부부의 세계를 파헤친 이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는 ”필름 이미지를 극중 인물들의 행적과 중첩시키는 메타 영화로도 손색이 없다”(남선우). “우아하게 모호하고, 비상하게 애태운”(남선우) 끝에 관객을 역사의 한 무대, 아니 영화 한가운데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전 혹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현존하는 고전 혹은 고전으로부터 탈출한 현재”(김소희)라고 불러 마땅하다.

3위 <그린 나이트>

<그린 나이트>는 “더이상 새로운 영화적 비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을 시기에 상상도 못한 비전을 보여준 영화이며, 영화의 미래를 긍정하게 된 영화”(김성찬)다. 데이비드 로어리 감독은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설화를 바탕으로 시네마틱한 장면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후로 이 장르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멋지게 뒤집는”(허남웅)다고 해도 좋겠다. 마치 고풍스러운 책 속에 잠든 아름다운 삽화처럼 한 장면도 버릴 게 없는 만큼 평자들의 상찬도 개별 시퀀스에 대한 고백으로 이어졌다. “후반부 가웨인 경이 녹색 기사에게 목을 내놓기 전,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영화적으로 풀어낸 몽타주 신은 압권”(배동미)이고, 손발이 묶인 채 숲속에 버려진 가웨인을 다루는 “360도 패닝숏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홍수정). 감히 오프닝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모든 컷이 비주얼 마스터피스라고 할 만하다. “한 인간의 성장담이자 쇠퇴담을 정확하면서 동시에 모호한 장면들로 그려낸”(김철홍) <그린 나이트>는 “현실과 환상, 실사와 CG, 이야기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장중한 걸음”(홍수정)으로 스크린의 가치를 증명한다. “올해의 A24 영화”(듀나)이자 시네마의 지층을 헤집고 들어가는, 시네마를 향한 모험담이다.

4위 <피닉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올해도 꾸준히 이어졌다. 2020년 <트랜짓> 개봉 후 팬들의 꾸준한 요구로 신작 <운디네>뿐 아니라 2014년 작품인 <피닉스>까지 개봉했다. 이로써 베를린 학파에 속하는 페촐트 감독의 역사 3부작인 <바바라> <피닉스> <트랜짓>이 모두 정식으로 국내 관객과 만났다. <피닉스>는 “전후 베를린을 무대로 크리스티안 페촐트가 직조한 한편의 우화”(김소미)다.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를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낸”(오진우)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한 여인의 얼굴을 통해 이야기한다. 재건된 얼굴, 변하지 않는 목소리,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한 여인의 신체를 통해 독일의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오진우)은 실로 놀랍다. “도시의 공간과 색채와 동선. 멜로드라마의 서사 위에 새긴 역사 인식. 그 모든 것을 우아하게 직조하는 크리스티안 페촐트”(홍수정) 감독은 “거짓과 폐허를 향한 검붉은 노래. 기품과 깊이 모두를 성취했다”(박정원). “비극을 품고도 절대로 망가지지 않는 인물들의 숭고함, 그리고 그 희망을 놓지 않는 영화의 존재가 아득할 정도로 고마울”(이보라) 따름이다.

5위 <바쿠라우>

영화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바쿠라우>는 이 난해한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다. 하드보일드, 공포, 디스토피아 서부극, 심지어 묵시록적 SF까지, 칸국제영화제 공개 당시 <바쿠라우> 앞에 붙은 다양한 수식어만 봐도 영화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극적인 불꽃을 일으키고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들이밀 때 영화는 새롭게 태어나는 법이다. “공장식의 깔끔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영화들이 표준이 되면서 기이한 에너지의 작품은 사라진 존재처럼 되었다. <바쿠라우>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서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형태로 순수한 영화적 재미를 제공한다.”(허남웅) <바쿠라우>는 “불온한 상상력과 순수한 파괴력”(남선우)이 공존하는 영화다. “올해 만난 영화 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시청각적 흥분을 주었던 영화”(김성찬)인 동시에 “폭력의 원심력을 탐구하는 탈식민주의 텍스트가 2010년대를 거치며 도달한 환각적 결론”(남선우)이기도 하다. “특이한 소재들의 결합, 예상할 만하면 뒤틀리는 전개, 세계의 현실을 상기시키는 대목들까지, 기이한 재료들을 천연덕스럽게 섞어”(남선우) 마침내 브라질의 현재, 세계의 진실에 당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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