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사라졌다. 이렇게 심경 고백을 해도 좋을 만큼 2021년 한국영화의 풍경은 쓸쓸하다. 단지 물리적으로 개봉 편수가 줄어든 것뿐만이 아니다. 극장으로 관객을 모아줄 상업영화들은 여러 이유로 개봉을 연기했고, 눈에 띄는 신작도 없었다. 베스트10선에 대중상업영화가 <모가디슈> 한편밖에 없다는 점이 한국영화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홍상수 감독은 시류에 상관없이 꾸준히 존재 증명을 해나가고 있다. 올해의 영화 1, 2위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나란히 꼽힌 건 홍상수 감독에게 비약적인 변화가 찾아와서가 아니다. 차라리 홍상수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이 후퇴했기 때문이라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가 3위에 꼽힌 건 고무적이다. 한국영화에서 쉽게 시도하기 힘든 로케이션 등 외적인 요소도 충분하지만 감독 류승완의 원숙미와 절제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점 역시 미덥다. 4위를 차지한 이란희 감독의 <휴가>는 올해의 장편 데뷔작이라 할 만하다. 익숙한 듯 새로운 이 영화는 노동 투쟁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끝끝내 인간의 얼굴을 발견한다. 5위에 꼽힌 장우진 감독의 <겨울밤에>는 지금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믿음직한 연출자가 누구인지 새삼 일깨우는 작품이다.
6위는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다. “무엇이 책이 되고 무엇이 영화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감독의 대답”(김철홍)이라고 할 수 있는 <자산어보>는 “역사의 큰길에서 비껴난 곳에서 소중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길어내는 이준익 감독의 아름다운 역작”(이주현)으로, “유연하게 확장되는 이준익 월드의 화를 지켜보는 즐거움”(장영엽)에 대한 상찬이 이어졌다.
7위는 권민표, 서한솔 감독의 <종착역>이다. “소박하지만 영화적인 야심이 느껴지는”(김현수) 이 영화는 종종 습작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몰래 들여다보아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아이들의 세계”(김소희)에 조심스레 다가간 끝에 결국 “어느 빛나는 시절 속 아이들의 활동성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홍수정). 아마도 “여름을 상기하면 반드시 떠오를 영화”(조현나)로 기억될 것이다.
8위는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다. “아쉽게도 코로나19의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극장용 필름”(이지현)이었기 때문에 온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지만 “거대한 의미에 짓눌리지 않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 조성희 감독의 영화적 색채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 기성품 같지 않은 매력”(이주현)이 있다는 평을 얻었다.
9위는 이승원 감독의 <세자매>다. “이승원 감독표 디테일한 대사와 배우들의 호연이 압도적인”(배동미) 이 작품은 “서로 고르게 바통을 주고받는 여자배우들의 전력과 협심으로 알뜰하게 들어찬 빛나는 앙상블 영화”(김소미)라는 평을 받았다.
10위는 김미조 감독의 <갈매기>와 변규리 감독의 <너에게 가는 길>이 뽑혔다. 그중 <너에게 가는 길>은 “여러 모로 끔찍했던 지금 이 시대에 그래도 앞으로 삶을 이어갈 낙천적인 힘을 불어넣어준 작품”(듀나)이란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과대, 과소 평가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과대, 과소 평가를 받을 만큼 주목도가 높은 작품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기권표가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