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의 전반적인 침체에도 올해 해외영화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을 불러모았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 좀더 다채로운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접촉면이 넓어진 부분도 있다. 올해 1위를 차지한 <퍼스트 카우>는 북미보다 상당히 뒤늦게 개봉되었지만 오래 기다린 만큼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는 반응이다. 특히 극장이란 공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슬로 시네마적인 특성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2위 <스파이의 아내>도 유사한 맥락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특유의 서스펜스 위에 한계까지 높인 화면의 밀도가 우아하게 관객을 잠식했다는 평이다. 3위의 <그린 나이트>는 스크린의 자리가 점차 희미해져가는 시대에 시네마의 지표와 같은 장면들을 제공한다. 그야말로 극장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환기시킨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4위 <피닉스> 역시 최근 극장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데, 작품이 좋다면 제작 시기와 무관하게 극장에 걸린다는 점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5위 <바쿠라우>는 낯설고 거칠지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2021년을 대표할 만하다.
6위 <아네트>와 7위 <운디네>는 근소한 차이로 5위권 바깥에 머물렀다. <홀리 모터스>(2012)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에너지는 여전하다. “뮤지컬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뮤지컬을 보여주는, 폭력적이고 음울하고도 수상해서 눈을 뗄 수 없는”(이보라) 이 작품은 “영화 매체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보여준다”(홍은애).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7위 <운디네>로 베스트10에 두편의 영화를 올린 감독이 되었다. 운디네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사랑을 그린 세련된 형태의 로맨스영화이자 사랑의 알레고리를 독일 통일의 과정으로 확장시킨”(오진우) 영화다. “탁월한 유려함과 환상성 안에서 도시에 새겨진 파괴와 폐허의 역사 위로 끝내 회복의 가능성을 가져다놓는다”(김소미).
8위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에 돌아갔다. 서부극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길 위에 자발적으로 머무는 노매드들의 삶을 통해 서부극의 이미지가 지워냈던 진짜 얼굴들을 복원시킨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자마>, 셀린 시아마 감독의 <쁘띠 마망>, 기욤 브락 감독의 <다함께 여름!>은 나란히 9위에 안착했다. 세편의 동률이 나왔다는 건 다양한 영화들이 거론되었다는 방증이다. <다함께 여름!>은 여름 휴가지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 사이 웃음과 위안을 안긴다. “등장인물간 관계를 가장 맑게 표현하는”(김성찬) 기욤 브락 감독의 카메라는 생기 넘치는 초상을 선사한다. <쁘띠 마망>은 단출하지만 정교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셀린 시아마의 시선과 영화적 형식이 조응한 최상의 경지”(김소미)를 선보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감각적인 최면과 체험으로 가득한, 매우 기이한 시간성을 지닌”(이지현) <자마>는 늦은 개봉에도 불구하고 2018년 영화잡지 <필름 코멘트>가 ‘올해의 영화 1위’로 꼽은 작품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관된 호평을 이끌어냈다.
과대평가 영화로는 <듄> <프렌치 디스패치> <노매드랜드> 등이 거론되었고, 과소평가로는 <강호아녀> <레 미제라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뉴 오더> 등 많은 작품이 언급되어 올해 해외영화의 풍성함을 증명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이터널스>는 과대, 과소에 동시에 언급되며 팽팽히 맞섰던 평가를 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