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1년을 빛낸 시리즈 스페셜: 올해의 시리즈 총평, 6위부터 10위까지
2021-12-31
글 : 임수연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기존 영화계 인력이 드라마를 만드는 경향을 언급하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은 때가 됐다. 주목해야 할 것은, 플랫폼을 종횡하는 창작자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시청자의 선택을 받느냐에 있다. 올해는 기획 단계부터 관심을 모았던 빅네임들의 신작보다는 신인 작가·감독, 자기만의 차별화된 세계관에 충실했던 기성 크리에이터들의 작품이 평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오른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독립영화계의 터줏대감 윤성호 감독이 오랜만에 친 적시타다. 2위 <구경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의 신인 작가들이 대본을 썼고, 3위 <D.P.>는 동명의 웹툰 원작을 쓴 김보통 작가와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의 한준희 감독이 협업한 결과물이다. 4위 <미치지 않고서야>는 전작 <마녀의 법정>에서 성범죄를 소재로 권력 구조의 부조리함을 성공적으로 드러낸 정도윤 작가의 역량이 오피스물에서 꽃을 피운 역작이다. 매체를 오가며 확장되어온 연상호 유니버스가 OTT 시리즈의 호흡으로 이주한 <지옥>은 5위에 올랐다.

6위와 7위는 JTBC 드라마 <괴물>과 <인간실격>이 연이어 차지했다. “배우, 작가, 연출 모두 괴물로 불릴 정도의 퀄리티”(유선주), “대본연출, 연기, 삼박자가 잘 맞은”(정석희) 수작으로 호평받은 <괴물>은 “스릴러 장르로서 마지막까지 실종사건의 모든 퍼즐을 차근차근 짜맞추는 과정과 거대한 불의의 카르텔을 무너뜨려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을 날줄과 씨줄로 잘 교차”(위근우)해냈다. 크게 두 덩어리로 나뉘는 탄탄한 구성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8부를 기점으로 극에 전환점을 준 점이 눈에 띄는”(조현나) <괴물>은 전반부에 “의심과 죄책감을 쌓고 중요 사건을 일단락지은 후 9회 다시 도돌이표처럼 돌아가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고 되짚어가며 앞 장면들의 이면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유선주) 탄탄한 구조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괴물>은 “완성도 높은 장르물의 문법을 잘 따르면서 동시에 장르물의 새로운 방향을 만드는”(복길), 클리셰에 빠지기 쉬운 장르물의 계보에서 오리지널리티를 가로새긴 시리즈다. “작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스릴러라는 장르가 새롭진 않지만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드라마를 극적 반전과 함께 기술적으로 담아”(박현주)냈고, “범인 찾기 플롯 너머, 탐욕의 시대가 적극적으로 망각하고 은폐한 피해자들의 비극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수사물”(김선영)이자 “불친절하지만 잘 만든 추리물”(김송희)이다.

허진호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인간실격>은 “남녀가 뒤바뀐 버전의 <나의 아저씨>”(오진우)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바라보면서 묵직하게 가져가는”(오진우) 드라마로 “우울과 고독을 멀거니 들여다보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 용기가 고맙게 느껴지는 따뜻한 작품”(이보라)이다. 더불어 각기 다른 사람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음에도 마치 한 사람이 맡은 것처럼 작품의 결이 통일됐다. “매회 받아 적을 정도로 깊이 있는 ‘아포리즘’과 같은 대사가 한번 이상은 등장”(김현수)하는 <인간실격>의 대본은 “연출을 맡은 허진호 감독이 자신의 영화 세계에서 보여줬던 주제의식과 너무 닮아서”(김현수) 놀라움을 선사한다. 평자들은 공통적으로 드라마의 우울한 정감을 <인간실격>을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이자 흥행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특히 여성의 우울은 개인의 문제이자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 밝혀진 코로나 시대”(남지우)에 “마흔줄 여성인 부정(전도연)의 슬픔 가득한 표정, 절망의 대사들 그리고 끔찍하게 비관적인 사고방식은 동시대의 징후이자 한국 사회의 오늘”(남지우)을 보여주고 있다.

허구의 극이 실제 역사를 다루는 방식을 놓고 어느 때보다 많은 목소리가 오가는 지금, 8위는 <오월의 청춘>이 차지했다. “1980년 광주를 현재 시제로 말하기 위한 수많은 고민”(복길)이 담긴 “뭐 하나 허투루 쓴 구석이 없는 밀도 높은 시대극”(복길)으로, “역사적 상처를 섬세하게 재현하며 다시 쓰여야 할 때 제대로 쓰인 이야기”(최지은)였다. “1980년 광주를 거시적인 방법론에서 접근하기보다 연애사와 함께 풀어낸 시도”(이보라)는 “공동체가 경험한 아픈 기억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다음 세대와 함께 고민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이다혜) 하며 “서로를 지키던 광주 사람들을 하나하나 불러냈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빠뜨리지 않았으며,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고, 내일을 기대하고, 간절하게 걱정하는 마음을 지금 현재로 전염”(유선주)시켰다. 그렇게 이 드라마는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던 시절이 있었음을, 누구를 망가트리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음을 말한(김송희)”다.

9위 <마인>은 “지극히 가부장적인 세계의 룰을 따르지 않고 여성의 방식으로 연대하고 생존을 도모하며 서서히 시스템에 균열을 야기하는 여성 서사”(장영엽)로서 호평받았다. “첫 퀴어 한국 미니시리즈 주인공이라는 엄청난 성취”(듀나)에 더해 “이성애 연애에 발목 잡히지 않고 다양한 여자들의 관계를 보여준”(듀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0위는 영화감독에서 넷플릭스 시리즈로 영역을 확장한 대표적인 이름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과 김성훈 감독의 <킹덤: 아신전>이 나란히 차지했다. <오징어 게임>은 무엇보다 “세계 1위”(김봉석)이며 “K시리즈 센세이션의 주인공, 한국 오리지널 IP의 힘을 보여준 작품”(장영엽)이다. “너무 많이 소진되어 식상해진 서바이벌 장르에 사라진 한국의 놀이 문화를 가져와 신선함을 더했다는 점”(오진우)을 높이 평가하며 “충분히 결합하지 못할 경우 유치하거나 개연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 놀이와 인물들의 처절한 상황을 설득력 있게 봉합한 점”(김성찬)이 호평받았다. <킹덤: 아신전>은 “<킹덤> 세계관을 넓히는 과감하고 이질적인 한수”(홍수정)였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연상하는 성실하고 집요한 김은희 작가”(김소미)는 “생사역의 기원에 대한 팬들의 물음에 영리하게 답하면서 좀비의 존재론을 슬픔의 정서로 다시 쓴 올해 가장 처절한 장르 내러티브”(김소미)를 보여줬다.

“허진호, 전도연이라는 이름만 보고 이 드라마는 분명 과대평가될 것이라 생각했다. 반대였다.”(복길) 과소평가 시리즈로는 <인간실격>이 압도적인 표를 받으며 꼽혔다. “전도연의 화제성은 있었으나, 암울한 정서로 지속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던”(김봉석) 시리즈가 “작품 내내 막막한 서정성이 흐르고, 섬세한 영상이 돋보였다”(김봉석)는 반응이다. “전작에서 꾸준히 다뤄왔던 가족과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감정들을 세심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허진호 감독의 전작을 관통하는 이야기”(김성훈)로서 좀더 주목받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잇따랐다. 과대평가 시리즈로는 올해의 시리즈 10위에 오르고 올해의 감독·신인 여자배우·스탭 3부문을 석권한 <오징어 게임>이 꼽히며 공개 당시 팽팽히 맞섰던 작품의 호불호를 상기시켰다. “긍정적 비평과 열광적 소비 양상이 어긋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현상”(위근우)이라는 날카로운 지적과 “미국에 건너간 <오징어 게임> 속 스타들이 토크쇼나 영화제에 나타난 모습이 더 흥미롭다”(김소미)는 냉정한 코멘트가 있었다.선정 대상 기간 내 케이블, IPTV,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최초 공개된 작품(한국 플랫폼 공개일 기준, 한국 프리미어) 중 최고의 해외 시리즈를 묻는 질문이 포함됐다. 다양한 작품들이 고르게 언급됐지만 가장 많은 표는 디즈니+의 <만달로리안>에 던져졌다. “잘 만든 스핀오프를 넘어, <스타워즈> 팬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완성도로 프랜차이즈의 수명을 연장했다. DC 확장 유니버스(DCEU)는 존 파브로를 영입하라.”(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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