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1년을 빛낸 시리즈 스페셜: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 정호연 인터뷰
2021-12-31
글 : 배동미
<오징어 게임>은 나만의 컬러를 찾아준 작품이다

<씨네21>이 시리즈 부문 신인 여자배우로 꼽은 정호연은 현재 전세계가 주목하는 신인이다. 데뷔작 <오징어 게임>은 53일간 전세계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장 기간 1위를 차지했으며,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정호연만의 마스크와 눈빛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넷플릭스 본사가 <오징어 게임>팀을 초청하면서 모델이 아닌, 배우로서 미국에 발을 딛은 정호연은 11월1일부터 한달여간 해외 시상식에 참석하고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빠듯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징어 게임> 공개 이후 일련의 사건을 그는 “소행성 충돌 후 폭발”이라 표현했는데, 그 폭발은 앞으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에 돌아와 자가 격리 중인 정호연 배우와 나눈 대화를 옮긴다.

사진제공 SHUTTERSTOCK

- 입국 후 현재 자가 격리 중인데.

= 1시간 후면 해제된다. 드디어 자유다! 전세계가 오미크론 때문에 난리인데 <오징어 게임>팀 누구도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고 일정을 마무리했다는 데 감사하다.

- 사진과 영상을 보니 미국에서 정호연 배우가 정말 즐기는 게 느껴졌다. 시상식과 토크쇼에서의 여유로운 태도는 새로운 세대의 배우가 등장했다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 그렇게 보였다면 성공이다. (웃음) 미국에서 사람을 만나고 겪는 일들을 온몸으로 느껴보려고 했고 최선을 다했다. 특히 고섬독립영화상 시상식 때는 외부인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문화인으로서 즐기려 했다.

-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 만큼,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을 것 같다.

= 미국에 도착한 날 입국 도장을 찍어주는 담당자부터 날 알아봤다. (웃음) 할리우드 관계자들과의 미팅도 꽤 많았는데, 어떤 미팅에 참석할지 말지 우선순위를 잘 몰라 다 참석했다. 제작자와 프로듀서, 감독과의 미팅도 있었고, 할리우드에선 작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보니 라이터 미팅도 따로 있었다.

- 미국 에이전시 CAA와 계약을 맺었다.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 할리우드 시스템은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여러 개로 나뉜다. 작품에 캐스팅되면 계약을 맡는 에이전시, 작품뿐 아니라 광고를 비롯해 모든 업무를 총괄해주는 매니지먼트, 인터뷰나 방송 일정을 잡는 퍼블리스트가 있다. 운전과 현장 매니저 역할을 하는 퍼스널 어시스턴트도 있다. 나는 에이전시 그리고 퍼블리시스트와 계약했다. 대개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배우들은 에이전시만 두고 필요할 경우 퍼블리시스트와 월별로 계약해서 시상식 기간에 캠페인 일정을 도움받는다.

- 많은 일의 시작점인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해보자. 주변을 계속 경계하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새벽의 모습이 야생 소동물처럼 보였다. 감독이 배우 특유의 느낌을 배가시키는 주문을 했나.

= 새벽은 자기 감정을 많이 보이면 안되는 친구다. 감독님은 내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감정을 최소화해 새벽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주셨던 것 같다. 울면 안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곤 했는데, 새벽이 ‘구슬치기’ 게임 때 지영(이유미)과 대화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담담하게 새벽의 과거와 상처를 옮겨야 했으나 자꾸 눈물이 터졌다. 감독님이 시간을 주면서 감정을 빨리 날려버리라고 주문했고 스트레칭을 하고 함성도 조금 지른 뒤 감정을 추슬러서 다시 계단에 앉아 연기했던 기억이 난다.

- 작품 공개 이후 새벽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촬영 당시에는 ‘이러면 안되겠다’라고 느꼈다고.

= 새벽이 떠나온 북한에서는 전염병이 유행했으니,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이나 시체가 불태워지는 모습도 봤을 것이다. 그만큼 죽음에 가까운 아이다. 그런 새벽이 이 이상한 공간에서 게임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보고 어느 정도로 반응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 새벽의 입장에서 일기를 썼다고 들었다. 배우로서 구상한 게 현장에서 무너진 적은 없었나.

= 대부분 무너졌다. (웃음) 일기는 캐릭터 구상이라기보다 촬영 전 뇌를 속이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황동혁 감독님은 촬영이 끝나면 그날 촬영분을 정리한 다음, 연출부와 직접 대사를 말해보면서 다음날 촬영 계획을 세밀히 세운다. 그러면서 대사가 조금씩 수정되는데, 수정된 대본을 받고 왜바뀌었을까 고민하면서 대사 연습을 반복했다. 대사를 뜯어보고 녹음해보고 동영상을 찍어서 내 연기를 확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연습들은 결국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촬영 중반부턴 조금씩 연기에 확신이 생겼고 서브 텍스트(대사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과 느낌, 판단.-편집자)만 세우고 현장에 갔다.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기에 상대와 호흡하면서 내가 찾은 서브 텍스트를 융합하는 방법을 찾아갔다.

- 많은 이들이 정호연 배우의 마스크와 눈빛이 인상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델 시절에도 많이 들었던 말인가.

= 배우가 되고나서 마스크와 눈빛에 대한 칭찬을 유독 많이 들었다. 모델로 데뷔할 때 “옛날에 태어났으면 절대 모델이 되지 못했을 것”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여러모로 애매했다. 하이패션 모델이라면 ‘모델상’이라 불리는 각진 마스크를 갖고 키가 적어도 180cm는 돼야 하는데, 나는 176cm인 데다 애매하게 예쁘단 말을 들었다. 그렇다고 뷰티나 커머셜 모델로 가기엔 키가 크고 독특하게 생겼다고 평가받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애매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해외 무대에서 나는 매우 명확한 모델이었다. 아시안 모델로서 내게 어울리는 영역이 분명했다. 나보다 피부 톤이 어두운 모델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 내겐 어울리지 않고, 반대로 밝은 톤의 모델에게 어울리는 색도 나와 어울리진 않지만, 나만의 컬러와 영역이 확실히 있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강점을 살려서 일한다는 게 뭔지 알게 됐고, 약점을 가리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게 중요해졌다. 그러자 자신감도 붙었다.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마스크와 눈빛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다. <오징어 게임>을 찍은 뒤 모델로 화보를 촬영할 때 평소 친했던 포토그래퍼와 스타일리스트 분들이 내 눈빛이 깊어졌다고 하던데, 아마 새벽을 만나고 나서 생긴 변화가 아닐까.

- 모델로서 몸에 밴 습관 중 연기할 때 버린 것이나 취한 게 있다면.

= 런어웨이를 걸을 때 호흡을 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정말 긴 런어웨이도 숨을 안 쉬고 걷고, 카메라 없는 구간에서 잠깐 호흡한다. 하지만 연기는 끊임없이 호흡을 하면서 표현해야 하잖나. 아직도 긴장하거나 집중할 때 숨을 참는 버릇이 있는데 연기할 때 보완하려 했다.

-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 최근 문득 내가 사랑 이야기를 많이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와 사랑하는 작품에 도전하고 싶다. 요즘 우리 세대와 먼 주제가 사랑이 아닐까. 윤리나 소통은 있는데 그 안에 사랑은 빠져 있는 듯하다. 인터넷으로 긴밀히 연결되는 것이 일종의 사랑이고 미래식 사랑이라면, 과거에 사랑이라고 불렸던 행동에 대해 새롭게 정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긴 작품을 만나고 싶다. 그런 시나리오를 찾는 중이다.

- 대화를 하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자가 격리가 끝난 걸 축하한다.

= 지금 전담 공무원에게 문자를 보내면 끝난다! (문자를 보낸 후) 끝났다! 운동부터 가야겠다. (웃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