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라는 대상에 대해 한 가지 일관된 입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의 음주란 금기 혹은 터부를 과감히 깨는 모험이 된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사회가 술을 끝없이 허락하면 주량을 확인하고 또 자랑하며 재미를 구한다. 외로운 젊은이라면 술의 힘을 빌려 헛헛한 마음을 터놓을 힘을, 타인을 향한 애정을 고백할 힘을 빌린다. 내가 모르는 은밀한 이야기, 술잔과 함께 오고 가는 다정함을 놓칠까봐 새벽까지 술자리를 꾸역꾸역 쫓아다닌 경험이 많이들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서 혹은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술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술자리에서 성희롱이며 주사 등 좋지 못한 경험을 겪어 자연스레 술을 피하게 될 수도 있다.
<영롱보다 몽롱>에는 술에 대해 딱 떨어지는 문장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없을 다채로운 이야기가 있다. 특히 필자가 여성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술과 술자리가 얼마나 매혹적이며 동시에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소상하게 다루어진다. 술은 팽팽한 신경과 굳어버린 생각을 풀어주고 창조성을 돋워주기도 한다. 문인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고, 작가들은 취기에 기대어 작품을 써낸다. 그렇지만 술꾼 천재 작가의 이미지는 남성에게 주로 붙어 있고, 술에 취한 여성은 괘씸죄를 산다.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긴 여성이 눈떠보니 모텔 침대에 낯선 남자와 누워 있더라는 이야기들은 사실 제 의지를 표시할 수 없는 상태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폭력적인 일화일 뿐이다. 또 술을 빙자하여 무례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 작가가 젊은 날의 술자리를 괴로운 기억으로 회상한다. 더는 취하고 싶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이, 술을 마시지 않고도 용기를 내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기분이 즐거울 때만 맛있는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기로 규칙을 정해놓았다는 이야기도 좋다. 술에 어울리는 안주의 맛에 대한 세심한 묘사부터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 나온다는 ‘칼바도스’ 등 다양한 술 이야기까지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몽롱도 영롱도 여기에
“결국 오늘 밤 또다시 최후의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러므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술친구가 될 운명이라는 것을 또 한번 깨닫는다.”(2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