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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대로, '이퀄라이저'
2022-02-18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당돌한 눈매로 돈과 힘을 가진 이들의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젊은 여성 캐릭터가 극중 사망할 때마다 마음 한 귀퉁이가 무너진다. 그들의 죽음을 말해야만 가능한 이야기가 있음을 인정하고 죽음의 맥락과 징조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다가도 결국 고개를 가로젓는다. 논리적인 이해를 거쳐도 살았으면, 살렸으면 하는 바람은 별개로 생생하다. tvN <비밀의 숲>의 영은수(신혜선)를 시작으로 최근엔 JTBC <공작도시>의 김이설(이이담)의 사망으로 끙끙 앓던 중에 2021년 미국 <CBS> 드라마로 리부트한 <이퀄라이저>를 보다 뜻밖의 위안을 얻었다. 1980년대 원작에서 백인 노년 남성, 2014년 영화판에서 흑인 중년 남성이었던 비밀요원 출신 자경단원 로버트 맥콜은 흑인 중년 여성 싱글맘 로빈 맥콜(퀸 라티파)이 되어 당대의 사회문제를 조망한다. 기울어진 정의의 균형을 맞추는 히어로가 새삼스럽지 않지만, 당당한 풍채의 퀸 라티파가 곤경에 처한 이 곁에서 자기를 의지하라고, 자기가 구할 수 있다고 장담할 때마다 낯설고 기분 좋은 충격에 빠진다. 어쩜 저렇게 단단한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로빈은 CIA로 복귀하라는 선배의 권유를 “살아 있는 체스 말들이 희생되는 건 관심도 없다”라며 거절한다. 로빈의 말은 극이 놓인 시작점과 목적을 밝히는 선언과 같다. 복수, 응징, 음모의 분쇄를 목적으로 한 서사는 어떤 분기마다 휘말리는 희생양이 발생하는데 <이퀄라이저> 시리즈는 바로 그 희생양이 되었을 이들을 살리고 그들이 제대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을 목적 삼아 기울어진 서사의 균형을 맞춘다. 장담한 대로 실현하는 로빈의 다재다능함은 대리만족의 판타지고 순진한 오락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대 악을 청산하는 이야기의 관습적인 죽음에 지치고 무기력해진 마음에는 살아갈 기회를 얻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의 미소와 눈물이 저항 없이 스민다. 시즌1에 이어 시즌2가 2월11일부터 매주 금요일 1편씩 웨이브에서 공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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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더 콜드> / 넷플릭스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딸을 키우는 싱글맘 제니(마르가리타 레비예바)의 전직은 러시아 스파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해서 ‘위스퍼’로 불렸던 그가 20년 만에 타의에 의해 일선에 나선다. <이퀄라이저>와 마찬가지로 모녀 서사의 비중이 높은 편. 모험도 없이 지루하게 산다는 딸의 타박에 엄마의 젊은 시절 회상이 화끈하다. 1회 마지막, 스파이물이 SF물로 변하는 충격이 있다.

<천재소녀 두기> / 디즈니+

80년대 TV시리즈 <천재소년 두기>의 반가운 리부트. 16살에 의사가 된 라헬라 (페이턴 엘리자베스 리)는 “드라마 닥터 두기 하우저의 현실판”으로 소개된다. 원작에서 16비트 컴퓨터로 쓰던 일기는 유튜브 영상 업로드로 바뀌었다. 현재 미국 10대 사이에서 모녀 댄스 틱톡 영상이 인기인지 라헬라와 병원장인 엄마도, <이퀄라이저>의 로빈도 신분 노출의 위험을 감수하고 딸과 댄스 틱톡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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