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알모도바르 영화의 카르멘, 페넬로페 크루스
2022-04-01
글 : 김소미
2000년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직후 페넬로페 크루스, 페드로 알모도바르(왼쪽부터).

선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 <하몽하몽>(1991) 촬영 직후 회의감을 느낀 10대 소녀 페넬로페 크루스는 당시 급부상하기 시작한 젊은 아티스트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야심을 뒷받침할 만큼 밝은 안목이 페넬로페 크루스에겐 있었고, 그건 어쩌면 자신을 정확히 사용해줄 감독을 운명처럼 알아보는 유능한 배우의 직감이었을 수도 있다. <패러렐 마더스>까지 결과적으로 크루스가 이름을 올린 88편의 영화, 드라마 중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협업한 작품은 의외로 단 7편뿐. 이들의 관계는 사실 그리 유일하거나 절대적이지 않은 데다 누군가의 페르소나로 남기에 페넬로페 크루스는 근면함을 무기로 다작하는 유의 배우다. 하지만 알모도바르 영화의 전통이 쌓여감에 따라 페넬로페 크루스의 존재가 프레임 속에서 자꾸만 제3의 마술적 아우라를 더해가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라이브 플래쉬>(1997)에서 프랑코 정권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던 매춘부는 <패러렐 마더스>에서 그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강인한 사진작가가 되고, 역시 <라이브 플래쉬>의 버스 안에서 위태롭게 진통하던 어린 임신부는 <패러렐 마더스>에서 중년의 싱글맘이 되어 자기 옆에서 진통하는 10대 미혼모에게 노련하게 호흡법을 알려준다.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을 노골적으로 가로지른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로사 수녀는 대중이 전형적으로 소구할 만한 미인 배우가 겪던 딜레마를 관통하면서 배우 스스로 자기 해석의 바로미터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 <귀향>으로 대를 이어 가부장의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수난사를 옮긴 페넬로페 크루스는 이 작품으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고 그때까지도 그를 배우보다는 스타로 부르기 즐겼던 비판적인 관객조차 마음을 고쳐먹게 했다.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다분한 <페인 앤 글로리>에서 크루스가 모성의 대변자가 된 것은, 그가 모성 신화에 걸맞은 페미닌한 매력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자기 영화의 고난 속에서 살아남은 입지전적 배우에게 바치는 알모도바르의 필연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2021년 <패러렐 마더스>로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신작 <패러렐 마더스>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발굴된 신예 밀레나 스밋과 페넬로페 크루스가 주방에서 충돌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현실의 역사가 되풀이되듯 알모도바르 영화의 계보 역시 전승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과거의 고통은 잊고 현재의 즐거움에 충실하자는 아나에게 야니스는 마치 요리법을 전수하는 셰프처럼 유창하고 단호하게 우리 모두가 역사적 존재임을 납득시킨다. 언젠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세실리아 로트가 젊은 페넬로페 크루스를 반은 위로하고 반은 타이르던 어떤 장면들처럼. 20년 사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 엔딩 크레딧에서 들려준 헌사는 이제 배우 페넬로페 크루스 개인을 위한 것으로 읽어도 손색없다. “연기하는 모든 여자배우들, 여자를 연기한 남자배우들, 여자가 된 남자들,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모든 여자들, 그리고 내 어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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