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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실과 픽션이라는, 영화의 두 세계, <그랜드 투어> 미겔 고메스 감독
한 눈에 보는 AI 요약
<그랜드 투어>의 미겔 고메스 감독은 촬영 후 대본을 쓰는 독특한 제작 방식을 채택했다. 그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탐구하며, 내레이션과 인형극을 활용해 영화적 경험을 확장한다. 또한, 1부와 2부로 나누는 형식을 선호하며, 필름카메라의 질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차기작 <야만>은 오랜 중단 끝에 다시 제작을 시작했다.
  1. 독특한 제작 방식
    1. 촬영을 먼저 진행한 후 대본을 작성하는 방식 선택
    2. 현실과 픽션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목표로 함
  2. 우연과 즉흥성
    1. 촬영 중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포착하며 영화에 반영
    2. 필리핀 남성의 즉흥적인 감정 표현이 인상적인 장면이 됨
  3. 1부와 2부의 차별화
    1. 에드워드는 내향적, 몰리는 외향적 성향으로 대비
    2. 각 인물의 시점에 따라 촬영 방식과 이미지 활용이 달라짐
    3. 1부와 2부의 차이를 통해 새로운 영화적 경험 창출
  4. 내레이션과 인형극의 활용
    1. 방문 국가의 언어를 반영한 다국적 내레이션 도입
    2. 픽션과 현실을 연결하는 장치로 인형극 활용
    3. 관객이 능동적으로 영화를 경험하도록 유도
  5. 필름카메라에 대한 애정
    1. 필름 특유의 질감과 빛의 분포를 중요하게 여김
    2. 디지털보다 필름의 거친 입자가 더 아름답다고 평가
  6. 차기작 <야만> 제작 재개
    1. 오랜 중단 끝에 다시 프리프로덕션 진행
    2. 브라질에서 19세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촬영 예정

*<그랜드 투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그랜드 투어>는 촬영을 먼저 진행한 뒤 대본을 쓰는 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랜드 투어>는 단순히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유기적으로 병행해야 하는 복잡한 프로젝트였다. 영화에선 에드워드와 몰리가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지만, 실제론 다수의 장면들이 스튜디오에서 촬영될 예정이었다. 로케이션 촬영분과 스튜디오 촬영분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을 먼저 떠나기로 결정했다. 영화의 배경은 1918년이지만 개별 장소들이 현재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확인하고 그 이미지를 포착해 영화의 일부로 만들고 싶었다. 여행을 하며 다양한 이미지를 수집했다.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찍을 장면을 상상하면서 맥락을 만들어나가려고 했다. 대본을 먼저 쓴 뒤 촬영을 시작했다면 작업이 훨씬 수월했겠지만, 그건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 나는 가능한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작업하길 원한다.

- 미얀마, 일본 등 여러 국가를 오가며 예기치 못한 우연들을 맞이했겠다.

그렇다. 한 필리핀 남성이 노래를 부르는 신이 있는데 그는 노래를 부르다 감정이 북받쳐 울기 시작한다. 애초 의도적으로 그를 촬영하지도 않았고 당연하게도 예상한 범위 내에서 일어난 사건도 아니었다. 그냥 갑작스럽게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이었다. 내게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었는데 많은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으로 꼽아줘서 감회가 남다르다. 촬영을 하다 보면 이처럼 운 좋게 흥미로운 순간을 포착하곤 한다.

- 결혼을 앞두고 에드워드는 끊임없이 도망치고 몰리는 그 뒤를 쫓는다. 결혼, 도망과 추격을 빙자한 여행을 대하는 두 인물의 태도가 상반된다.

말한 대로 그들은 모든 면에서 다르고, 가능성의 양극단에 놓여 있다. 에드워드는 내향적이고 몰리는 외향적이며 에드워드는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어 하지만 몰리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선다. 인물들의 성향 차이는 각각의 파트에 어떤 촬영본을 사용할지에 관해서도 영향을 줬다. 1부에 해당하는 에드워드의 파트에선 각국에서 촬영한 이미지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활용했다. 에드워드가 숨는 만큼, 그가 방문한 아시아 국가들의 이미지가 더 많이 드러난다. 몇몇 시퀀스에서 멜랑콜리한 느낌이 드는 건 당시의 에드워드의 감정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2부에 등장하는 몰리는 에드워드보다 더 전면에 등장한다. 2부에서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영화는 스스로를 재구성하는데 나는 이러한 변화를 좋아한다.

- <그랜드 투어>뿐만 아니라 <타부> <네게 마땅한 얼굴> <친애하는 8월> 등의 전작 역시 1부, 2부로 나뉘어 있다. 막을 나누는 형식을 선호하나.

그렇다. 1부에서 얻은 경험이 2부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타부>는 노인들이 먼저 등장한 후, 2부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노인들의 젊은 시절을 보여준다. <타부>의 대부분이 인물들의 젊은 시절을 다루지만 관객은 이들 중 일부가 죽게 될 것을 이미 안다. 그 사실이 관객이 2부를 경험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그랜드 투어>는 예비 신부를 피해 달아나는 에드워드로 시작한다. 그는 신부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녀는 그저 추상적인 객체로 존재한다. 관객들도 그저 예비 신부로부터 에드워드가 도망가는 중이라는 사실만 인지한 상태다. 하지만 2부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관객들은 몰리보다 에드워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파트 사이에 연결점이 생길 때 나는 세 번째 영화가 탄생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1부, 2부가 가진 정보와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데, 대부분의 동시대 영화에선 관객에게 이를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는 현대의 영화가 일반적으로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간을 두고 관객이 더 능동적으로 영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 1부, 2부로 영화를 나누는 것은 당신의 영화가 “<오즈의 마법사>(1939)의 변주”라고 말한 것과 이어지는 대목일 것이다.

그렇다. <오즈의 마법사>는 영화에서 현실을 다루는 하나의 기초가 되는 작품이다. 영화는 스크린에서 삶을 포착하는 한편 또 다른 현실 세계를 창조해내는 예술이다. 나는 내 영화에서 이 두 세계를 어떻게 동시에 다룰지, 어떻게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 옮겨가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지를 고민한다. 영화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변화한 삶이 다시 영화의 세계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지도 말이다. 감독으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지점이다.

- 내레이션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에드워드, 몰리가 방문하는 국가에 따라 내레이션의 언어도 다르게 설정한 배경은.

처음에는 포르투갈어만 사용하려 했는데 편집 작업을 하다 관련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편집실에는 두명의 각본가, 각본 및 편집을 겸하는 이를 포함한 총 3명이 있었고 내레이션 대본을 함께 쓰고 편집했다. 편집실에 마이크를 두고 한명이 돌아다니며 녹음하고, 사무실 문을 열고 바깥의 소리를 듣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몇 문장만 녹음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래서 편집이 끝날 무렵 우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목소리를 채집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하나가 아닌 여러 목소리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성 각본가는 몰리 역의 배우와 비슷한 목소리를 지녔는데, 그는 프랑스 출신이라 포르투갈어를 할 때 프랑스 억양이 묻어났다. 그 억양이 좋아서 그대로 사용하고 싶었고 연장선상에서 캐릭터들이 방문한 국가의 언어를 그대로 반영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래서 일본, 중국, 베트남 등 각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 녹음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다른 형식으로 완성된 <그랜드 투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인물들이 직접 대사를 내뱉는 대신 내레이션을 활용하는 건 전작들에서도 자주 보아온 형식이다.

내 목표는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도 포함한다. 내레이션은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고, 단순히 이야기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가 어떻게 채워지는지를 경험하게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방식은 관객이 더 능동적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 <그랜드 투어>에는 나라마다의 공연, 특히 인형극 신이 많이 삽입돼 있다. <필름 페스트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영화를 인형극과 같이 인공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끌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동일하지 않은, 그러나 우리에게 삶에 관해 가르쳐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인공적인 세계 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인형극이라는 허구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영화에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일까.

영화는 현실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재구성된 픽션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현실과 픽션을 영화에 담아내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픽션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타인의 픽션을 의미한다. 그러다 인형극이라는, 아시아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전통예술에 관해 알게 됐다. 극장에서 사람들이 인형극을 하는 장면을 촬영해 상상력과 픽션의 요소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

- <그랜드 투어>의 결말이 인상적이었다. 죽은 몰리의 머리 위로 빛이 비추면서 그가 부활하는데, 이로 인해 앞의 내용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로 이 모든 게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결과물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포르투갈 문화에는 가톨릭 문화가 깊게 스며들어 있고 포르투갈인인 나는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영화에서 기적을 다루는 걸 좋아한다. 몰리를 부활시키는 건 처음부터 생각해둔 장면이고, 스튜디오에서 촬영 준비를 할 때 천장에 조명을 설치하던 사람에게 어떻게 촬영할 것인지를 세심하게 전달했다. 몰리는 인형극의 인형처럼 죽고, 되살아난다. 영화 속 캐릭터이기에 가능한, 인간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사람들은 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한 해답을 얻고 싶어 한다. 나 역시 모호한 결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결말을 단정짓고 싶진 않다. 그저 관객들이 이 결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바라볼 뿐이다.

- 16mm, 35mm 필름을 혼용해 <타부>를 촬영했고 <그랜드 투어> 역시 16mm 필름으로 찍었다. 필름카메라의 어떤 점을 선호하나.

유년 시절 영화를 관람하던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내가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땐 대부분의 영화가 35mm 필름으로 촬영됐다. 빛이 분포하고, 필터를 통해 이미지가 구성되는 모든 것들이 필름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필름의 질감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게 영화의 본질을 만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료가 다르면 이를 투과해 완성된 이미지도 당연히 달라진다. 많은 디지털카메라 제작사들이 유리 제조업에서 출발했기에 안경과 같이 그저 잘 보이는 장치로서 카메라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들은 훨씬 더 선명하고 날카롭다. 필름카메라는 상대적으로 입자가 더 거칠고, 35mm보다 16mm 필름에서 특유의 질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내겐 디지털 이미지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진다.

- 차기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오래전 멈췄던 <야만>(savagery)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고.

안 그래도 지금 사무실이다. (다른 스태프들과 인사시켜주며) <야만>의 프리프로덕션을 진행 중이고 저기 보이는 사람이 라인 프로듀서인데, 지금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척 노력 중이다. (웃음) <야만>은 2016~17년에 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10여년 동안 촬영을 이어나가고자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포기 단계에 이르렀었는데 다시 부활했다. 마치 몰리처럼 말이다. <야만>은 <백랜드: 카누도스 작전>이라는 책을 기반으로 19세기 카누도스 마을 주민들과 브라질 공화국 군대가 맞서 싸운 이야기를 담았다. 내년에 브라질에서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엔 작업이 잘 마무리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