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할리우드는 AI 논쟁 중, 예술의 영역에서 AI의 사용은 반칙인가?
2025-02-20
글 :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예술 활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창작 활동의 기술적인 소도구로서 AI를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지만,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현재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화계에서 일어나는 AI 논쟁은 과연 예술가를 위협하는 경고일까. 매일 새로운 뉴스가 쏟아지고 심지어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퀄리티도 향상되어 영화의 미래가 어디로 튈지 호기심을 버리기도 어렵다. 2025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영화제작 과정에서의 AI 기술 사용에 대한 흐름과 반응 역시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양상이다. 올해 아카데미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되는 영화들 역시 AI 기술과 얽힌 논쟁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마냥 부정적으로 보거나 배척해야 하는 것인 양 침묵하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AI 기술이 영화에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현실을 똑바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카데미 주요 후보작을 중심으로 최근 할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AI 논쟁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일종의 연기 코치로 활용된 AI

<아그로 드리프트>

3월에 열릴 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AI를 둘러싼 논쟁의 장이 되고 있다.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와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 후보정 과정에서 AI 기술을 사용해 예술성 평가 논란에 직면했다. AI 기술을 제작 과정에 도입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AI의 도움을 받은 배우의 연기를 온전한 예술가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는지, 즉 시상식 후보 자격을 얻을 만큼 가치 평가를 할 수 있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두편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소프트웨어 회사 레스피처의 기술이 쓰였다고 한다. <브루탈리스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와 펄리시티 존스의 극 중 헝가리어 발음을 미세하게, 특정 모음 발음의 정확성을 원어민 발음에 가깝게 보정해줬다. 하지만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졌으며(소프트웨어의 사용은 엔지니어의 몫이며) 배우들의 연기를 변형하거나 대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제작진의 입장이다. 대안 기술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시간 단축을 위한 효율성 측면에서 AI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AI 기술 사용 여부는 이미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바 있다. 주연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노래 연기 장면에서 보컬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음성 복제 기술이 쓰였다. 프랑스의 뮤지션이자 영화음악을 공동 작곡한 카미유의 목소리와 혼합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신기술의 가용 범위만 들어서는 예술성에 관한 논의에 쉽게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AI 기술의 사용 여부와 범위를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아카데미 주연배우 부문을 포함해 8개 후보에 오른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컴플리트 언노운>도 AI 후보정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호주의 VFX 회사 라이징선 픽처스의 머신러닝 캐릭터 툴셋 리바이즈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와 <컴플리트 언노운>의 작업에 쓰였다. 이 툴셋은 2022년작 <엘비스>에서 오스틴 버틀러와 실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합성하기 위해 처음 쓰인 기술로 알려져 있다.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 VFX 작업은 <듄: 파트2>에서도 극 중 프레맨 캐릭터들의 눈동자를 푸른색으로 바꾸는 과정과 웜 벌레의 라이딩 장면에서 누크 스튜디오의 카피캣이란 툴이 쓰였다.

AI로 시간을 되돌린 배우들

<베이비 인베이전>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비롯해 시대상과 세계관에 충실한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AI 기반의 작업은 창작자가 써서는 안될 ‘반칙’의 개념이 결코 아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신작 <히어>에도 AI가 영화 후반작업에 쓰였다. 이 영화는 주연배우 톰 행크스의 청년 시절부터 60대 시절까지의 모습을 한편의 이야기에 모두 담아내는 영화였기에 VFX의 기술적 완성도가 관객의 몰입도를 담보하는 중요한 ‘연출’ 요소 중 일부다. 디지털 메이크업이라고 하는 후반작업 공정을 통해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이 스크린에 구현됐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의 해리슨 포드, <아이리시맨>의 로버트 드니로 같은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구현할 때도 유사한 디에이징 기술이 쓰였다. 사실 이는 단순한 ‘보정’의 개념을 넘어선다. 이 영화들에서 AI는 작업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완성도에 초점을 두고 쓰였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흔히 ‘언캐니 밸리’라고 부르는 디지털 기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아직은 AI도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완벽한 실사라고 보기엔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너무 쉽다. 어색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톰 행크스와 해리슨 포드의 연기를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그들이 캐릭터를 온전히 해석한 감정 연기는 한컷의 이미지에 담겨 있지 않다. 그들의 연기력은 2시간 러닝타임의 맥락 안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 안에서 특정 기술이, 특히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AI 기술이 차지하는 물리적인 분량과 퀄리티에 관한 여러 합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AI가 대체하게 될 영화제작 파트는?

<에밀리아 페레즈>

AI라는 신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도입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예술매체 중에서도 21세기의 영화는 특히 기술집약적이라 할 수 있는데 왜 유독 AI 사용에 반감을 두고 있는 걸까. 가장 큰 문제는 창작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최근 실베스터 스탤론의 신작 <아머>의 사례를 보자. 프랑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의 목소리 연기를 50여년간 도맡았던 더빙 배우 알랭 도르발이 지난해 세상을 떠난 후에 영국의 스타트업 일레븐랩스가 AI 기술을 사용해 도르발의 목소리를 복제, <아머>의 프랑스어 더빙에 활용할 계획을 발표했지만 배우 목소리의 복제 사용 허가와 관련하여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프랑스는 이를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만들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글로벌 더빙 시장 규모가 5조원이 넘는다고 하니 전세계 납품을 목표로 하는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에서 특히 이런 기술 흐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AI의 공격적인 작업 과정에서의 도입과 입지를 영원히 막을 수만은 없다. 이미 AI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시나리오 집필, 배우의 캐스팅, 촬영장에서의 배우의 연기, 후반작업은 물론 홍보 마케팅 분야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파트가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챗지피티가 써낸 각본을 토대로 만든 스위스의 피터 루이지 감독의 영화 <더 라스트 스크린라이터>의 사례처럼 AI가 크레딧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시각특수효과 VFX 분야에 있어서 이미 실시간 렌더링과 버추얼 스튜디오를 제작에 도입해 혁신적인 비주얼 변화를 이뤄온 게임엔진과 AI가 왜 구분되어 논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불만을 표할 수도 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영화의 예술성을 평가함에 있어서 AI만의 ‘독자적인 활약’이 가능한 영역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작가가, 캐스팅 디렉터가 AI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규제와 합의를 통해 해결점을 찾게 될 것이다.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대중의 몫이 될 것이다. 최근에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프로모션용으로 AI가 제작한 포스터를 공개했지만 대중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던 것, 새로 예고편을 공개한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의 티저 포스터가 AI 작업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AI의 결과에 대해 대중이 포용력을 발휘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AI는 영화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할까

<히어>

데이터 기반의 학습을 통한 결과, 알고리즘이 선택한 결과물을 어떤 방향에서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영화계가 시간을 갖고 더욱 깊이 있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하모니 코린 감독은 AI라는 도구를 일종의 영화예술 해체용 도구로 쓰고 있다. 그는 영화 전체를 적외선카메라로 촬영한 2023년작 <아그로 드리프트>와 AI를 이용해 범죄자의 얼굴을 아기 얼굴로 바꿔 시각적 충격 효과를 주게 한 2024년작 <베이비 인베이전>에서 AI와 게임엔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에게 AI는 “또 다른 붓이고, 또 다른 색이며, 이미지를 소리와 통합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만약 현대미술 영역에서 이미 쓰이고 있는 알고리즘에 의한 ‘패턴’ 편집이 영화에 접목되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과연 영화의 관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패턴 자체의 예술성을 평가할 수는 없어도 창작자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따라서, 한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지에 따라서 새로운 가치 기준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상영마다 편집 순서가 달라지는 영화는 과연 영화일까. 어차피 AI가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을 읽지 못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해보자면, 창작자의 관점에서 AI가 소도구에 머물려면 영화, ‘필름’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만’ 자유롭게 쓰이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전세계 AI 산업의 법적 규제는 어떻게 진행 중인가

<브루탈리스트>

현재 전세계가 AI 산업을 둘러싼 법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사람의 특정 데이터를 가지고 공공장소 이용이나 불법적인 아카이빙 구축을 제재하는 금지조항을 담은 AI법을 전세계 최초로 재정해 시행한 유럽연합을 시작으로 한국도 AI 산업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형성 발전 지원에 관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2026년 1월 시행 예정이다. 아직은 금지 조항 미흡, 보호 권한 모호, 국제기준 적용 등의 이유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AI 산업에 있어서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관련 법안 제정에 사실상 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발의된 ‘SB 1047’ 법안은 제인 폰다, 알렉 볼드윈, 페드로 파스칼 등 수많은 할리우드 인사들이 지지를 표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캘리포니아 개빈 뉴섬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해 보류 중이다. 캘리포니아에 세계 5대 생성형 AI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만큼, 사실상 이 법안이 미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현재로서는 통과되기 어렵다.

비용이 1억달러를 넘어가는 AI 모델에 한해서 개발 업계가 문제 발생 시 책임을 지거나 중지 요청할 수 있는 의무를 담은 ‘SB 1047’ 법안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공공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보는 입장이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AI 규제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영화, 텔레비전 및 라디오 예술가 연맹(SAG-AFTRA)은 2023년 파업의 핵심 쟁점이기도 했던 AI 규제에 대해 여전히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복제’(digital replicas)를 규제하는 두개의 법안에 이미 서명했다. 이탈리아는 자국의 더빙배우조합(ANAD) 소속 배우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호하는 조항을 계약에 포함시킬 것을 의무화하는 AI 보호조항을 계약에 포함시킨 최초의 국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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