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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피난하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가 창조한 이야기 <패딩턴>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산실 헤이데이 필름과 폴 킹 감독의 손으로 2014년 스크린에 올라 단박에 사랑받았다. 나아가 폴 킹 감독과 제작진의 시각적 위트가 무르익은 <패딩턴2>(2017)는 밀도 높은 시나리오와 휴 그랜트의 탁월한 연기, 정교한 액션 세트피스에 힘입어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보다 호평 비율이 높은 영화로 등극하는 쾌거마저 이뤘다. 하지만 오렌지 마멀레이드보다 달콤한 성공은 모두가 사랑하는 서방예의지곰의 세 번째 영화가 나오기까지 8년이나 걸린 원인이기도 했다. 채워야 할 곰 발자국이 너무 컸던 셈이다.
단지 속편을 위한 속편이 되지 않기 위해 <패딩턴: 페루에 가다!>가 찾아낸 필연적 서사는, 패딩턴과 브라운 가족을 곰의 고향인 페루의 깊은 숲으로 보내 ‘홈’(home)의 진정한 의미를 숙고하게 만드는 모험담이다. 여느 가족이 그렇듯 아이들이 성년에 다가가면서 서로 멀어져가던 브라운네 식구들도 함께 위험을 극복하며 결속을 다지게 된다. 사건의 발단은 <패딩턴2>(2017)에서도 실마리를 제공했던 패딩턴의 숙모 루시. 은퇴한 곰을 위한 요양원에 머물던 루시가 사라졌다는 편지를 수녀원장(올리비아 콜먼)으로부터 받은 패딩턴과 가족들은 윈저 가든 32번지를 문단속하고, 타란튤라 거미와 황금 그리고 악당이 기다리는 먼 땅을 향한 여행을 시작한다. 이국으로 배경을 옮기는 결정은 수많은 할리우드 프랜차이즈가 창의력이 궁할 때 써온 초식이지만 적어도 <패딩턴 : 페루에 가다!>에서 ‘이국’은 패딩턴이 평생 가졌던 두 고향 중 하나이기에 시리즈를 관통하는 대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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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킹 감독을 <웡카>에 빼앗긴 <패딩턴 : 페루에 가다!>는, 존 루이스 백화점 크리스마스 광고를 위시한 CF와 뮤직비디오로 감성을 인정받은 신인감독 두걸 윌슨을 발탁했다. 과연 3편의 제작진은 무엇이 <패딩턴> 시리즈의 사랑스러움을 구성하는지 충실히 파악한 듯 보인다. 슬랩스틱코미디, 친절한 마음의 중요성, 이방인의 포용, 팝업 그림책 스타일의 미학 등 시리즈의 전통은, 페루와 콜롬비아에서 촬영된 풍광과 비중이 올라간 CGI 효과 위에서 경쾌한 속도로 펼쳐진다. 어느새 가족영화의 믿고 보는 스타로 자리 잡은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황금에 미친 조상의 유령에 시달리는 딱한 선장을 유유히 연기하고 올리비아 콜먼은 어쿠스틱기타를 퉁기며 줄리 앤드루스에게 오마주를 바치는 수녀 역을 즐긴다(그러나 수녀복 맵시는 역시 <패딩턴2>의 휴 그랜트를 이기지 못한다). 이야기가 영국을 벗어나면서 현실적인 난민 문제와 이민자의 정서를 반영하던 인물들이 사라진 점은 성인 관객을 아쉽게 한다.
<패딩턴: 페루에 가다!>는 전작의 미덕을 성실히 공부하고 재연한 속편이다. 동시에 새로움과 갱신보다 계승을 최고 목표로 설정한 프로젝트답게 웰메이드 가족영화의 목록에 한줄을 더하는 데에 족한다. <씨네21>은 해외 관객의 반응을 설레는 마음으로 궁금해하는 제작자 로지 앨리슨과 감독 두걸 윌슨을 화상 인터뷰했다.
내 집은 어디인가 곰곰이 고민하다 - 두걸 윌슨 감독, 로지 앨리슨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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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딩턴> 시리즈는 대단히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다. 특히 <패딩턴2>는 적잖은 영화 팬들에게 거의 완벽한 영화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 뒤를 잇는 속편인 데다가 영국색이 강한 이야기를 런던 외부로 끌어내는 결정은 용기를 요했을 법하다.
로지 앨리슨 성공했다고 서두르고 싶지 않았기에 3편을 만들기까지 오래 걸렸다. 1, 2편에 쏟아진 사랑이 커서 오히려 3편 제작 여부에 신중을 기했다. 의미 있고 필요한 스토리가 없다면, 폴 킹 감독만큼 훌륭한 연출자를 구하지 못한다면 3편을 내놓을 의사가 없었다. 그런데 페루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패딩턴의 궤적 안에 좋은 스토리가 있었다. 어디가 진짜 집인지,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다. 그래서 <패딩턴: 페루에 가다!>에서 패딩턴은 뿌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홈’을 결정한다.
- 1, 2편의 감독 폴 킹과 미세스 브라운 역의 샐리 호킨스와 작별하는 결정 역시 쉽지 않았을 듯하다.
두걸 윌슨 우리가 아니라 두 사람의 결정에 가깝다. 그들은 바통을 넘길 때라고 판단했다. 폴은 <웡카>를 연출하게 됐고, 샐리는 메리 브라운 캐릭터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다했으므로 새로운 배우가 맡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 시리즈에 새로 합류한 감독으로서 <패딩턴> 사가의 정수와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두걸 윌슨 <패딩턴> 시리즈는 훌륭한 전편들이 보여줬듯 영혼과 유머, 따뜻한 마음이 핵심이고 모험담으로서 패딩턴이 곤경에 처하는 액션 시퀀스가 중요하다.
로지 앨리슨 이번 영화는 시네마에 쓰는 러브 레터이기도 하다. 영국의 일링 스튜디오 코미디부터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턴 그리고 페루에서 찍은 베르너 헤어초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와 <피츠카랄도> 등이 <패딩턴: 페루에 가다!>의 레퍼런스다.
- 그렇다면 페루 로케이션이 궁금해진다.두걸 윌슨 페루는 사막, 열대우림, 산지 등 놀랄 만큼 다채로운 풍경과 고대도시와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한달 동안 안데스산맥과 마추픽추, 탐보파타 우림 보존구역, 알티플라노고원을 여행하며 무수한 사진과 레퍼런스를 모았다. 영화 전체를 페루에서 찍기에는 예산에 한계가 있어서 존 소라푸어 감독이 이끄는 세컨드 유닛이 배경과 전경의 요소들을 촬영했고 시각효과감독 알렉시스 와이스브롯이 근사하게 극 중 여정의 배경을 만들어냈다. 때로는 단순한 배경만은 아니었던 것이 패딩턴이 실제 잉카 유적이나 <아귀레, 신의 분노>의 오프닝에 나오는 산에서 뛰어다녀야 했다. 리얼리티 팝업 북 같은 1, 2편의 전통을 이어받아 3편에는 실제 페루가 많이 담겨 있다.
- 2편의 휴 그랜트가 강렬한 인상을 남겨 <패딩턴: 페루에 가다!>의 새로운 캐스팅에도 고심이 많았겠다.
로지 앨리슨 올리비아 콜먼과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합류했는데 두 배우는 따뜻함을 겸비한 코미디 연기의 고수이자 패딩턴 세계에 멋지게 어울린다. 게다가 안토니오는 가족영화의 베테랑이고 올리비아는 영국의 국보이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올리비아가 먼저 <웡카>에 출연했다고 걱정하진 않았다. 우리 영화의 올리비아는 전혀 다른 모습이고 <사운드 오브 뮤직> 속 줄리 앤드루스의 메아리 같은 면이 있다.
- 패딩턴이 두곳의 ‘홈’ 가운데 선택을 고민하는 것이 3편의 핵심으로 보인다.
로지 앨리슨 1편에서 루시 아주머니에 의해 런던으로 보내진 패딩턴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페루로 돌아간 3편에서는 비로소 자기 의지로 선택할 기회를 가진다.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다른 쪽과의 단절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패딩턴의 삶을 이루는 두 부분이 균형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이번 영화에는 ‘패딩턴’에 이어 런던 지하철역들이 곰들의 작명에 동원된다. 어떤 기준으로 골랐나.
두걸 윌슨 웃기게 들리는 역 위주로. (웃음) 일단 역 이름을 다 써서 벤 위쇼에게 읽어달라고 한 다음 느낌에 따라 아기 곰과 어른 곰들한테 나눠 배정했다. 이를테면 엘리펀트 캐슬이나 매리타임 그리니치는 큰 곰들에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