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R.M.N.'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 "우리의 사고회로를 찍은 방사선 스냅숏"
2022-06-02
글 : 이주현

제60회 칸영화제에서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은 <R.M.N.>으로 다시 한번 칸에서의 영광을 노린다. <R.M.N.>은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를 배경으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마을의 갈등을 그린다. 일자리를 빼앗는 외부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차별과 혐오의 양상은 비단 특정 지역의 문제만이 아니다. ‘루마니아 감독’으로 호명되는 크리스티안 문쥬도 이것이 루마니아의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 영화를 보면 당신은 루마니아의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 당신은 고국의 상황에 만족하나? 우선 이 영화는 루마니아의 상황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물론 루마니아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에서 시작되었고,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배경으로 설정했지만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 얘기하는 영화다. 지금도 이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그 속도와 리듬을 따라가기가 벅차다. 특히 영화에서처럼 소규모 커뮤니티일수록 사람들은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왜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은 특정한 이슈를 마주하면서 무엇이 좋고 나쁘고 다른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비록 이 세계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정직하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진실을 안 뒤에야 우리는 문제를 수정할 수 있다. 결코 아무것도 크게 바뀌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러니까 브렉시트라든지 프랑스의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의 등장에 ‘오 마이 갓, 어떻게 그게 가능해?’ 할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살인과 강간과 고문이 폭력적이고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갑자기 잔인해지기도 한다.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현실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 모티브를 얻은 실제 사건은 무엇이었나.

= 팬데믹 이전의 일이고, 헝가리인들이 주로 사는 트란실바니아의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영화에서 그리는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한 문제다. 실제로 지역 빵 공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되었고 동네 사람들이 이를 반대했다. 실화 자체가 중요했다기보다는, 그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말해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 제목인 <R.M.N.>은 루마니아어로 MRI를 뜻하지만 ‘R.M.N.’은 당신의 나라 루마니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 이 제목이 루마니아에서 온 영화로 해석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이 해석에 매우 놀랐다. 해석은 늘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이것이 영화가 추상적인 이유이고, 그래서 스스로 영화의 내용을 과도하게 해석해서 설명하지 않는 이유다. 제목인 MRI, 즉 브레인 스캔에 대해서 말하는 건 쉽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작동방식과 우리의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사고회로에 대한 방사선 스냅숏이다. 나는 이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일이 흥미로웠다. 그것은 소수(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다수(마을 사람들)의 집단적 행동이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적 차원의 문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 보게 된다.

- 남자주인공 마티아스는 자신이 독일의 외국인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돌아온 뒤 마을의 정치적 문제- 외국인 노동자 고용 문제- 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전통에서 멀어져 더이상 그 일부가 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 같기도 하다.

= 그는 내게도 흥미로운 캐릭터다.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마티아스가 마을의 분위기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는 자신이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섞여왔다. 순수한 전통이나 민족주의 같은 건 허상일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특별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는 이런 관점에서 전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민족, 인종, 종교라는 측면에서 공통적으로 수용되는 것과 수용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리고 전통이란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예전부터 이어져오던 것이다. 영화에선 트란실바니아의 마을 사람들이 동물을 길들여 맞서 싸운다. 그리고 축제 때는 곰의 탈을 쓴다. 그들은 야생동물과 싸우지만 자기 안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과도 싸운다. 우리의 뇌는 생존에 적합하게 맞춰져 있다. 이기심은 생존 메커니즘의 첫 번째다. 영화 속 이기적인 집단행동도 생존의 위협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영화가 꽤 비관적이다. 팬데믹이 루마니아의 상황에 큰 변화를 가져왔나.

=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루마니아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물론 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낙관적일 수 있는 근거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비관적이라는 사실이 손놓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노력할 의무가 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에는 늘 찬성이다. 하지만 내가 낙관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 그럼에도 영화에는 유머가 있다.

= 비관적인 것과 유머는 관련이 없다. 나는 유머 있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서 쓰러질 테지만 그럼에도 그 길은 재미있을 것이다.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신은 우리에게 웃음을 줄 것이다.

사진출처 SHUTTERSTOCK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