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 <헤어질 결심>이 5월23일 칸에서 공개됐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추락해 사망한 남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와 이 사건의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이 만나 서로를 관찰하고 의심하다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대신 풍부한 뉘앙스로 사랑의 비극에 다가가는 박찬욱의 멜로는 이번에도 고도로 위트 있고 강렬하게 아름답다. 한국 기자들과의 라운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이 들려준 얘기를 전한다.
- 프리미어 상영 이후 첫 시사 반응을 어떻게 체감했나.
= 내게 와서 인사하는 사람들은 다 좋은 얘기만 하지 않겠나. 영화 보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더 자주 웃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내 영화가 좀 그런 게 있지 않나. 나는 웃기려고 하는데 이게 웃긴장면인지 뭔지 잘 모르겠어 하는. 그런 면이 항상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고. 어제 파티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자주 웃고 싶었는데 눈치 보느라 못 웃었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해. (웃음)
- 전작의 자장에서 멀리 가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준비 과정에서 그런 의식을 했나.
= 억지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시작할 때는 의식을 한다. 이전 영화들과 달라야 한다고. 그렇게 출발해서 조금씩 스토리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말하자면 각본을 쓰는 초기 단계쯤 오면 이제는 이 스토리에 어울리는 형식이 뭔지를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전작과 달라야 한다는 의식은 안 하게 된다. 작업 초창기에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던 건 맞다. 감정 표현, 그러니까 자극적인 면을 좀 줄여보자는. 예전부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영화라는 표현을 스스로도 많이 써왔고, 감각의 자극을 통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를 하겠다고 해왔는데, 이번에는 막 들이대기보다 관객이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영화가 너무 들이대면 관객이 뒤로 물러나게 되는데, 조금만 보여주면 또 앞으로 다가오게 되잖나. 영화에 적응이 되면 될수록 능동적으로 들여다보는 관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번엔 그런 걸 하고 싶었다.
- 전작들에 비해 성적인 표현도 절제됐다. 예를 들면 핸드크림을 손으로 발라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물들이 애정을 표현하는데.
= 물론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장면에서 배우한테 ‘이건 상징적인 섹스야’라고 얘기하진 않았다. 그건 보살펴주는 행위인데, 그런 보살펴주는 행동에서 센슈얼하다 또는 에로틱하기까지 하다고 봐주신다면 그것은 환영이다. 사실 성행위라는 것이, 성욕이나 성적 쾌감이라고 하는 것이 글자 그대로 성감대를 자극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런 배려에서도 올 수 있는 거잖아. 그리고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대화 장면이다. 신체 접촉조차 전혀 없는 대화 장면. 말할 때의 도발하는 눈빛, 자극이 되는 한마디, 작은 미소. 이런 것으로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상황을 표현하고 싶었다.
- 이런 변화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심경의 변화도 없었다. <리틀 드러머 걸> 후반작업하면서 시작된 이야기인데, 글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고전적인, 품위를 가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헤어질 결심>에 영향을 준 또 다른 것들이 있다면.
= 정훈희의 노래 <안개>. 그리고 김수용 감독의 영화 <안개>는 <헤어질 결심>의 시나리오를 쓰는 중에 봤다. <안개>라는 훌륭한 영화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본 것은 나중이었고, 특히 윤정희씨 캐릭터가 아주 모던하더라. 김수용 감독님의 앞서가는 감각은 영화의 원작인 <무진기행>과도 달랐다. 그 영화가 <헤어질 결심>에 영향을 준 바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데이비드 린의 <밀회>도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영화였다. 이 영화를 배우들이나 스탭들에게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것은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어른스러운 사랑 이야기의 원형 같은 것으로 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 인물들이 미묘하게 문어체적인 말투를 사용한다.
= 알다시피 정서경 작가와 한줄 한줄 같이 대사를 쓴다. 일단 서래가 한국어를 어떤 방식으로 구사할 것인지 먼저 정해졌고. 해준의 대사는 박해일씨에게 영향을 받은 면이 있다. 박해일씨의 말이 좀 독특하다. 자기만의 표현들이 있다. 약간 구식이지. (웃음) 문어체 같은 면도 있고. 그것을 나도 모르게 좀 써먹은 것 같다. 현대인치고는 품위가 있다는 말도 대사로 썼고. “당신은 어디서 왔길래? 당나라?”라는 대사도 있고. 두 사람은 현대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는 이질적인 면이 있는 인물들이다. 사고방식이 조금 구식이고 고지식한 면이 있고, 그런 면에서 같은 종족이라는 느낌도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생각을 반영해 대사를 썼다.
- 개그맨 김신영의 캐스팅이 눈에 띄는데 자칫 관객의 주의가 산만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는 없었나.
= 그런 것을 겁내기에는 정말 캐스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웃찾사>의 ‘행님아’ 코너를 너무 좋아했다. 그때부터 김신영은 불세출의 천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평가는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았고. 그래서 뭐든 잘할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그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낸 것 같은 역을 맡기면 오버고, 연기 잘하는 배우가 할 법한 역할을 자연스럽게 맡기려 했다.
- <일장춘몽>에서 함께한 박정민 배우도 출연한다.
= 박정민을 캐스팅한 건 <헤어질 결심>이 먼저인데. 잠깐 나오는 역할이지만 강한 인상을 줘야 해서 잘 알려진 배우가 카메오 출연하는 것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누가 좋을까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박정민 배우를 알아두면 좋겠다 싶었다. 박정민을 좋아한 건 <시동> 때. <헤어질 결심>에서는 유머 감각이 필요한 역할이 아니지만, 나는 위트가 있는 배우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항상 좋게 보고 있었다.
- 로맨스영화인데, 이 로맨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나.
= 그냥 사랑 얘기다. 이런 남자 이런 여자가 만나 좋아했는데 잘 이루어지지 못하고 안타깝게 헤어졌다는 이야기. 여자는 욕망이 강하고 그 욕망을 실행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고, 남자는 그런 용기가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결과는 안타깝게 되었고,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관객이 가지게 하는 것 이상으로 더 할 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