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에 따르면, <외계+인>은 그가 지금 30살이었다면 만들고 싶어 했을 영화다. 10대 시절 열광했던 외계인 영화는 그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 고전 설화가 더해지면 어떨까. <외계+인>이 할리우드의 SF영화와 차별화된, 누구도 도전한 적 없는 프로젝트가 되는 지점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질적인 요소일지라도 어떤 원자를 어떻게 충돌시키느냐에 따라 화학 결합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최동훈 감독은 2022년과 1390년, 외계인과 우주선 그리고 고려 무사들을 충돌시키며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추출하고자 한다.
- 시나리오를 많이 고쳐 쓰는 스타일이다. <암살>도 초고와 많이 달라졌었고. 이번 <외계+인> 시나리오는 어땠나.
= 완성하는 데 딱 2년 반 걸렸다. 처음에는 휙휙 썼는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제쳐두고 전혀 다른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깨달은 건 1년이 지나서다. 지금의 <외계+인>이 되기까지 일종의 습작을 여러 버전으로 쓴 느낌이랄까. 지금이야기를 압축할까, 아니면 좀더 쓸까 고민하는 데 또 1년이 걸렸다.
-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설정은 처음부터 있었나.
= 두 타임라인이 서로 간섭하고 영향을 끼치는 구상은 처음 시작할 때 부터 있었다. 관객에게도 재밌을까 아니면 나만 즐거운 걸까를 놓고 계속 고민했다. 시나리오는 65페이지밖에 안되는데 배우들은 설명이 별로 없어서 읽는 데 오래 걸렸다더라. 그런데 영화감독에게 최고의 찬사는 “시나리오보다 재밌다”는 거다. <외계+인>은 시나리오보다재밌다고 한다. (웃음)
- 전작들은 안정적인 티켓 파워를 가진 중년 배우들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화제성 높은 젊은 배우들이 전면에 나선다.
= 캐스팅은 유명한 배우들을 모아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모종의 흐름과 합이 맞아야 한다. 에너지의 교집합과 여집합이 있는데 너무 찰싹 붙으면 망치게 된다. 각자의 개성이 있으면서 완벽하게 불일치해야 한다. <도둑들> 때도 처음엔 조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찍다 보니 서로 다른 배우가 만나 충돌하며 나오는 화학작용이 재밌었다. <외계+인>의 김우빈, 김태리, 류준열은 서로 너무 달라 캐스팅하고 싶었다. 현대에서 외계인 죄수를 관리하는 가드(김우빈)는 옛날 고전영화에 나오는 고독한 청춘 같은 느낌이 있어서 무조건 젊은 배우가 해야 했다. 고려 시대 도사 무륵(류준열)과 이안(김태리)은 방년을 막 지난, 소년 소녀 같은 젊은 패기를 가진 배우가 필요했다.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감독에게 엄청난 행운이다.
- 전작 <암살>의 바탕이 리얼리즘인 반면 <외계+인>은 합성과 3D 촬영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다.
= 영화를 찍을 땐 일종의 흥이 필요하다. 우연한 것을 만날 때의 기쁨이 있다. 테크놀로지가 많이 들어간 장면은 흥이 나기보다는 어떤 룰을 지켜가면서 기대 반 의심 반으로 찍게 된다. 콘티를 영상으로 만든 프리비주얼을 기본으로 찍되 너무 영화적인 그림이 아닐 땐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원래 콘티대로 찍기보다는 현장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을 보고 유연하게 바꾸는 스타일이라 대사도 계속 바꾸는 편이다. 심지어 보름 전에 후반작업하면서 달라진 대사도 있다. 그런데 다 찍고 편집하면 결국 콘티와 비슷해지는 게 신기하다. (웃음)
- 국문과 출신이다. <전우치>처럼 감독의 전공을 살려 한국 전통문학의 매력을 잘 녹여낸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다. (웃음)
= 고전문학 중에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는 게 재밌지 않나. 한국에서는 판타지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리얼리즘의 왕국이기 때문에 판타지 장르를 만들겠다고 하면 주변에서 말린다. <타짜> 끝나고 <전우치>를 준비할 때도 주변에서 “<타짜2>를 해야지, 네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 사람들이 너를 업신여길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말을 들을수록 더더욱 <타짜2>를 하고 싶지 않았다.
- 최영환, 김우형 촬영감독과 작업하다가 이번엔 처음으로 김태경 촬영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스탭진을 꾸릴 때 중점적으로 고민한 부분이 무엇이었나.
= 일단 체력이 좋아야 한다. 프리프로덕션까지 합치면 18~20개월 정도 되는 기간을 버텨야 하니까.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많이 알고 호기심도 있어야 한다. 최영환 촬영감독과는 어렸을 때부터 네 작품을 함께했는데, 이번엔 그와 만들어왔던 룩과는 다른 느낌을 찾고 싶었다. <독전>의 촬영을 인상적으로 봐서 김태경 촬영감독을 만나 얘기를 꺼냈더니 굉장히 재밌어하더라. 촬영감독과 감독의 관계는 마치 부부 같다.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운명처럼 맞아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배우 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촬영감독이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에 대한 이해도 역시 중요한 덕목인데, 그런 면에서 김태경 촬영감독과 굉장히 잘 맞았다.
- 이번 영화는 단번에 떠오르는 레퍼런스가 거의 없다. 사람들이 언급하는 영화는 <전우치> 정도다.
= 분명한 레퍼런스가 있었다면 배우들도 시나리오를 좀더 쉽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이야기가 이전엔 없었다. 그런데 어렴풋이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있다. 어렸을 때 우주 괴물과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 시절 내가 열광했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이 <외계+인>을 만들 때 도움이 많이 됐다.
- 프리프로덕션은 물론 프리-프리프로덕션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했나.
= 6시간 정도 계속되는 끊임없는 회의…. (웃음) 이런 SF 판타지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으니 하나씩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엇이 맞는 걸까 갑론을박도 많이 했다. 그런데 선배들이 남긴 역사적인 창조 작업은 후배들이 위급할 때 구원이 된다. 이번엔 봉준호 감독의 <괴물> 디자인이 도움됐다. 3D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시뮬레이션하고,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굉장히 오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