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외계+인' 배우 김태리 "천둥을 손에 쥐고"
2022-07-13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김태리 배우는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그런 그가 권총을 들고 나온다면 얼마나 흥미롭겠나.”(최동훈 감독) 고려 시대 복장을 한 채 오른손엔 총을 쥐고 왼쪽 손목엔 시계를 찼다. 이 모순된 광경의 주인공인 이안은 대체 누구인가. 김태리가 연기한 이안은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도사 무륵(류준열)과 다투는 인물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무륵에게 “정확히 630년 후의 미래”를 고지하는 그의 모습은 현대와 고려 시대가 공존하는 <외계+인>의 서사를 더욱 궁금케 한다. 지난 4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종영 뒤 김태리는 인생의 두 번째 챕터가 열린 기분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우주가 열린 느낌이다. 너무 행복해도 잠을 잘 못 잔다던데 요즘의 내가 그렇다.” 그는 핸드폰에 빼곡히 적힌 메모를 꼼꼼히 살피며 에너지 가득한 목소리로 <외계+인> 촬영 당시의 열기를 전해주었다.

- <외계+인>은 맡은 인물만큼이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영화였을 것 같다. 최동훈 감독은 작품에 관해 어떤 설명을 해주던가.

= 대본을 받고 감독님과 미팅이 잡혔을 때였다. 케이퍼 필름에 갔는데 최동훈 감독님이 “이게 있잖아~” 하고 화이트보드에 그려가며 설명을 시작하셨다. 이야기를 듣는데 시간이 너무 잘 가는 거다. 들으면서 나름대로 계속 상황을 상상하게 되고. 예를 들어 이안은 고려 말에 속한 인물인데 어떤 이유에선지 총을 갖고 있고 무륵은 이 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 총을 봤을 때 “콩기름 냄새가 나는데?”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런 상황들이 너무 웃겼다. 고려 사람들이 현대인이나 현대의 물건을 볼 때, 그리고 현대인이 고려 사람과 고려 물건들을 볼 때 주고받는 대화들이 끝장나게 재밌었다. 그대로 홀려버렸다.

-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배우들의 반응이 비슷했다고. 다들 “정말 이게 된다고?” 하며 놀랐고 평소보다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하던데.

=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세상에 없던 이야기이자 접근이니까. 대본을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어? 진짜? 와~” 하게 된다. 나는 원래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굉장히 천천히 깊게 읽는 편이다. 자잘한 것도 다 보고. 그래서인지 특별히 더 오래 걸리거나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다.

- 최동훈 감독과 작업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이유가 작용했나.

= 자기 스타일이 확고한 감독님을 정말 좋아하는데 최동훈 감독님이 그런 스타일의 연출자라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로 <아가씨> 때부터 그랬는데 나는 말맛이 살아 있는 시나리오를 좋아한다. <외계+인>도 허투루 쓰인 대사 하나 없이 정말 갈고닦아 이거다 싶은 말들만 담겼다. 그래서 대사 한마디만 봐도 그 시퀀스의 재미가 확 느껴지고 팝콘이 팡팡 터지는 느낌이 든다. 배우로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만 이미 재밌게 써진 대사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도 좋아한다. 힘을 풀고 해보고 빠르게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상당하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천둥을 쏘는 처자’라는 캐릭터 설명이 흥미롭다. 천둥을 손에 쥔 이안은 어떤 인물인가.

= 착하고 솔직하고 주체적이고 감정적이지만, 그걸 다스릴 줄 아는 굉장히 현명하고 똑똑한 아이다. 그리고 희생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행할 수 있는 아이.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하는 멋진 친구다.

- 무척 정의로운 캐릭터로 들린다.

=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텐데, 예를 들면 무륵 입장에선 이안의 행동이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느껴질 거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이안의 행동은 굉장히 정의롭다고 볼 수 있다.

- <외계+인> 예고편을 봤을 때 그 짧은 순간에도 이안의 당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승리호>의 장 선장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연기한 배우로선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나.

= 함께하는 동료들에서 차이가 생긴다. 장 선장이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네명의 크루와 함께 활동해왔다면 이안이는 혼자 싸운다. 다시 말해 오롯이 혼자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인물이다.

-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주는 독특한 느낌도 있었을 것 같다. 전작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역시 시대극이었지만 고려 시대가 배경인 작품에 출연한 건 처음이다.

= 고려와 현대 두 시간대가 공존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특히 한국영화에 시대적 배경으로 고려가 등장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많지 않다. 조선이나 일제강점기 복장은 익숙해도 고려 복장은 새롭지 않나. 그런 비주얼적인 차이에서 오는 독특함이 있었다.

- 그래서인지 이안의 외형도 새롭다. 머리카락의 반만 상투처럼 틀어 올린 채 레드가 메인 컬러인 의상을 입고 활동한다.

= 이안이 입고 있는 옷은 여성의 복장이 아니다. 고려 시대 무관들이 입던 옷을 철릭이라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안이가 그걸 입는다. 남성 무관의 옷을 입은 데에서 생기는 캐릭터성도 분명 존재한다.

- 기계체조와 무술을 배우는 등 액션 신을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들었다. <미스터 션샤인> 덕에 총기 액션은 이미 익숙하지 않나.

= <미스터 션샤인>에서 권총을 한두번 쏜 적은 있지만 이안이가 쓰는 만큼 주 무기는 아니었다. <외계+인>은 캐릭터마다 액션의 결이 달랐다. 무륵이는 도술을 부리기 때문에 부채 하나로 상대를 때리더라도 그전에 세 가지 정도의 잔동작이 붙는다. 반면 이안이의 액션은 절권도에 가까워서 총을 쏠 때도 최소한의 동작으로 절제된 액션을 펼친다. 그래서 나도 옆돌기 한번 넣어주면 안되냐고 무술감독님에게 말씀드렸는데, “저한테 이러시면 안됩니다”라며 날 피해 다니시더라. (웃음)

- <외계+인>에 참여하면서 가장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은 무엇인가.

= 나는 지금껏 연기를 수동적으로 해왔던 것 같다. 스스로 ‘주어진 것이나 잘해내자’라는 의지가 강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은 꽤 능동적으로 임했다. “감독님, 제가 어젯밤에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건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그러면 감독님이 “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라며 고민하신 뒤 나중에 의견을 주셨다. 그런 조율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장면들이 있었다. 이만큼 내 의견을 표하고 감독님과 소통하며 작업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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