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도술이란, 마른하늘에 비가 내리고~.”
운을 띄우며 무륵(류준열)이 멋들어지게 부채를 휘두르는데 야속하게도 하늘에선 아무 소식이 없다. 자칭 ‘마검신묘’ 무륵에게 떨어지는 칭호는 결국 “고양이나 부리는 얼치기 도사”다.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도사 무륵은 <전우치>의 전우치처럼 <외계+인>을 견인하는 주인공이다. 배우 류준열은 <택시운전사> <봉오동 전투>와 같은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엔 참여한 적이 있으나 고려 시대 배경의, 도술을 부리는 판타지 SF 장르에 출연한 것은 <외계+인>이 처음이다. 하지만 청록색 도포를 갖춰 입고 거리를 누비는 그의 걸음걸이에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다. 초기 단계부터 무륵 캐릭터를 함께 구축하고, 홍콩 무협 고전을 두루 섭렵하며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해온 그에게 무륵은 이미 자신이나 다름없었다.
- <외계+인>은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인간의 몸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거나 혹은 상상해본 적이 있나.
= 믿지 않는다. (웃음)
- 그럼 작품에 임할 때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겠다.
= 그렇다. 그래도 SF영화를 좋아하고 또 배우들은 항상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연기하니까 이런 접근 방식이 낯설진 않았다. 시작은 이런 거였다. 외계인이 지금 있다면 당연히 과거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사람들은 외계인을 뭐라고 생각했을까. 우주에서 온 존재라기보단 아마도 요괴라 받아들였을 테고 그 발상에서 영화가 시작하는데, 그게 내겐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그래서 <외계+인>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대본도 보기 전에 참여 의사를 밝힌 건가.
= 그것도 있지만 최동훈 감독님과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배우가 되기 전부터 관객의 한 사람으로 감독님의 작품을 재밌게 봐왔다. 감독님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고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개인적으로 트렌드를 좇는 것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연출자를 좋아하는데, 도사나 신선에 관한 스토리를 확장시켜 <외계+인>으로까지 끌고 왔다는 점에서 감독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시나리오는 나중에 받았는데 두 번째 읽을 때 울었다.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지점이 있었다.
- 무륵은 어떤 캐릭터인가. 김태리 배우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류준열 배우의 실제 모습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하던데.
= 나의 편한 모습을 많이 봐왔고 그런 부분이 무륵과 싱크로율이 높다고 생각한 것 같다. (웃음) 무륵은 고려 말의 도사 중 한명으로 자칭 ‘마검신묘’다. 신묘라 하면 신통하고 묘한 능력이 있다는 것인데 그만큼 본인은 자신이 잘난 줄 안다. 하지만 남들은 무륵을 ‘얼치기 도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내가 다르다는 그 괴리감을 재치 있게 풀어내려고 많이 노력했다.
- 얼치기의 사전적 의미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이다. 꽤 추상적인 수식어라 무륵의 연기 톤을 어떻게 잡고 들어갔는지 궁금했다.
=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러 면모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받아들였다. 개인적으로 어떤 ‘체를 하는’ 인간상에 관심이 많다. 무륵은 사람들에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따뜻한 듯하면서도 때로 냉정하다. 나 역시 무륵의 다양한 얼굴을 연기하면서 그를 완성해나간다고 생각했다.
-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들로 미루어볼 때 무륵에겐 능글맞고 헐렁한 면도 있는 것 같다. 그에 맞게 애드리브를 한 신도 있을까.
= 감독님이 애드리브에 굉장히 열려 있었다. 그래서 무륵의 부채에 사는 고양이인 우왕이 좌왕이와 함께하는 신을 포함해 여러 장면에서 애드리브를 했다. 무륵이란 캐릭터를 처음 만드는 단계부터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실제 내 말투가 대사에 많이 반영됐다. 나로서도 더 편하고 유연하게 무륵이를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었다.
- 도술 액션은 어떻게 준비했나. 무륵이 가지고 다니는 부채도 일종의 무기인가.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내 몸의 일부와 다름없는 아이템이니까. 아무래도 도술 액션이다 보니 홍콩영화를 많이 참고했다. 한두편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1970~80년대 영화들을 많이 봤다. 어떤 기술은 참고하고 어떤 기술은 지양할 것인지 분류해가면서 관람했다.
- 예고편에 장풍을 쏘는 듯한 장면도 등장한다. 합성이나 3D 후반작업을 염두에 두고 상상하며 연기해야 하는 부분들도 있었겠다.
= 현대와 고려 시대의 액션 스타일이 좀 다르다. 좀더 SF 장르에 가까운 현대와 달리 고려 시대는 와이어 액션과 같이 직접 하는 액션이 더 많았다. 그래서 무술도 배웠고 기계체조 전문가에게도 수업을 들었다. 만족도가 높아서 나중에 김태리 배우에게 추천했고, 나중에는 김태리 배우가 더 만족해하면서 수업에 참여했다.
- 무륵을 연기하기 위해 오랜 시간 장발을 유지했다.
= 상투처럼 머리를 틀어 올려야 해서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머리를 길렀다. 이런 변화는 배우의 숙명인 것 같다. <외계+인>은 프리의 프리의 프리프로덕션까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가발을 썼을 텐데 작품 준비 기간이 길다 보니 나로서도 캐릭터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다. 진짜로 머리를 기르니 맡은 인물에 확 몰입되는 느낌이 들더라. 그 밖에도 무륵이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모자를 쓰기도 하고 벗기도 하고, 여러 의상을 입으며 갖춰나갔다.
- 김태리 배우와는 <리틀 포레스트> 이후 4년 만의 만남이다. 장르도 세계관도 다른 작품으로 재회하니 느낌이 어떻던가.
= 좋은 의미로 남달랐다. 예전에 <돈>을 찍을 때 유지태 선배님이 ‘배우인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놓아라, 그러면 나중에 엄청 좋을 거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게 이런 이유에서인가 싶었다. 사적으로 친한 친구와 현장에서 다시 만난다는 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 않나. 무척 반가웠고 감독님, 동료 배우들에게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친구에겐 할 수 있으니 그런 면에서 김태리 배우가 의지가 많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