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작은 아씨들’ 대담⑤ CP-감독-작가-미술감독, 그리고 전 캐스팅의 70%가 여자로 구성되었던
2022-12-23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지금 상상하는 미래는 10년 뒤 이미 과거가 될 것이다

- 류성희 미술감독은 여성감독과 처음 작업했다. 정서경 작가는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과 함께한 적이 있지만 다들 감독-작가-미술감독이 모두 여성인 경우는 없지 않았나.

김희원 여기에 조문주 CP까지, 네 파트가 모두 여성인 건 내게도 처음이었다. 확실히 요즘 드라마 업계에 여자들이 많긴 하다. <작은 아씨들>은 캐스팅까지 합치면 70%가 여자였다.

정서경 내가 만났던 PD들도 거의 대부분 여자였다. 특히 스튜디오드래곤에 비혼 여성 비율이 높다. 유심히 그들의 삶을 관찰해봤다.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의 인생에는 드라마밖에 없다.

김희원 절대 아니다! (웃음)

정서경 거짓말하지 마! 내가 다 봤어! 드라마를 위해 모든 걸 불태우는 분들이다. 인경처럼 헌신적으로 일을 통해 무언가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결혼도 안 하게 되는 거지. 그런데 그런 분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년 후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작품은 플롯이 아니라 젠더 감수성이 떨어져서 다시 못 본다. 사람들의 예상보다 현실이 더 빨리 변화하고, 그 현실은 이미 우리 삶에 당도했기 때문에 정말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거다. 지금 사람들이 상상하는 모습은 10년 뒤 이미 과거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게 엔터테인먼트의 미래와도 연관이 되어 있겠지. 인생이 곧 드라마인 여자들이 10년 뒤 어떤 작품을 만들지 정말 궁금하다.

류성희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는 10년 뒤 세계 100대 부자 대부분이 여자가 될 거라는 분석도 있었다.

정서경 나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두렵다. 남자들은 그 변화를 받아들일까? 여자들은 계속 무언가를 찾아가며 결국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어떻게 될까.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할까?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도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우리나라에서 부적응자는 그냥 탈락이다.

류성희 모계 사회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때 남자들은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고 그렇게 부계 사회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지금은 여자들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세상이 바뀌어가는 거지.

김희원 2006년 MBC에 입사했을 때 드라마국 합쳐서 여자 PD가 딱 4명이었다. 지금 활동하는 드라마 감독 중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유지하며 산다. 그게 정말 신기하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여성 드라마 PD가 결혼을 하다니, 한 가정을 파탄낼 셈이냐”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김은희 작가의 <악귀>를 연출하는 이정림 감독님이 <VIP>를 찍고 아기를 낳는다고 선언한 후 출산 후 현장에 복귀했다. 그래서 동료들이 굉장히 응원했다.

정서경 김희원 감독님의 사고방식이 투영된 문서화되지 않은 의사소통 구조가 있다. 두세개의 채널을 통하지 않고 자신을 통하도록 일원화되어 있는데 모든 사람의 말을 듣고 취합하기 때문에 아무도 불만이 없다. 토론할 수 없는 영역은 작가와 미술감독 등 각자에게 넘기고, 명확한 것은 양보하지 않는다. 매우 실용적이다. 요새 ‘여성의 리더십’에 대해 많이들 얘기한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그 의미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이 헤드로 올라가는 자본주의사회가 20년 뒤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때, 김희원 감독 같은 여성의 리더십이 변화를 만들 것 같다.

류성희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다. 정말 효율적이고 가볍고 투명하게 일한다. 그런데 자신이 주목받고 조명받을 수 있는 기회를 취하지 않는다. 고민을 많이 하지만 그걸 과시하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도 않고. 그래서 더 유능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스타일의 다른 감독이 있나?

정서경 처음 봤다.

류성희 그렇다면 이게 여성감독의 특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 없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16년 동안 드라마 일을 해오면서 이런 특성을 습성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처음 미술을 할 때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다. 여자는 나 혼자밖에 없었고,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스탭 입장에서는 여성이 하지 못하는 것을 연구하고 고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으면 나를 선택해줄 테니까. 그렇게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습득해나갈 수밖에 없던 것들이 있었다.

정서경 나도 오랫동안 그 고민을 했다. 충무로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장르물이 남성적 특성을 대변했다. 난 순수문학쪽에 흥미가 있었지 장르물을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친절한 금자씨> 끝나고 아이가 유괴된 이야기, 부인이 남편을 죽이는 이야기 같은 것만 들어왔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충무로에서 살아남으려면 장르물에 전문성을 가질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임신을 한 여성은 사회에서 최약체가 된다. 결국 내가 충무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게 드라마였다.

- 다들 2023년 계획은 어떻게 되나.

류성희 임상춘 작가의 드라마 <인생>(가제)에 참여한다. 그리고 최근 촬영을 마친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이 공개될 거다. 이전에 없던 소재를 다뤄서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정서경 작품이 잘 나왔다고 소문난 <마스크걸>과 지금 방송 중인 <재벌집 막내아들>이 후보에 없을 때 <씨네21> 올해의 시리즈 결산을 해서 다행이다. (웃음) 그나저나 지난해에만 해도 <작은 아씨들> 끝나면 드라마 안 한다고 했으면서. 너무 힘들다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내년에 드라마가 두편이나 있네.

김희원 나랑 첫 드라마를 하고 난 뒤 류성희 미술감독이 영원히 드라마를 하지 않게 되면 다른 감독들이 나를 질타할 거다. (웃음) 나는 내년에 현장을 도와드리러 가야 할 작품이 하나 있고, 디즈니+ <사운드트랙#2>도 준비해야 한다.

정서경 그리고 나와 함께 첩보 멜로물을 개발하고 있다.

김희원 그렇게 말하면 안돼. ‘첩보 멜로’라니. 다이내믹한 드라마라고 하자.

정서경 이미 얼마 전에 녹화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서 첩보 멜로라고 얘기했는데? 장르 정도는 말할 수 있잖아. 내가 첩보 멜로를 쓰는 게 뭐 그렇게 큰 비밀이라고…. 그리고 “다이내믹한 드라마를 쓰려고 준비 중이다”가 뭐야.

김희원 (뻔뻔하게) 드라마에 호기심이 마구 생기지 않나? 그나저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 잡학사전>에서 이미 얘기했다니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방탄소년단 RM도 알고 김영하 작가님도 안다는 거니까. 대신 감독은 비밀로 하자. “신원 미상의 어떤 감독이 연출한다.”

정서경 성별 미상은 어때. 이러면 더 여자감독 같으려나. 이걸 내년 안에 써야겠지? 내년 안에 다 쓸 수 있으려나…. 그리고 고쳐야지. 촬영 중에도 계속 고쳐야 하고.

김희원 작가님…. 그 얘기는 나중에 저랑 천천히….

정서경 내가 단 한 가지 조건을 얘기했다. 이번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쓰고 싶다고. 그랬더니 좋다면서 내년 8월까지 대본을 쓰라는 거다. 그래놓고 자기는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대! 오늘 김희원 감독의 장점만 잔뜩 얘기했다. 감독님의 장점만 얘기해도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단점도 있어!

류성희 이 대담이 이렇게 끝나면 재미있겠다. 아까 그렇게 미래를 논했는데 결국 작가와 감독이 티격태격하다가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면서…. (일동 폭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