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2023 전망② 이창현 쇼박스 수석부장(CP2), “이슈나 트렌드에 맞춰 배급 타이밍 잡아야”
2022-12-29
글 : 김수영
사진 : 오계옥

올해 쇼박스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비상선언> <압꾸정> 세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정량적으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OTT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해온 쇼박스는 올해도 콘텐츠 유통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올여름에는 미디어데이를 열어 멀티 콘텐츠 스튜디오로 진화하겠다는 비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디어 환경과 관객의 변화 속에서 이창현 수석부장은 “쇼박스만의 엣지를 살려 새로운 콘텐츠를 제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올해 쇼박스 흥행성적을 포함해 2022년을 돌아본다면.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으로 발돋움하는 첫해였다. <범죄도시2>로 극장가가 회복하나 싶었지만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극심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세편의 담당자로서 반성도 하고, 남들보다 시장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가장 크게 느낀 건 관객의 변화다. 예전엔 시나리오가 아쉬우면 캐스팅으로 보완되고 캐스팅이 모자라면 CG로 승부를 거는 식으로 관객에게 후킹 포인트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관객은 더이상 화려한 캐스팅에도, 엄청난 CG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내러티브적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본 한해였고, 아쉬움이 많았던 만큼 관객에 대한 철저한 스터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 관객의 변화가 극장가에 어떻게 반영됐다고 보나.

= 예전에는 1주차 성적이 전체 스코어의 50% 이상을 차지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더라. 잘되는 영화는 2주차 때도 드롭이 없다. 예전에는 관객이 ‘이 배우 혹은 이 감독 때문에 꼭 봐야 해, 재미있겠다’ 싶어 개봉날을 기다려 예매하고 입소문을 냈지만, 요즘 관객은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서너번에 걸친 확인 절차를 밟은 후 움직인다. 주말까지 살펴보고 다음주에 봐야지, 하는 식이라 드롭이 없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첫주 예매율이 절반 정도 가더라도 2주차 예매율이 어느 정도 따라와주면 롱런하는 식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 OTT와의 협력 방식도 이례적이었다. <비상선언>이 극장에 걸려 있는데도 쿠팡플레이에서 독점 공개했다.

= 영화의 제1 윈도는 극장이고 홀드백을 지킨 후 다른 플랫폼에 넘어가는 게 기존 질서였지만 이마저도 바뀌고 있다. 쿠팡플레이가 본격적으로 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했고 우리도 리스크 햇지(hedge)가 필요한 상황이라 양쪽 니즈가 맞았다. 이런 식의 변칙 내지는 합종연횡으로 상식을 깨는 다양한 이슈가 계속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OTT 오리지널이 일정 기간 홀드백을 지킨 후에 극장 개봉하는 식으로 제1 윈도와 제2 윈도가 바뀌는 현상도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 전통적인 투자배급사였지만 기획·제작에 힘을 쏟으며 멀티콘텐츠 스튜디오로 확장했다.

= 2020년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드라마로 확장했지만 한동안 업무 비중이 영화쪽에 치우쳐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 극장이 침체되고 영화 개봉이 미뤄지면서 신규 투자도 정체됐다. 이렇게는 자생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지난해 초에 콘텐츠 스튜디오로 발돋움을 시작했다. 2년간 다양한 시도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드라마 전문 제작사처럼 모든 장르를 소화하기보다 쇼박스 라이브러리가 가진 엣지를 살릴 수 있는 OTT 시리즈 위주로 기획·개발하고 있다. <살인자o난감>(감독 이창희·출연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 등 절반 이상 촬영이 들어간 시리즈가 두개 있고, 영화 <피랍>(감독 김성훈·출연 하정우, 주지훈)은 막 촬영이 끝나서 후반작업 중이다. 올해 <어나더 레코드>처럼 다큐나 예능 형식도 추가로 디벨롭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정도면 드라마도 있고 영화도 있고 다큐도 있는 종합 콘텐츠 스튜디오 쇼박스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다.

- 신규 프로젝트의 투자 진행 상황은 어떤가.

= 시나리오 개발 자체가 중단되기도 하고 시장에 자금이 유동적으로 돌지 않아 신규 투자에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자체적인 IP를 확보하는 데 많이 투자했다. 현재 기획·개발하고 있는 70~80개 작품이 있는데 작가 혹은 웹툰이나 원작에서 가져온 아이템이거나 회사가 오리지널로 만들어낸 아이템이다. 무엇이든 페이퍼 형식으로 기획·개발하고자 하면 작가 인건비나 서치 비용이 든다. 이렇게 시리즈를 발굴하기 위한 초기 투자가 많이 진행됐다.

- 상대적으로 신인감독이나 작은 규모의 영화 투자가 위축됐겠다.

= 부정할 수 없다. 투자를 결정할 때도 확실한 볼거리가 있든지 유명 감독이나 배우로 포장된 콘텐츠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천만 영화는 매년 나올 듯하지만 500만~700만 관객을 모으는 영화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예전에는 손익분기점 차원에서 많이 본다고 얘기할 때 그래도 300만명은 넘겨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기준이 100만명 정도다. 그러다보니 작은 규모의 영화나 신인 크리에이터에 대한 투자가 위축됐지만 그래도 함께 가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제작비를 적게 쓰지만 개성이 확실한 콘텐츠가 있다. <완벽한 타인>도 스타들이 포진해 있지만 규모는 작은 영화였고 <곤지암>도 확실한 볼거리와 후킹 포인트가 있었다.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크고 작은 영화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 내년 라인업 작품들의 배급 일정이 대부분 미정이다. 무엇을 가장 고려하고 있나.

= 방학 시즌을 성수기로 보고 텐트폴 영화만 잡아둔 정도다. 언제부터 5월이 천만 영화가 나오는 시장이 됐나. 이제는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다. 이 말은 관객이 관심 있는 이슈나 트렌드에 맞춰 배급 타이밍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경쟁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사람들이 어떻게든 극장에 와야 예고편이라도 보고 입소문이 날 테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급하는 데 있어 내년에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질 것 같다.

- 2023년 극장가를 전망해본다면.

= 경기 침체에 따라 극장 상황도 계속 움츠러들 것 같다. 다만 <범죄도시2> 마동석의 주먹을 작은 모니터보다는 큰 스크린에서 보고자 하는 관객의 니즈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팬데믹의 어려움으로 티켓값이 상승했지만, 가격을 올린 만큼의 새로운 서비스나 콘텐츠 모색 없이 결정된 점은 아쉽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악조건인 상황이지만 쇼박스도 관객이 시간을 들여 극장에 올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계속 찾고 있다. 사는 게 팍팍한 만큼 엔터테이닝한 콘텐츠로 기획·개발해나가려고 한다. 꼭 코미디 장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재미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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