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씨네21 필자들이 선정한 인상적인 K팝 뮤직비디오들
2023-02-09
글 : 씨네21 취재팀
뉴진스 부터 레드벨벳 <7월 7일>까지

뉴진스 《Ditto》

뉴진스가 보여주는 묘한 시차가 항상 흥미롭다. 음악은 가장 최신의 것을 레퍼런스 삼으면서, 뮤직비디오를 살펴보면 20세기적인 테이스트가 언뜻 비친다. 어쩌면 그저 레트로가 유행한 까닭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 가장 최신의 것과 노스탤직한 것을 동시에 수행하는 소녀들의 이미지가 탄생했고, 뉴진스는 일찍이 K팝의 역사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결과물을 산출해낸다.

《Ditto》는 그 매력을 극대화해 보여준 곡이다. 20세기적인 학교 이미지를 중심으로 지나가버린 어떤 시절을 그리워하는 뮤직비디오의 서사 속에서 21세기 소녀들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 전략이 재미있는 것은 뉴진스가 데뷔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인 그룹이라는 점에 있다. 그 탓에 이것은 일종의 묘한 시간 역전이 되어버리며, 뉴진스를 보는 이들은 언젠가 먼 미래 그들에게 느끼게 될 그리움을 미리 겪고야 만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품은 그리움과 그 애정을 뉴진스에 투영하기도 하리라. 이 어긋난 시간 감각이야말로 뉴진스가 보여주는 그 낯설지만 익숙한 매력에 우리가 쉽게 투항하는 이유일 것이다. 황인찬 시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The Dream Chapter: MAGIC Concept Trailer》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정규 1집 《The Dream Chapter: MAGIC》의 소년들은 또래와의 비교 속에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만 같아. 우는 것보다 웃을 때가 더 아파”라는 자기 연민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해리 포터>의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에게 “숨겨진 9와 4분의 3엔 함께여야 갈 수 있어”라고 고백한다. “캄캄한 그 계단 밑에서 널 본 순간 마법은 시작됐어. 네 눈물로 주문을 만들자. 다신 울지 않게.” 존재를 부정하고 싶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감정 전이의 기적을 갈망하는 10대의 고요한 질풍은 환상적인 ‘마법’의 이미지로 환유된다. 방탄소년단의 직속 후배 그룹을 론칭한 빅히트뮤직은 이러한 앨범 컨셉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성수동 디뮤지엄이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할 법한 미디어 파사드를 선택했고, 당시 전원 10대(만 나이 기준)였던 멤버들이 교복을 입고 공연했다. 어린 나이에 수준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K팝 그룹의 특성과 레이블의 과감한 기획력, 국회의사당에서 진행했던 ‘로보트 태권V’ 미디어 파사드로 주목받은 룸펜스의 재능이 만나 탄생한 기념비적인 미디어 아트. 해당 프로젝트는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미리 메들리로 들려주는 영상(《The Dream Chapter: MAGIC Preview》)까지 단순한 프로모션용 티저로 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는데, 완성도 높은 사운드와 귀여운 일탈의 이미지, 기록 영상의 노스탤직한 질감의 공감각을 인상적으로 콜라주한다. 임수연 기자

아이유 《에잇》(Prod.&Feat. SUGA of BTS)

‘당신의 모든 기억을 저장하시겠습니까?’ 짧은 질문으로 시작하는 아이유의 <에잇>은 깊은 슬픔의 자취를 좇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바닥에 널브러져 보내던 평온한 오후,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며 하릴없이 웃게 되던 순간들, 누군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은 결국 “마음대로 왔다가 인사도 없이 떠난” 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보여준다. 《에잇》 뮤직비디오는 유독 집이라는 공간에 담긴 기억과 감정 변화를 다스린다. 집이란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거주자의 가장 내밀한 구석이 반영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일상적 결핍과 부재의 낙차를 크게 느끼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아이유는 잃어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며 애도한다. “이대로는 무엇도 사랑하고 싶지 않”고 “한뼘짜리 추억을 잊는 게 참 쉽지 않”지만 기억을 삭제하기보다 저장하기를 선택하면서 슬픔이 파생한 모든 고통을 포용하기로 결정한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즐거운 듯 홀로 달리는 장면에서 아이유의 곁을 지킨 것은 그보다 조금 더 앞서간, 제 몸집보다 더 길어진 그림자다. 이 그림자는 아이유 자신의 일부이자 “서로를 베고 누워 슬프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던” 이가 남긴 영원한 기억이다. 이자연 기자

샤이니 《View》

보이그룹 뮤직비디오에 이국의 여성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흔하지만, 《View》의 화법은 뭔가 달랐다. 뮤직비디오의 배경지인 태국에서도 연예인이라는 배역을 받아든 샤이니는 복면을 쓴 소녀들의 인질이 된다. 특정한 위치에서 오는 구속이 다른 구속으로 이어졌음에도 다섯 소년은 자유로워 보인다. 해사한 괴한들을 따라 술을 훔치고, 히치하이킹에 나선다. 이 아이러니한 일탈을, 《View》는 청량하게 소화한다. 플래시라이트 아래의 스타를 회색조에 물들였다가 그들이 납치돼 낯선 땅을 밟는 순간 총천연색을 뿌리는 식이다. 이런 전환은 익명의 행인이 뻗는 휴대폰 카메라는 제지하지만 동행이 된 소녀들 앞에서는 기꺼이 안무를 선보이는 멤버들의 몸짓과 통한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view)으로서의 아이돌은 누구의 몫일까? 혹은 누구의 몫일 때 상호간의 시선이 교환될 수 있을까? 《View》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 위에서 익숙한 질문을 던진 후 도망자들의 귓가에 사이렌을 울리며 맺어진다. 외화면 공간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고개를 돌리는 태민의 옆얼굴을 보며, 나도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공범이 된다. 남선우 기자

뉴진스 《Attention》

뉴진스의 《Attention》 뮤직비디오가 묘사하는 무대는 밝고 청량하다. 초반부의 어두운 공연장에서 빠져나오면 소녀들은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면서, 바다로 떠나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한다. 그들은 언제나 웃음 짓고 춤을 추며 쨍쨍한 날씨 속에서 뛰어다닌다. 뮤직비디오의 2분40초대, “지금 돌아서면 I need ya, need ya, need ya”라는 파트가 나온다. 이 부분의 안무는 깍지 낀 두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이다. 크롭티를 입은 한 멤버가 안무를 추자 갈비뼈가 보일 만큼 마른 몸이 드러난다. 그 순간에 피사체의 상체 전반을 담아내는 숏 사이즈로 진행되던 뮤직비디오가 다섯 멤버를 멀찍이서 비추는 롱숏으로 전환된다. 갈비뼈가 드러나는 마른 몸은 멀리 숨겨지고 《Attention》이 추구하는 10대 소녀들의 자연스럽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몸은 훼손되지 않는다. 단순히 곡의 진행에 맞춘 우연적 편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의 순간적인 편집은 뮤직비디오가 실체와 무관하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추는지 돌아보게 한다. 김병규 영화평론가

이달의 소녀 yyxy 《love4eva》(feat. Grimes)

숲속의 외딴 고성, 4명의 소녀가 한 선생의 통제 아래에서 기숙 생활을 하고 있다. 소녀들은 벽, 문, 온갖 엄폐물 뒤에서 연신 서로를 훔쳐본다. 이 시선들 속에서 애정, 질투, 호기심, 유혹 등 오묘한 감정의 관계도가 얽히고설킨다. 대사 없이 진행되는 서사임에도 인물들의 시선 교환과 표정, 동선이 수용자에게 충분한 감정과 함의를 전달한다. 무성영화와 비슷하다. 이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디지페디의 인장과도 같은 방식이다. 그리고 이달의 소녀는 이러한 디지페디의 방법론을 투영하기에 최적의 그룹이다. 멤버간의 관계성, 그룹의 세계관이 두드러지는 만큼 네 멤버가 표현하는 감정의 순도와 강렬함 역시 선명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음악의 구성과 쪼개지는 리듬이 영상의 결과 명쾌히 맞물리는 좋은 뮤직비디오란 점이다. 동시에 그룹 고유의 서사, 이후 프로젝트와의 연관성을 뮤직비디오 곳곳에 적절히 포석한 K팝 비디오의 좋은 선례이기도 하다. 최근 급속도로 거대해진 K팝 비디오보다 외형은 다소 소박하지만, 내실은 단단하다. 이우빈 객원기자 기자

더보이즈 아이덴티티 필름 《GENERATION Z》

“사람들이 절 착하다고 하는데 그냥 착하기만 하면 매력 없잖아요.” 《GENERATION Z》에서 주연은 말한다. 카메라는 슈퍼카와 함께 레이싱 슈트 속에서 더 부각되는 주연의 널찍한 어깨와 팔뚝을 훑고, 은근한 눈짓을 좇는다. 그리고 슬로건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는 타이포. “JUYEON IS NOT SUCH A GOOD BOY.” 자, 이게 15초짜리 주연 파트의 결론이다. 노상윤 감독의 더보이즈 아이덴티티 필름은 기존 K팝 아이돌 산업엔 없던 형식이었다. 이것은 매우 ‘피처적인’ 기획인데, 마치 패션 매거진 피처 에디터가 인터뷰를 하고 화보를 찍을 때 아티스트의 속내를 들춰내고 그것을 비주얼라이징하는 작업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감독은 멤버들에게 형처럼 다가가 인터뷰를 했고, 가장 내밀한 마음을 끄집어내 반전 매력을 극대화한 멤버별 필름으로 그룹을 리브랜딩했다. 차려입은 옷보다는 맨 살결이, 그보다는 속마음이 가장 매혹적인 법. 패션지 어시스턴트 출신이자 어릴 때부터 잡지를 탐독했다던 감독이 인터뷰어로서의 시선을 영상으로 풀어냈을 때, K팝에 이식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가장 또렷하고 성공적인 결과물이다.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레드벨벳 《7월 7일(One Of These Nights)》

뉴진스의 《Ditto>와 레드벨벳의 《7월 7일》은 모두 무언가 잃어버린 느낌을 토대로 아름다움을 짓고 있다. 같은 기획자(민희진)가 프로듀싱한 결과물이란 점에서 취향의 문제로 환원할 수 있겠지만, K팝 뮤직비디오의 어떤 매력이 때로는 너무도 태연하게 불길함을 동반한다는 사실은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문제다. 《7월 7일》에서 슬기와 웬디는 선실 복도를 거닐고, 예리의 돛단배엔 물이 차오르며, 아이린은 수압 때문에 유리창이 깨지자 프레임 바깥으로 쓰러진다. 문을 열면 조이는 이미 눈부신 천국의 정원에 도착해 있다. “우리 다시 만나”라는 말은 창과 문, 열쇠 구멍을 미로처럼 넘나들며 서로를 끝없이 회부하는 소녀들의 매치컷을 통해 역설된다. 어째서 걸그룹이 몽환, 수수께끼, 키치라는 자신들의 공인된 컨셉을 동원해,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키는 이토록 심미적인 애도를 만들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추측은 아름다움이 반드시 윤리적 둔감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믿음이다. 아이돌 산업에서 금지된 비탄을 위해 마련된 《7월 7일》은 몽환은 결국 꿈에서 깨어난 뒤의 섬뜩함으로 이어진다. 아이돌과 한 세대의 운명 공동체적 숙명은 때로 이렇게도 새겨진다. 김소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