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아나토미 오브 어 폴’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 공식 기자회견
2023-06-09
글 : 김소미

<아나토미 오브 어 폴>

시작은 부부의 해부학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결혼의 아득한 심연을 탐색하기 시작한 쥐스틴 트리에 감독이 그들의 행선지를 프랑스 법원으로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의 매우 사적인 영역이 파트너에겐 지옥이나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극적인 각색을 거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의 죽음이 <현기증>처럼 전환되어, 이 일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관해 말해주는 사건이 되도록”(작가 아서 하라리) 구조되었다. 황금종려상을 받지 않았다면 가장 유력하게는 잔드라 휠러의 여우주연상을, 다음으로는 각본상에 걸맞은 영화였을 <아나토미 오브 어 폴>에서 감독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 아서 하라리는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가 어떻게든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현명한 전망을 갖고 시나리오에 임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의 센터피스는 극 중 유일한 어린아이”이기도 하다. 어릴 적 남편의 부주의로 시력을 잃은 아들(밀로 마차도 그라너)은 개와 눈밭을 산책 중 다락방에서 추락사한 아버지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주요 증인으로 나온다. 감독은 “자신의 엄마를 신뢰하는 동시에 (살인범일 수도 있기에) 두려워하는 아들이 스스로 자기 진실을 결정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위해 작품 이력 중 처음으로 어린이를 주요 인물로 받아들였고, 영화는 “그래서 소년이 혼자서 선택한 진실이 무엇인지 관객 역시 끝까지 모르게” 만든다. 다만 우리는 법정 공방이 결코 대변하지 못하는 복잡한 관계의 아득함을 받아들이며, 이 지적고 감정적인 스릴러 앞에서 경탄 섞인 한숨을 내뱉게 될 뿐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조너선 글레이저는 <언더 더 스킨>을 마친 뒤 2년 정도 지난 무렵에 마틴 에이미스의 소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설에 정말로 빠르게 연루되어 마침내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다. 내 인생의 근본적인 부분을 바꾸어놓는 경험이었다.” 한쪽에는 강제수용소, 다른 한쪽엔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집,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벽. 단 세 가지 조형물이 글레이저의 초창기 시각적 비전을 견인했을 뿐 그는 “현장에서 작업을 마주하기까지도 정확히 이 영화가 어디로 갈지 나 역시 몰랐다”고 솔직하게 밝힌다. 길을 터준 것은 감독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유동적 진화의 과정”이었다. 나치즘이라는 현상 이면에 자리하는 정신적 교착 상태를 체험시키는 미카 레비의 음악이 이미지를 압도하는 수준의 충격 효과를 갖게 된 것은, 글레이저가 음악과의 상호작용을 위해 편집본을 무한정 수정하는 일종의 기행을 지속했기에 가능했다. <언더 더 스킨>에서도 유효했던 이 작업방식은 감독, 음악가, 그리고 편집감독이 감금 상태를 자처한 뒤 장면과 음악을 신별로 대조하며 조율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제작자는 무척 싫어했지만” 결과적으로 글레이저의 대담한 여정은 올해 칸에서 가장 열성적 지지를 받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제 최소한의 확신을 갖고서 말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주장이 있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상관없이 각자의 폭력적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며,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만든 이들이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라고 안전한 거리를 두는 것은 편의적 믿음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덜 확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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