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황선우 대원의 우주 생존기, 가족주의와 미디어 활용으로 차별화 꾀한 SF영화 ‘더 문’
2023-08-04
글 : 정재현

로버트 저메키스, 알폰소 쿠아론, 크리스토퍼 놀런, 리들리 스콧, 제임스 그레이…. 자기만의 영화 세계를 공고히 쌓아가는 감독들은 필모그래피에서 불현듯 혹은 기필코 한번쯤 ‘무한한 공간, 저 너머’인 우주로 날아오른다. <더 문>의 김용화 감독 또한 그랬을 터다. 일순간 활공 후 땅에 착지하는 것이 핵심인 스키 점프 선수들에 관한 영화 <국가대표>나 아예 땅밑 사후 세계로 내려가던 <신과 함께> 시리즈를 거친 후, 그는 지상과 지하를 떠나 대기권 밖 달을 향해 영화를 쏘아올렸다.

미디어가 부여한 동시대성

2024년 대한민국은 유인 달 탐사선 나래호를 우주로 쏘아올렸지만 나래호에 탄 우주인 셋을 모두 잃는 참변을 겪는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우주 연합에서 탈퇴당하는 수모를 겪고 각고의 노력 끝에 2029년 다시 세명의 유능한 우주인을 달 탐사선 ‘우리호’에 싣는다. 하지만 우리호는 달 착륙 직전 태양풍을 직격으로 받아 우주인 두명이 정비 도중 순직한다. 우리호에는 해군 특수전전단(UDT) 출신 막내 대원 황선우(도경수)만이 남는다. 표류 직전의 선우와 우리호를 구출하기 위해 나래호 발사 실패 이후 소백산 천문대에 칩거하던 나로우주센터 전임 센터장 김재국(설경구)이 복귀한다. 재국은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는 유인 달 궤도선 미국 디렉터 윤문영(김희애)에게도 미국의 우주 기술을 활용한 도움을 요청한다.

<더 문>의 스토리는 거칠게 요약하면 ‘황선우 대원 구하기’다. 우주에 홀로 표류해 수차례 위기를 겪는 선우를 한국의 재국이 원격으로 돕고 이따금 미국의 문영이 원조한다. 선우는 총 5번의 위기를 겪는다. 선우가 겪는 두번의 위기는 태양풍으로부터, 세번의 위기는 달에 내리는 유성우로부터 비롯한다. 선우는 지구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닥치는 우주의 위험 기상 현상과 끊임없이 맞서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선우의 치열한 사투 위로 위기마다 신체적, 감정적 변주를 준 배우 도경수의 투지가 월식처럼 겹친다. 해사하고 무구한 얼굴로 우리호에 승선하지만 선우가 지닌 깊은 상실이 이따금씩 드러날 때, 연약한 소년처럼 보이는 선우가 사생결단하며 생존을 위해 몸을 던져 덤빌 때, 도경수는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대신 자신과의 싸움을 택하며 광막하고 고독한 우주 속에서 장면을 장악한다.

한편 미디어 또한 황선우 대원 구하기에 적극적으로 일조한다. 나래호와 우리호의 유비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영화가 시작되고 뉴스 속보 및 앵커와 우주 전문가의 대담을 삽입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식이다. 관객이 낯설어할 법한 우주 과학 용어가 재국과 선우, 재국과 문영의 교신 중 쏟아지는데, 이때 실제 다큐멘터리와 뉴스의 편집 및 송출 방식으로 만들어진 푸티지들이 이해의 장벽을 낮추고 우리호 발사의 성공과 선우의 무사 생환을 직접적으로 호소하며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영화 후반에 이르면 선우의 구출을 위해 현재 전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 뉴미디어 플랫폼이 활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디어는 우주 구출 영화의 전형적 서사 구조를 취하는 <더 문>에 묘한 동시대성을 부여한다.

삶의 굴레이자 이유, 가족

<더 문>이 표방하는 캐치프레이즈는 ‘한국 SF’다. 이는 SF 불모지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새로 야심차게 선보이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 곳곳에 자리한 각각의 이념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속성이기도 하다. <더 문>은 여러 의미에서 다분히 한국영화적이라 불리는 가치를 내러티브에 녹여낸다. 이러한 가치들은 김용화 감독이 전작 <국가대표>나 <신과 함께> 연작에서도 주요한 감정적 동기로 삼았던 인자들을 활용한 것이다.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은 국가지상주의와 가족주의 아래에 놓여 있다. 영화 속 한국 연구원들의 우주선 건설 기술은 곧잘 대한민국의 기술력으로 통칭되고 우리호에 홀로 남은 선우의 생환은 미디어를 통해 우주국뿐 아니라 전 국민의 염원으로 치환된다. 선우는 달 착륙 후 크레이터에 태극기를 꽂는다. 그리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국민을 향해(그리고 관객을 향해) 거수경례를 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대한민국도 달에 갈 수 있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고스란히 “대한민국도 이런 SF를 만들 수 있다”로 자동 번역돼 들린다.

우리호에 승선한 이들은 모두 전통적 부성의 영향 아래 있다. 선우의 아버지 황규태(이성민)는 재국과 함께 나래호를 연구했으나 나래호 발사가 실패한 후 세상을 등졌다. 못다 이룬 아버지의 꿈을 달성하고자 하는 선우는 자기만 아는 아버지의 비밀을 함구한 채 우리호에 오르고,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 온몸으로 애쓴다. 그리고 선우의 동료였던 두 선배 모두 지구에 자녀를 둔 채 우리호에 오른 아버지라는 점이 선우의 고난에 부채감을 더한다.

한편 지구에 남은 이들도 가족 관계로 얽혀 있다. 재국과 문영이 한때 부부였기 때문이다. 관객은 작품의 큰 줄거리와 무관한 이 설정만으로도 둘 사이의 감정적 유대를 짐작할 수 있다. <더 문>의 캐릭터들에게 가족은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또한 이들에게 가족은 서로를 살리고 살아남아야 하는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각자의 생명과 일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이들은 결단의 기준을 오로지 가족에 둔다. 이같은 가족주의는 김용화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인물들의 용서와 구원 그리고 상호 위로로 귀결된다. 재국은 선우의 목숨을 구함과 동시에 선우가 품은 아버지를 향한 응어리를 풀도록 돕는다. 선우 또한 산속에서 두문불출하던 재국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고 재국이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던 선우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던 재국은 달과 지구에서의 필사적 교신을 통해 마음속 적개심을 각자 해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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