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소리로 구현한 우주의 리얼리티’, 최태영 음향감독이 말하는 ‘더 문’ 제작기
2023-08-04
글 : 이우빈
사진 : 오계옥

<신과 함께> 시리즈에 이어 다시금 김용화 감독과 함께한 최태영 음향감독은 <더 문>의 이야기를 ‘한 사람의 생존기’로 요약한다. 여타 SF 우주영화와 달리 <더 문>의 사운드가 ‘현실성’에 방점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실제 우주에선 소리가 나지 않지만, 관객이 우주의 소리를 감정적으로 문제없이 수용하게끔 만드는 ‘영화적 리얼리티’가 그의 목표였다. 한편 <더 문>은 동시녹음을 최소화했기에 보통의 장편영화보다 2배의 작량이 필요했다. <기생충> 등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비롯해 200편이 넘는 영화에 참여해온 그에게도 <더 문>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새로운 시도였던 셈이다.

- 김용화 감독은 <더 문>을 두고 “SF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우주 배경의 영화이긴 하나 현실성과 드라마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음향 측면에선 이 간극을 어떻게 조절했나.

= 여기서 말하는 현실성이란 영화의 이야기가 실제 우리 생활과 맞닿아 있다는 감정적 느낌일 수 있겠다. 우주라고 해서 외계인과 싸우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한 사람의 생존기가 중심이니까. 예를 들어 <스타워즈> 시리즈나 이전에 참여한 <승리호>처럼 SF적 상상력이 주요한 스페이스 오페라와 비교할 수 있다. 이런 작품들은 마냥 우주에서 들릴 것 같은 소리로만 차 있지 않아도 괜찮다. 가령 우주선이나 총소리 사운드에 우주 하면 떠오르는 먹먹한 소리가 굳이 껴 있을 필요가 없는 거다. 반면 <더 문>엔 우주의 공간성을 실감하게 하는 영화적 리얼리티, 즉 정말 우주에서 날 법한 소리가 꼭 필요하다. 따지자면 <그래비티> 계열의 성질인 것이다.

- 우주 공간의 영화적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궁금하다.

대전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좇는 데 충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물이 이후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는 난국에선 소리의 중후함을 살려 우주가 지닌 미지의 뉘앙스를 강조한다. 그러다 인물이 상황을 타개하면 소리의 깊이를 살짝 없앤 후 음악을 삽입한다든지 해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러면 관객은 큰 이질감 없이 우주의 소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영화에선 소리의 변화뿐 아니라 소리가 완전히 제거된 침묵의 상황이 등장하기도 한다.

= 이것 역시 감정의 극적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원리는 간단하다. 아예 모든 소리를 차단해 완전한 침묵을 조성한 뒤 급격하게 소리를 분출한다. 관객이 숨죽일 수 있는, 침 삼키기조차 눈치 보이는 타이밍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준 거다. 말하자면 사운드의 플러스 디자인이 아니라 마이너스 디자인이라 할 수 있겠다. 후반부 몇 군데에 적용하긴 했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웃음)

- 실제 우주엔 소리가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사운드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컸을 것 같다.

= 맞다. 예를 들어 실제로 달에 발을 디딘다고 해서 당연히 소리가 나진 않는다. 그러니 방금 말한 것처럼 인물의 감정에 기반해서 여러 사운드 디자인을 추가했다. 이제 막 달에 착륙했다는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발소리 대신 심장박동 소리를 넣는 등의 방식이다. 지면에 닿은 발바닥의 진동이 몸의 세포를 매질로 해 뇌에 전달되는 충격의 감각을 소리로 디자인했다고 볼 수 있겠다.

- 유성우가 우주와 달에 떨어지는 장면은 특히 사운드의 다양성과 완급 조절이 두드러진다.

= 마찬가지로 우주에서 유성우가 떨어질 때 특정한 소리가 나진 않는다. 그러니 어떤 장면에서는 일반적인 충돌음을 소스로 쓰되 우주에서 들리는 느낌을 주기 위해 먹먹한 톤을 가미했다. 하지만 인물이 당장 유성우에 쫓기거나 위협을 느낄 때는 그전의 소리와 다를지라도 더 ‘지구적’인 폭발음을 썼다. 극강의 영화적 체험을 위해 일종의 수위 조절은 필수다.

- 우주 공간의 앰비언스를 어떻게 조절했는지도 궁금하다.

=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도시의 룸 톤이나 에어 톤을 썼다. 이런 원료에 고주파는 거의 깎아내고 에코나 리버브를 넣어서 앰비언스를 만들었다. 다만 정말 낮은 음역대이고, 볼륨 조절을 치밀하게 해둔 터라 소리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다.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완전한 침묵 상태라 여길 수도 있다. 소리가 있다는 인지의 경계선을 넘는다 해도 공기를 통해 귀로 듣는다기보단 몸의 세포가 직접적으로 느끼는 정도다.

- 대화의 대부분이 무전으로 이뤄진다. 인물들이 처한 장소의 물리적 여건이 다른 만큼 소리에도 차이가 있다.

= 예를 들어 우주선 안과 밖에서 교신하는 장면에선 우주선 내부 인물은 PA 스피커(넓은 공간에서 사용하는 확성용 스피커)로 목소리를 들을 테고, 바깥 인물은 헬멧의 내장 스피커로 소리를 듣지 않겠나. 그러니 돌비 애트모스 환경에서 전자는 천장쪽에서 소리가 발원하며 퍼질 것이고, 후자는 헬멧 속에 소리가 도는 공간감을 구현하기 위해 스크린쪽에서 소리가 울리게 돼 있다. 마찬가지로 나사 사무실인지, 한국 우주센터인지, 소백산 천문대의 작은 작업실인지에 따라 필터나 노이즈의 정도를 달리했기에 선우(도경수)가 보내는 교신의 음질이 모두 다르다.

- <더 문>을 돌비 시네마 전용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기도 하겠다.

= 맞다. 아무래도 일반관에선 돌비 비전 처리가 안되니 4K 화면의 질적 차이도 있거니와 소리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방금 말한 천장 방향의 소리 같은 게 5.1 채널에선 측면 서라운드 방식으로 전환된다. 더 확실한 영화적인 체험을 위해선 한번쯤 전용관 방문을 추천한다. (웃음)

- 섬세한 사운드 작업을 위해 대부분의 대사를 후시녹음으로 진행했을 것 같다.

= 99.9% 후시녹음이다. 스튜디오 촬영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촬영에 쓰이는 와이어나 특수 장비들의 소음이 크다. 동시녹음을 진행하기엔 어렵다. 그래서 대사뿐 아니라 화면 내외부의 모든 잡음까지 사운드 이펙트나 폴리 사운드로 구현해야 했다. 사실상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처럼 하다보니 사운드 채널이 700개쯤 나왔다. 20년 넘게 이 일 하면서 다뤄본 가장 많은 수다. (웃음) <기생충> 때도 400개 언저리였는데…. 통상적으로 장편 작업 기간이 6~7개월이다. <더 문>은 1년보다 더 걸렸으니 말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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