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는 (일상을) 사는 곳이 아니라 (재태크를 위해) 사는 곳이다. 거주지로서의 가치보다 미래 자산의 가치를 우선하는 아파트 문화는 어느 순간부터 계급의 척도, 불평등의 증거로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대변한다. 아파트 한채를 마련하면 ‘행복한 나의 집’이 시작될 것 같은 희망을 품고 발버둥치지만 현실은 콘크리트처럼 차갑고 거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배경과 현실 인식을 듬뿍 머금고 피어난 지극히 한국적인 재난영화다. 세상이 모두 무너지고 달랑 아파트 한채만 남았을 때 사람들은 무엇에 기댈 것인가. 김숭늉 작가의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 후 황폐화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나의 집을 쟁취하기 위한 야만과 폭력
황궁 아파트는 산자락 바로 밑에 자리한 오래된 아파트다. 이곳 주민들은 그 주변을 둘러싸듯 새로 지어진 드림 팰리스 사람들에게 무시와 차별을 받아왔는데 어느 날 세상이 뒤집혔다. 산이 방어막이 되어 서울을 덮친 지진에서 무너지지 않은 유일한 건물이 된 것이다. 지진이 지나간 후 갑자기 찾아온 맹추위에 생존자들은 황궁 아파트로 모여든다. 아파트 주민들은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몰려든 사람들을 전부 내칠 수 없어 일단 받아준다. 하지만 서울이 초토화되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부인이 주민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고가 일어나자 억눌린 불만이 폭발한다.
원작 웹툰이 지진 후 살아남은 소녀 혜원(박지후)이 아파트에 찾아온 이후의 상황을 그리는 반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 직후 아파트 주민들이 어떻게 외부인들을 배척하고 자신들만의 비틀린 유토피아를 건설했는지 그 과정에 주목한다. 공무원인 민성(박서준)과 아내 명화(박보영)는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신혼부부다. 민성은 재난 상황에서 손아귀가 찢어질 때까지 사람들을 돕고자 했지만 불가항력으로 미처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있다. 동시에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조금은 이기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모두 같은 구조지만 각자 다른 인테리어로 개성을 드러내는 아파트처럼 황궁 아파트 주민들도 처음엔 비슷해 보였지만 상황이 지날수록 입장이 갈린다. 제한된 물자로 인한 불안과 외부인에 대한 불신이 겹치며 거주자들만 아파트에 머물러야 한다는 의견이 공론화된다. 부녀회장 금애(김선영)는 아파트 1층에 난 화재를 적극적으로 진화하며 사람들의 신뢰를 얻은 영탁(이병헌)을 대표로 추천하고 주민 투표를 진행한다. 공개된 토론에선 맹추위에 밖으로 사람들을 내 보내면 얼어죽을 거라는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익명 투표 결과 압도적인 찬성으로 외부인 방출이 결정된다. 외부인들은 처음엔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엉겁결에 대표로 추대되어 가장 앞자리에 선 영탁의 광기 어린 폭력에 힘입어 결국 주민들이 전투에서 승리한다.
이익을 위해 뭉친 한번의 경험은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는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란 구호 아래 조직 결성, 재정비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물과 식량 조달을 위한 방범대가 결성되고 조직에 보탬이 된 만큼 물과 식량의 차등 지급이 이뤄진다. 그렇게 주민들은 정비 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아파트 바깥의 부랑자, 이른바 바퀴벌레라 불리는 이들을 멸시하고 공격하며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해 나간다. 사실 왕국은 금방 무너질 모래성처럼 불안하고 위태롭다. 모든 사람들이 영탁이나 금애처럼 아파트 주민 우선 정책에 공감한 건 아니다. 도균(김도윤)처럼 최소한의 양심과 연민을 잊지 않고 몰래 외부인을 숨겨주는 사람도 있다. 명화 역시 빈 아파트가 있음에도 굳이 외부인을 내쫓는 행동에 반발심을 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신만고 끝에 903호 주민인 혜원이 생존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902호 주민을 자처했던 영탁이 903호 주민 혜원을 바라보는 묘한 눈빛과 함께 살얼음 같던 평화에 다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재난을 소비하지 않는 재난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을 전시하지 않는 재난영화다. 재난 이후의 상황, 남겨진 사람들끼리 작은 사회의 축소판을 그려나가는 영화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처럼 한국 사회의 모순과 맥락이 세밀하게 반영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잉투기> <가려진 시간>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은 지진으로 서울이 무너지는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대신 황폐화된 세상에서 살아남은 인간 군상의 다층적인 면모에 집중한다. 감독은 공간의 양면성을 보여줬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건물이라는 차가운 공간이 기묘하고 일그러진 낙원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반부는 인간 군상의 어둡고 다양하면서도 보편적인 이면을 그린다는 점에서 <기생충> <슬픔의 삼각형> 같은 사회 풍자 블랙코미디와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립 구도는 명확하다. 영탁은 자신의 모든 걸 잃고 집이 전부가 된 사람이다. 영탁의 광기는 곧 한국 사회의 보편적 광기다. 그의 정반대편에 사람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도균이 있다. 다만 영탁과 도균 모두 타인을 바꾸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인물들은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생존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사이에서 변화하는 인물은 관찰자이자 이야기의 진행자인 민성과 명화다. 명화는 자신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영탁을 닮아가는 민성이 걱정스럽고, 민성은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명화가 답답하다. 전반부 군상극의 형태를 띤 영화는 혜원의 등장과 함께 영탁의 비밀이 드러나며 급격히 서스펜스 스릴러로 변모한다. 이때부터 직진하는 구성은 여름 블록버스터다운 긴장감과 볼거리를 충실히 제공한다.
오프닝 시퀀스에 <즐거운 나의 집> 음악과 함께 요약 정리된 한국 아파트의 역사는 빠르고 경쾌한 몽타주를 통해 영화의 방향을 정확히 선언한다. 엄태화 감독은 우리가 아파트라는 공간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선, 아파트에 얽힌 한국 사회 특유의 비틀리고 애잔한 욕망이 뒤섞여 독특한 장면들을 창조해낸다. 재난영화의 상투적인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한 이 영화가 클리셰를 극복하고 개성을 획득한 비결은 이러한 과감한 표현 덕분이다. 특히 다소 이질적일 수 있는 사운드와 <즐거운 나의 집> <아파트> 등 적절하고 직관적인 음악의 배치, 몽타주의 재치 있는 활용은 시종일관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익숙한 세팅과 전개에도 불구하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새롭고 묵직하다. 엄태화 감독은 재단의 스펙터클에 매몰되지 않고 절제된 분량 속에서 깊이를 추구한다. 공간의 양면성을 증폭시켜 아이러니를 탐닉해온 감독의 개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여기에 특유의 색감을 통한 상황 표현이나 마치 그래픽노블 같은 과감하고 직접적인 이미지는 묵직한 주제와 묘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무엇보다 손쉬운 해결과 해피엔드 대신 생존 투쟁에 얽힌 묵직한 질문을 선택한 감독의 뚝심이 돋보인다. 그리하여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 더해진 이미지와 배우의 꽉 찬 연기가 결합해 회색빛 낙원이 완성됐다. 헬조선 한가운데에서 사람 사는 ‘꼴’에 집중한 영화는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 세계의 끝자락에서 끝내 유토피아의 씨앗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