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극장가에서 김종수는 가장 바쁜 배우 중 한명이 됐다. <밀수>의 악당인 세관계장 이장춘과 <비공식작전>의 외무부 최 장관 모두 배우 김종수의 손길을 거쳐 태어났다. 앞서 그는 홈리스 출신의 축구부 에이스 김환동으로 <드림>에서도 활약했으니 2023년의 기대작에 줄줄이 이름을 올린 셈이다. 건달부터 대통령까지, 거치지 않은 직업과 지위가 없지만 다작 배우임에도 소모되지 않은 그의 저력은 “단 몇분, 몇신만 나온대도 그 인물에 매료되면 전부 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신과 직업정신에서 나온다. <밀수>로 어느 때보다 안타고니스트적 존재감을 자랑하는 요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화란>까지 줄줄이 예고된 그의 다음 행보도 기대감을 자아낸다.
- <밀수>의 세관계장 이장춘은 엄격한 공무원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장르적 변곡점을 지닌다. 본색을 드러내는 인물의 포인트를 어떻게 준비했나.
= 낮과 밤이 다른 사람이지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연기 톤을 과장해서 확 바꾸기보다 싸늘함을 주고 싶었다. 법의 테두리가 느슨하던 시대적 타성에 젖어 있던 사람의 현실성을 살리되, 후반부에 총을 들고 횡포를 부릴 땐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류승완 감독님이 보여준 외모 레퍼런스는 멋진 제복을 입은 이탈리아 남자들이었다. 그만큼 댄디한 느낌을 내지는 못했지만 머리를 바짝 깎고 아껴두었던 흰머리를 과감하게 드러내 나름대로 임팩트를 주었다. 부하 수복(안세호)을 부를 때도 일부러 더 부드럽게 굴리듯 했다. 어떤 캐릭터의 공포스러움이나 카리스마는 그를 연기하는 배우 자신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배역의 반응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큰 칼을 들고 있다고 더 무섭고 작은 바늘을 들고 있다고 덜 무서운 게 아니다. 수복이 이미 이장춘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어 있으니 나는 슥 목덜미를 감아서 쥐는 식의 부드러운 동작만으로도 충분했다.
- 배우 김종수의 1980년대 공무원 세계관이 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비리 세관 공무원, <헌트>의 안기부장, 그리고 최근의 <비공식작전> 외무부 장관까지.
= 그러니까 나이 많은 남자는 공무원 아니면 힘없는 아버지, 양복 입은 나쁜 놈 아니면 돈 많은 나쁜 놈인 거다. (웃음) 시나리오를 받으면 나는 주로 영화별로 컬러와 질감을 연상하면서 각 작품의 가장 자연스러운 공기를 찾아나간다. <비공식작전>은 약간 브라운 톤, <헌트>는 어두운 청색, <밀수>는 경쾌한 파랑을 떠올리며 인물들의 차이와 고유한 결을 그려나갔다.
- <밀수>에선 후반부의 주요 갈등을 이끄는 안타고니스트다. 배우에게 주연과 조연 등 출연 비중의 차이는 연기의 접근법에 있어 어떻게 작용할까.
= 주연, 조연, 단역 따지면서 연기를 한 적은 없지만 시나리오 전체로 본다면 확실히 각자의 매력이 다른 건 사실이다. 주인공의 감정에 내 캐릭터가 곁가지로 관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메인 플롯에 포함되지 않고 다른 맥락 속에 외따로 존재하는지에 따라 시나리오를 읽는 방향도 달라진다. 가령 <밀양>의 시나리오를 나는 덤덤하게 읽었다. 내 땅이나 팔고 이익만 추구하면 되는 부동산 신 사장 역이니까. 굳이 주인공의 마음을 다 알려고 하면 너무 부대끼게 된다. 내 신을 다 찍고 나서야 <밀양>을 다시 읽었고 정말 힘들었다. <밀수>는 반대로 마지막까지 같이 달려가서 터뜨려야 해서 춘자(김혜수)와 진숙(염정아), 장도리(박정민)의 감정선까지 다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수복은 어떻게 다루고 권 상사(조인성)는 어떻게 회유할지를 계산하는 속내가 이장춘의 눈빛에서 드러나니까.
- 울산에서 오랫동안 무대 생활을 하던 중 2006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발탁됐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매니지먼트 없이 혼자 울산과 서울을 오가며 출퇴근했다고.
= 울산 연극판에 있을 때 여긴 좁다고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나는 어차피 상황도 안됐고, 무엇보다 지금 머무는 곳이 나의 최선이라 생각하고 일했다. 환경이 얼마나 좋아지든지 간에 지금 가진 재능과 태도를 그대로 가져가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마흔 즈음 <밀양>을 만났고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지만 독립영화 <소셜포비아> <글로리데이> 등에 출연할 때까지도 혼자 필름메이커스에 프로필을 올리거나 에이전시 소개로 작업했다. 처음 7~8년은 울산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다가 어머니가 병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더이상 울산에 갈 필요가 없어졌고, 2014년에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방을 구했다. 그 무렵 <미생>을 마치고 혼자 동네 술집에 앉아 있는데, 어느 샐러리맨이 부인에게 회사라고 거짓말하곤 혼자 우울하게 술 마시는 뒷모습을 우연히 지켜보게 됐다. <미생>의 현실이 거기 있었고, 그때 내 직업의 책임감 비슷한 것도 함께 실감했다.
- 1985년 연극 <에쿠우스>로 데뷔해 40대에 영화계로 진출하고 성실히 경력을 쌓았다. 김종수에게 세월에도 변함없는 연기의 재미는 무엇인가.
= <밀수> 리허설 때 밧줄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어떤 반응이 내 것이 아니라 이장춘의 것이었다. 그 현장에서 내가 이장춘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감독님도 이를 즉각 알아보고 실전에서도 해보자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헌트>를 찍을 때는 리허설 때 실수로 담배를 거꾸로 무는 바람에 중간에 담배를 빼서 다시 무는 잠깐의 공백 동안 묘한 긴장감이 생성됐는데, 그 느낌이 마음에 들어 본 촬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100% 협업의 현장인 영화는 이렇게 현장에서 종종 준비된 우연을 채집한 뒤, 그것을 모두가 유연하게 동의해나가는 과정의 기쁨이 엄청나다. 연극의 경우엔 일단 질러놓고 뒷수습하는 재미다. (웃음) 그 과정에서 막내 스탭들, 단역 배우들까지도 같은 보람을 공유할 수 있길 바라고 그게 이 이 일의 진정한 보람이라 느낀다. 나는 그걸 종종 ‘보람 공유’라고 부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