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는 판 깔아주면 나가서 잠깐 미치고 나오면 되는데 판을 너무 잘 깔아줬다.” 2017년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최담동 역으로 김원해가 SBS 연기대상 조연상을 거머쥐었을 때 남긴 말이다. 연출에 공을 돌리는 겸손한 소감이지만, 배우가 미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김원해는 여전히 프레임 밖의 디테일까지 촘촘히 구성한다. 관객 460만명을 돌파(8월17일 기준)한 <밀수>와 지난 7월 종영한 드라마 <악귀>에서 김원해는 극의 한축을 단단히 책임진다. 현재도 4개 이상의 작품을 동시에 준비·촬영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밀수>의 ‘브로커 삼촌’은 해녀들이 거래를 시작할 수 있도록 물꼬를 틔우며 극을 환기한다.
= 내가 생각하는 브로커 삼촌의 출발점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극의 배경인 1970년대는 한창 반공 교육을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단점과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장점을 귀에 박힐 정도로 들었다. 그때의 왜곡된 자본주의 개념에서 보면 브로커 삼촌은 그저 눈에 보이는 이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 행동이 도덕적으로 해이할 순 있어도 나쁜 건 아니라는 게 당연한 정서이자 결과였다. 양아치스럽고 영민하다기보다는 시대에 순응해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 장도리(박정민)가 일행을 배신하고 물건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죽음을 앞두고도 목소리를 높이는 강단을 보인다.
= 당시 포박을 하고 촬영을 하는데 몰입을 위해 더 조여봤다. 숨이 안 쉬어지더라. 마지막으로 에너지를 다 뿜고 싶은데 조여서 호흡이 안된다고 류승완 감독에게 얘기했더니 <인질>을 찍을 때 황정민도 똑같이 얘기했다고 했다. 정민이는 이러고 100회차를 찍었을 텐데 고작 한회차를 갖고 투정을 부렸다는 생각에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고 연기했다.
- <악귀>의 서문춘 형사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 4회까지 미리 대본을 받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의 표현대로 쭈굴미가 있었다. 가족과 동료가 완전히 배제된 채 일에 대한 사명감만 남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주류에서 밀려난 게 딱 내 세대가 겪는 딜레마다. 인지하고 나니 해보고 싶어졌다. 연기할 땐 그런 문춘을 딱히 극대화할 것도 없이 내가 겪은 무명의 연극배우 시절을 떠올렸다.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지만 어쨌든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게 무명배우들의 삶이다. 남들은 다 왜 가냐고 하지만 언젠가 끝이 있을 거라 믿으며 혼자 컴컴한 터널을 계속 걸어가는 사람. 문춘이 그런 캐릭터 같았다.
- 이야기한 쭈굴미는 지하실에서 혼자 자료를 찾는 신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으론 얼마나 꼼꼼하고 일에 고집스럽게 몰입하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 대본상으로는 ‘철 지난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는 문춘’ 이렇게만 써 있었는데 현장에서 더 요구했다. 여기에서 오랜 시간 있었다면 뭘 먹지 않았을까. 아니, 아예 여기서 오래 있을 마음으로 먹을 걸 사들고 오지 않았을까. 밥도 제대로 안 먹고 팥빵처럼 뻑뻑한 걸 먹고 앉아 있으면 더 짠해 보이지 않을까. 그럼 소품팀이 빵과 물을 구비해온다. 나 때문에 힘들었을 거다.
- 연극, 영화, 드라마 외에 <SNL 코리아> 같은 예능까지 경계 없이 활동해왔다. 기억에 남는 데뷔의 순간이 있다면.
= 장진 감독이 연출한 자동차 CF에 출연한 적이 있다. 주인공이 배우 소지섭이었는데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로 인기가 뜨거울 때였다. 소지섭이 문제를 일으켜 경찰서로 오고 나는 그를 맞이하는 경찰 단역이었다. 분량이 길지도 않아 100번 이상 연습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촬영이 시작되고 멀리서 소지섭 배우가 걸어 들어오자 ‘진짜 소지섭이네’라는 생각과 함께 대사가 하얗게 날아갔다. 그게 카메라 앞에서의 첫 연기였다. 큰 공부가 됐다.
- <시그널> 김계철 형사, <미생> 영업3팀 차장과 <김과장> 추남호 부장, <당신이 잠든 사이에> 최담동 수사계장 등 시청자로 하여금 맡은 캐릭터마다 ‘어딘가 실제 있을 것 같다’는 평이 나오게 한다.
= 어릴 때 집이 가난해 서울의 변두리를 전전했다. 오랜 기간 연극만 하던 시절에도 주머니가 가벼웠다. 사실 시청자들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을 보면서 공감하고 치유되기 마련이다. 어릴 때부터 힘든 주변 이웃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겪었고 그래서 표현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 함께한 후배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김원해 배우가 먼저 다가와 이 신은 어떻게 할지 대화를 걸어줘서 감사했다고 언급한 경우가 많다.
= 사람이 여럿 모여서 하나의 장면을 만들 때, 각자의 캐릭터를 조금씩 확장해서 왠지 있을 법한 사소한 이야기, 누구나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 배우들 각자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서 그걸 합쳐 조율하다보면 예상외의 좋은 것들이 나오곤 한다. 최근에 드라마 <나쁜 엄마>에서도 그랬다. 대본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많이 시도하는 편이다.
- 1991년 뮤지컬 <철부지들>로 데뷔했고 배우로 활동한 지 33년차가 됐다. 신인 시절과 비교하면 어떤 것에 익숙해졌고, 어떤 것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나.
= 익숙해졌다기보다 편해진 부분인데 오디션을 볼 일이 별로 없다. (웃음) 간혹 보긴 하지만, 오디션을 보고 나서 이게 된 건지 안된 건지 고민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서 좋다. 한편으론 나를 믿고 역할을 맡겨주는 것이라 생각해 책임감은 커졌다. 매번 끝까지 잘 마무리하려 한다. 이 나이에 아직 역할이 주어진다는 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아직 풀지 못한 보따리가 많다. 그 안엔 젊은이만큼 뜨거운 중년들의 로맨스, 액션에 대한 욕심이 담겨 있다.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 풀 수 있지 않을까.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