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진짜’라는 말, ‘콘크리트 유토피아’ 김도윤
2023-08-25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배우야, 일반인이야?” 김도윤 배우는 일견 실망스러운 평가처럼 들릴 이 말이 자신이 들었던 최고의 칭찬 중 하나였다고 기억한다. 불꽃처럼 폭발하는 연기나 특유의 시그니처 연기로 기억되는 배우는 그리 드물지 않다. 하지만 캐릭터 뒤에 완벽히 가려져 배우가 보이지 않는 연기는 실로 귀하다. <곡성>에서의 강렬한 연기 이후 좀비와 싸우고(<반도>), 악령과 대결해온(<방법>) 김도윤은 독특한 캐릭터를 도맡아 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맡아온 인물들은 늘 평범했다. 어느 정도로 평범하냐면 영화인지 현실인지도 구분하기 힘들 만큼 일반인스럽다. 우리 옆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함을 연기하는 김도윤은 비현실적인 영화에 현실의 무게추를 달아주는 존재로 거듭난다. 스스로 리얼리티가 된 배우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아니 느리기에 더 단단하게 세계를 넓혀나가는 중이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반응이 좋은데.

= 극장이 전체적으로 힘든 시기다. 무대인사 갔을 때 객석을 꽉 메워준 관객을 직접 만나며 감사하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주변에서 이번엔 빌런이 아니라서 새롭다고 하는데, 돌아보면 평범한 인물이 특이한 상황에 던져진 거였지 대놓고 악역을 맡은 적은 없었다. 외모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처럼 생겨서 그런가? (웃음) 도균을 보고 “나쁜 놈처럼 생겼는데 사실은 착한 사람” 이라고 요약해준 댓글을 봤는데 이보다 정확한 분석이 없는 것 같다.

- 도균은 이제껏 맡았던 역할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어떻게 보면 큰 변화가 없는 스테레오타입으로 인간의 선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도균의 포스터에 보면 “양심이라는 게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예요”라는 대사가 나온다. 명화(박보영)에게 하는 대사인데 최종적으로 영화에서는 삭제됐다. 그 대사가 도균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도균은 마냥 착하고 고결한 인물이 아니다. 갈등하지만 끝내 사람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 나는 도균이라는 인물이 반상회에서 주민투표를 할 때 외부인들을 쫓아내는 쪽에 표를 던졌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용기가 부족해 앞에 나서지는 못하는 인물이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계속 그걸 후회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돌본다. 그에게 후회와 부끄러움은 강력한 행동 동기다.

- 엄태화 감독은 반상회에 참석한 아파트 주민 모두의 전사를 하나하나 다 짰다고 들었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모든 캐릭터에 숨겨진 코드가 있다. 가령 건축 디자이너인 도균의 집엔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그림이 걸려 있다. 감독님에게 들었는데 인간 중심의 도시계획으로 유명한 분으로 사람을 향한 주거문화를 대표한다고 하셨다. 도균의 시선과 태도를 잘 압축하고 있는 소품이다. 영화를 세번 봤는데 볼 때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디테일들이 보인다.

- 단편 때부터 엄태화 감독님 팬이었다고 들었다.

= 맞다.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출연하고 싶었다. <가려진 시간> 때도 오디션을 봤지만 탈락했다. 이번엔 이병헌 선배님이 캐스팅됐다는 이야기까지 듣고 나서 그야말로 오매불망 캐스팅 오디션을 기다렸다. 마침 운 좋게도 <지옥> <방법> 등을 함께한 변승민 클라이맥스스튜디오 대표님이 나를 도균 역에 추천해주셨다. 엄태화 감독님은 많은 말을 하진 않지만 확실한 비전이 있다. 촬영 때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편이 아니라 한번은 불안해서 “저 포기하신 거 아니죠?”라고 묻기도 했다. (웃음) 원하는 바는 분명히 전달하되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나홍진, 연상호 감독님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 20대 중반 뒤늦게 연출전공으로 중앙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했다.

= 군대에 있을 때 수능을 다시 보고 연극과에 들어갔다. 연출하려면 연기를 해봐야 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결국 다시 연출로 못 돌아갔다. (웃음) 많은 것을 신경 쓰고 조율해야 하는 연출보다 하나에 집중하는 쪽이 더 쉬워 보였다. 물론 큰 착각이란 걸 금방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무대의 즐거움을 느껴버린 상황이라. 긴장을 즐기는 건지 심장이 쿵쾅거리는 순간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뒤늦게 카메라 연기를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른 넘어 <하울링>(2011)으로 처음 영화 데뷔를 했는데, 어떤 장면에서 유하 감독님이 뭐가 마음에 드셨는지 나를 뷰파인더 중심에 담으셨다. 어쩌면 그 순간의 두근거림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장면은 편집됐다. (웃음) 덕분에 그런 긴장과 흥분을 즐기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긴장을 많이 하니까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다. 대신 현장에선 준비한 걸 되도록 잊어버리려 노력한다.

-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 무엇을 하든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장르영화를 할 때,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도 진짜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어디 던져놔도 저런 사람 하나쯤 있지 않을까 하는 일상적인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인물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그 인물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진정성 있는 표현이 가능하다. 배우 김도윤보다 캐릭터가 먼저 보이길 바란다. 그래서 늘 새롭고 신선한 배우로 기억되면 좋겠다. 나도 아직 날 잘 모르겠다. 내가 날 알 수 있을 때까지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 스스로의 모자람에 매일 실망하지만 매일 다시 용기를 내며 매일의 기억을 쌓아나가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해보고 싶은 배역은 아빠 역할이다. 아이가 셋인데 이제껏 주로 강한 캐릭터를 해와서 아직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첫째가 6살인데 머지 않은 시간에 편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을 했으면 좋겠다. 섭외 기다리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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