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0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무빙> 피날레 시사회가 열렸다. 박인제, 박윤서 감독과 배우 류승룡, 한효주, 차태현, 박희순, 유승목, 김다현, 김중희, 박광재, 이정하, 김도훈, 박병은(오른쪽부터)이 참석했다.
<무빙>이 지속적인 구독자 이탈로 위기설에 직면했던 디즈니+의 구원투수가 됐다. 지난해 4분기부터 1여년간 1800만여명의 구독자를 잃은 디즈니+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줄이는 대신 요금제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하는 행보를 걷고 있었다. 디즈니+의 한국 론칭 초기에 제작이 확정된 <무빙>은 디즈니+가 공격적으로 콘텐츠에 투자하던 시기 프로덕션에 들어간 작품이다. 600억원대가 투입된 한국형 히어로물이 신생 플랫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를 반반씩 받으며 <무빙>은 2년 전 촬영에 들어갔다. 지난 8월 첫 공개 이후 <무빙>을 향한 뜨거운 지지는 한국 콘텐츠팀 철수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렸던 디즈니+에 대한 여론을 단숨에 반전시켰다. <무빙> 공개 이후 디즈니+ 8월 일간 활성 이용자 수(DAU)가 48% 증가하고 8월 넷째 주 주간 사용 시간이 콘텐츠 공개 이전 대비 130% 늘어나는 등 수치상으로도 고무적인 성과를 거뒀다. 업계 1위 넷플릭스마저 장기 부채의 리스크를 떠안고 광고요금제 도입을 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디즈니+는 <무빙>을 통해 콘텐츠가 플랫폼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원론을 증명해냈다.
흥미로운 것은, 콘텐츠의 퀄리티가 중요하다는 기본 중의 기본으로 돌아간 <무빙>의 성공 사례가 원작 웹툰과 드라마 대본을 쓴 강풀 작가와도 결이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강풀은 웹툰계의 시조새로 불린다. 웹툰이 ‘온라인 만화’ 내지는 ‘인터넷 만화’로 불리던 시절, 칸 분할 대신 스크롤을 내리며 보는 만화가 나타난 시작점은 2003년 미디어다음에서 연재된 <순정만화>로 꼽힌다. 지금은 화려한 그림체로 시선을 사로잡거나 집단창작 시스템을 통해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일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강풀의 이름이 처음 알려졌던 시기만 해도 웹툰은 1인 작가가 직접 스토리를 구상하고 그리는 가내 수공업에 가까웠다. 강풀은 마지막 회 대사까지 완성하지 않으면 연재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스토리에 공을 들이는 작가였고, 로맨스부터 호러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면서도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본질에 늘 충실했다. 심지어 강풀은 대책 없이 순진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맑은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작가다. 인물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으며 서사를 풀어가고, 빈틈없는 전개로 감정을 설득해간다. <무빙>은 스토리의 완성도와 차분한 전개에 강점이 있는 강풀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빠른 호흡과 자극적인 설정에 열광하는 최근 콘텐츠 경향을 거스르며, 조인성과 한효주, 류승룡의 슈퍼히어로물을 기다렸을 시청자들에게 고등학생들의 하이틴 로맨스를 진득하게 보여준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가족을 지키고 이웃에게 가능한 도움을 주자는 휴머니즘을 담은 이야기를 조바심내지 않고 풀어나간다.
강풀은 영화계에서 판권 경쟁이 치열하기로 정평났던 작가다. 지금까지 <아파트>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26년> <타이밍> 등이 영화화됐다. 한때 “강풀 원작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있었던 것은 각색 과정에서 설정만 남고 디테일이 생략되면서 원작 스토리가 가진 힘이 퇴색됐기 때문이다. <무빙>은 스타 캐스팅과 액션의 규모 등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흥행 카드를 여럿 쥐고 있었던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기본을 놓지 않았기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리고 수익성 개선을 위해 여러 돌파구를 찾고 있는 플랫폼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좋은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명제를 재확인시키며 콘텐츠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