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기획] 유일무이하고 보편적인 마음의 형태, 송경원 기자의 '멜로드라마로 보는 <무빙>'
2023-10-12
글 : 송경원

“니가 제일 싫어하는 사연팔이?” 다방 사장은 주원/구룡포(류승룡)의 여관방에 다녀온 지희(곽선영)에게 티켓 좀 팔았는지 묻는다. 지희는 그냥 이야기 좀 했다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사연팔이 말고 무협지 이야기, 프로레슬링 이야기.” 그리고 덧붙이는 말. “무협지가 아니래, 멜로 소설이래.” 무협과 멜로. 구룡포와 지희 파트의 핵심 테마는 <무빙> 전체를 관통하는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좀더 정확한 설명은 구룡포의 입을 빌려야겠다. “무협지는 결국 다 멜로예요.” 무협이 아닌 게 아니다. 무협이면서 멜로일 수 있다. 무협은 장르적으로 동사이고, 멜로는 형용사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멜로를 전달하고 보니 무협이 되었다고. 무협이 행동의 표출 방식이라면 멜로는 마음의 형태다.

신파는 죄가 없었다.

근래 ‘세상 모든 이야기는 멜로드라마’라는 명제를 <무빙>만큼 성실하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작품을 보지 못했다. 멜로드라마는 단순히 말하자면 인력과 척력에 관한 이야기다. 인물들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이를 막거나 반대로 밀어내는 힘이 있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상황은 이를 쉽게 허락지 않는다. 드라마의 효과, 그러니까 희로애락은 인력과 척력의 함량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가까워지면 기쁘고 멀어지면 슬프다. 밀어내는 힘이 너무 세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다치면 아프고 애틋하다. 그럼에도 끝내 하나가 될 수 있는 순간이 허락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지희와 구룡포의 에피소드가 무협이면서 멜로드라마일 수 있는 비결은 서로의 사연을 묻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확히는 사연팔이를 하지 않는다. 20부작으로 구성된 <무빙>은 인물들의 상황을 에피소드마다 자세하게 풀어놓는다. 파트마다 주인공이 된 인물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원래 12부작으로 기획됐다는 시리즈가 16부, 결국 20부까지 확장된 건 각 캐릭터에 맞춘 이야기를 하나하나 애정하면서 제대로(때론 과할 정도로 길게) 펼쳐낸 결과다. <무빙>은 사실 대단하고 특별한 연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를 다소 고지식하게, 간혹 고리타분하기까지 한 방식으로 찬찬히, 꼼꼼히 보여주는 게 전부다. 바로 그 애정 어린 표현 방식에 <무빙>의 태도가 묻어 있다. 사연이 ‘팔이’로 취급받는 건 인물의 행동에 대한 이유로 소비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액션을 보여준다는 목적을 위해 사연을 제출하고 설명한다. 고로 종종 타이밍이 맞지 않거나 사족처럼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무빙>은 다르다. <무빙>에선 사연이 결과물이다. 액션과 볼거리를 다 목격하고 나면 그 흔적으로 사연이 남는다. 사연팔이가 이른바 ‘신파’로 매도되는 건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 혹은 변명으로 사용되는 상황 탓이다. 여기서 목적은 더 크고 화려하고 때론 황당하기까지 한 액션의 볼거리인 경우가 대다수다. 반면 <무빙>은 지희와 구룡포가 그러했듯 서로의 사연을 묻지 않는다. 아니 물을 필요가 없다. 캐릭터들의 행동 자체가 이미 사연이자 감정이기 때문이다. <무빙>은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마음 상태가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과정을 촌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따라간다. 그걸 위한 긴 러닝타임이며 종종 편집이 늘어진다고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콘텐츠의 특징 중 하나로 종종 신파가 거론된다. 국내에서는 식상함의 대명사인 신파가 해외에서는 감정에 깊이 호소하는 요소로 소비될 때 언어의 묵은 때를 실감한다. 한때 신파는 딱딱한 양식과 문어체 연극에서 벗어나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새로운 형태의 형식을 일컬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가운데 신파는 어느샌가 억지로 감정을 짜내는 행위처럼 오인받고 있지만 본래 신파는 정해진 패턴이 아니라 정념의 결과물이다. 말하자면 눈물이 날 만큼 짠하게 감정을 움직이는 무언가. <무빙>은 액션의 알리바이로서 신파를 끼워넣는 대신 액션을 통해 마음의 상태를 형상화한다. 마음과 감정 상태가 행동과 액션으로 표출된다고 해도 좋겠다.

잡탕밥과 코스 요리 사이

<무빙>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난감하다. 20번의 에피소드에는 액션, 첩보, 히어로물, 활극, 로맨스까지 각종 장르의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이것이 한편의 영화에 다 들어 있다면 그야말로 잡탕밥 같았겠지만 이 영리한 시리즈는 매 에피소드의 주인공에 맞춰 장르의 겉옷을 갈아입으며 다채로움을 더한다. 봉석(이정하)의 시점을 중심으로 하이틴 로맨스 같았던 1, 2, 3화를 지나 희수(고윤정)의 사연이 시작되면 학원 폭력물로 변모한다. 두식(조인성)과 미현(한효주)의 에피소드에서는 첩보물로 전환됐다가 구룡포와 지수로 초점이 옮겨가면 조폭 액션과 무협을 넘나들더니 재만(김성균)네 에피소드에서는 애틋한 가족 드라마를 전면에 내세운다. 북한군의 침투에 냉전 드라마가 시작되더니 대규모 액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인물에 맞춰 갈아입는 장르색은 마치 여러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해 한 그릇의 잡탕밥이라기보다는 코스 요리에 가깝다. 코스의 테마는 ‘착한 사람들의 멜로드라마’다.

장르의 코스 요리처럼 다채롭게 차려진 <무빙>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종국에 이르러 같은 맛을 반복한다. 모양과 형태는 달라도 이건 결국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선한 사람들이 그저 소박한 행복을 바라며, 서로를 아끼는 이야기. 각자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발현될 뿐 기저에 흐르는 감정은 모두 동일하다. 동일하기에 초현실적인 상황도 마치 우리 곁에서 일어날 법한 일처럼 감정적으로 밀착할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무빙>은 세상 모든 이야기가 결국 멜로드라마로 수렴한다는 걸 증명한다. 정정해야겠다. 코스 요리인 줄 알고 즐겼던 <무빙>은 실은 비빔밥이었다. 멜로드라마, 아니 한국적 신파로 통일시킨 맛깔난 비빔밥. 표면적인 <무빙>의 장르는 무협, 누아르, 첩보물, 하이틴 로맨스, 슈퍼히어로물을 아우르지만 그 모든 방향들을 통합시키는 건 다시, 사랑이다. 남녀간의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 형제 같은 사랑, 나아가 인간에 대한 사랑. 이 빤하고 식상한 명제가 먹히는 건 그걸 강변하거나 목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 <무빙>의 멜로드라마는 그 하나에 집중한다.

지희는 녹색 괴물 헐크가 괴물처럼 생겼어도 좋은 사람이라서 좋다고 말한다. 그 말을 기억한다는 듯 구룡포는 마치 헐크처럼 벽을 부수고 들어와 지희를 구한다. 봉석이 희수 때문에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 잔나비의 노래 <투게더!>와 함께 몸이 붕 떠오르는 장면은 감정의 형상화(혹은 장르화) 그 자체다. 공중 부양이라는 초능력조차 감정 상태에 따라 둥실 뜨거나 붕 떠 있거나 사뿐하게 날아오르거나 다채롭게 표현된다는 점이 <무빙>의 진정한 매력 포인트라고 해도 좋겠다. 지희의 장례식장에서 구룡포가 길 잃은 아이처럼 오열할 때, 하늘을 나는 북한군 기력자 준화(양동근)가 홀로 능력을 발휘하여 살아남은 뒤 그저 살고 싶었다고 절규할 때, 북한군 기력자 재석(김중희)이 용득(박광재)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뛰어내려 거대한 붕괴를 일으킬 때, <무빙>은 마음의 형태를 곧장 이미지로 전달한다. 끌어당기는 힘과 밀어내는 힘, 사랑하고자 하는 소망과 이를 막아서는 요소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 <무빙>이 반복하는 멜로드라마적 발버둥, 본질은 똑같지만 다르게 발현되는 ‘마음의 작용’은 그렇게 깊고 살갑고 애틋하다. 무협지 버전으로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情)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느냐.’(김용의 <신조협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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