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용 애니메이션 혹은 소수의 인디 애니메이션이 주류를 이뤘던 한국 애니메이션영화 지형도에 서서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VFX 회사로 쌓아온 기술력을 애니메이션에 접목 중인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가 기대감의 중심에 있다. 봉준호 감독이 2018년부터 쓴 시나리오에 풀 CG로 제작되는 신작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프랑스 환경 운동가 크레르 누비안이 쓴 과학서 <The Deep: The Extraordinary Creatures of the Abyss>에서 영감을 얻은 심해 생명체와 인간의 교류를 다룬다. “픽사, 디즈니 등 시장 지배력이 높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룩은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이전형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 대표의 말로 볼 때, 사실적 재현 이상의 장르적 표현이 더해진 독특한 해양 생태계가 구현될 것으로 보인다. 2026년 혹은 2027년 공개가 목표다. 봉준호 감독과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부터, 박찬욱 감독과는 <올드보이>부터 긴 시간 인연을 맺어온 이 대표는 앞서 알려진 대로 박찬욱 감독이 프로듀서이자 원작자로 나서는 3D 크리처 애니메이션의 제작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작품은 현재 시나리오의 1차 각색을 마친 상태다. 이 밖에도 3편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제작 중인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유아 또는 어린이 타깃의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뤘지만 점차 성인 관객과 호흡하는 애니메이션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다”면서 “앞으로 점차 연령층을 높이고 타깃층에 제한을 두지 않는 기획과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 전했다.
명필름은 <마당을 나온 암탉>과 <태일이>에 이어 세 번째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에 뛰어들었다. 올해 10월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된 명필름의 <꼬마>는 신은영 작가가 2010년 서울대공원을 탈출해 청계산에서 머물다 생포된 말레이곰의 실화를 옮겼다. <태일이>를 만든 스튜디오 루머의 홍준표 감독과 협업 중이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지리산 반달곰의 이야기로 각색해 각각의 생명체들이 어디에서 살아야 존재에 맞게 가장 행복한지 동물권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명필름표 애니메이션을 예고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시기부터 <꼬마> 기획을 준비해온 심 대표는 오랜 프로젝트를 실현하고 있는 과정의 솔직한 어려움도 내비쳤다. “올해 극장가에서 애니메이션이 돋보였다고 해도 일본,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장밋빛 비전을 꿈꾸기 힘든 환경이다. 애니메이션은 투자에 난항을 겪고 산업적 지원도 열악해 창작 종사자들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다만 그는 올해의 경향을 통해 “성인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이는 애니메이션의 저력 자체는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D.P.> 시리즈 등을 제작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첫 애니메이션이자 넷플릭스의 첫 한국어 애니메이션이기도 한 <이 별에 필요한>은 레즈비언 커플의 로맨스를 담아 화제가 된 <그 여름>의 한지원 감독이 연출한다. <악귀>의 배우 김태리, 홍경이 성우로 재회해 2050년을 배경으로 화상탐사 프로젝트에 선발된 우주인 난영(김태리)과 턴테이블을 수리하는 뮤지션 제이(홍경)의 장거리 연애기를 펼쳐낼 예정이다. 두 배우가 선녹음과 실사 촬영에 참여해 애니메이팅 과정에 배우 본연의 매력과 감정을 녹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