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는 극장가뿐 아니라 OTT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애의 아이> <주술회전> 등은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못지않은 화제성을 견인했고 콘텐츠 시장의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지금 한국의 애니메이션 시청자들은 TV, DVD 등의 창구가 아닌 OTT를 통해 콘텐츠를 만끽한다. 한창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텍 전공 교수의 말처럼 “TVA, OVA라는 말을 쓰기에 무척 모호한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존에 통용되던 용어들로는 현재 한국의 애니메이션 시청 패턴, 환경, 경향을 뚜렷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OTT를 통해 공개되고 시청되는 일련의 애니메이션에 대해선 OTA(OTT Based Animation)라는 이름이 더 알맞아 보인다. 올해 애니메이션의 전성시대에서 그 진가를 드러냈던 일련의 OTA를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체인소 맨>
2022년을 닫는 동시에 2023년까지 영향력을 이어온 다크 판타지, 배틀물 계열의 애니메이션이다. 악마와 신체를 결합한 소년 덴지가 인간의 숙적인 악마를 사냥하는 내용이다. 폭력성과 선정성의 수위가 강하며 작품 전반이 암울한 정서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원작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흥행작 반열에 올랐다. 일본 뮤지션 요네즈 겐시의 O.S.T <Kick Back>이 인기를 끌었다.
<스파이 패밀리>
2022년에 1기를, 2023년 4분기에 2기를 연달아 방영하며 꾸준히 인기를 구가 중이다. 왓챠의 올해 애니메이션 시청 순위 5위, 라프텔의 역대 인기 애니메이션 순위 8위에 올랐으며 1기 방영과 동시에 한국어 더빙판이 제작될 정도로 화제를 끌었다. 가상의 서양 국가를 배경으로 초능력자 소녀 아냐, 국가 스파이 로이드, 암살자 요르가 위장 가족을 이루며 일어나는 일상을 그린다. 주인공 아냐 포저의 귀여운 캐릭터에 기반한 코미디가 작품의 톤 앤드 매너를 지배하지만, 때론 진중한 첩보물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최애의 아이>
올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화제작이다. 애니메이션의 인기와 함께 일본 가수 요아소비가 부른 오프닝 곡 <アイドル>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アイドル>을 활용한 챌린지가 SNS를 강타했고, 음원은 한국 유튜브 뮤직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요아소비는 12월 내한 공연을 열기까지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파생된 흐름이 서브컬처가 아닌 주류 문화의 핵심이 됐다는 점에서 기록적인 일이었다.
<귀멸의 칼날: 도공 마을편>
2000년대에 휘몰아쳤던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열풍을 이어받아 소년만화 계열 애니메이션의 기수로 등극한 작품이다. 도깨비에게 가족을 잃은 소년 탄지로가 도깨비에 대적하는 귀살대에 들어가 싸우고, 도깨비로 변한 누이 네즈코를 지킨다. 고전적인 성장 소년물의 틀을 따른다. 고정적인 팬층을 이끌며 올해 왓챠 애니메이션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스킵과 로퍼>
소년물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쌍벽을 이루는 학원 일상물 분야에서 올해의 대표 작품이 됐다. 시골 출신의 소녀 미츠미가 도쿄 고등학교에 진학한 일상을 다룬다. 2023년 2분기는 자극적인 소재로도 대중적 반향을 이끈 <최애의 아이>, 인기의 고점을 보여준 정석의 소년물 <귀멸의 칼날>, 그 한편에서 잔잔한 힐링/일상 콘텐츠의 가치를 증명한 <스킵과 로퍼> 등이 터져나온 OTA의 전성시대였다.
<주술회전> 2기
2020년 1기 공개 이후 <귀멸의 칼날>과 함께 소년물의 강자로 군림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라프텔의 역대 인기 애니메이션 순위와 올해 4분기 순위 1위에 올라 있으며, 왓챠의 올해 애니메이션 시청 순위에서도 3위를 기록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이타도리 유지가 저주에 걸리고, 저주를 없애기 위해 능력을 기르며 숙적들과 싸우는 이야기다. <블리치>와 비슷하게 현실 배경에 기반한 로 판타지, 배틀물 계열의 작품이며 인기 캐릭터 중심의 2차 창작이 활발한 덕에 대중과 마니아층의 인기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플루토>
일본 만화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을 각색한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곤 사토시, 호소다 마모루 등을 발굴한 거장 마루야마 마사오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재패니메이션의 고전적 제작·배급 생태계가 OTA 환경에 의해 격변했다는 의미다. 인간과 로봇의 차이에서 파생하는 인간성을 고심한다. <공각기동대> 등이 속한 철학적 SF물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다.
<좀100 ~좀비가 되기 전에 하고 싶은 100가지~>
악덕 기업에서 과로사하기 직전이었던 주인공 텐도 아키라가 좀비 사태를 맞이한 이후 오히려 삶의 행복을 찾게 된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가 동시에 공개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엔 <나의 행복한 결혼> 역시 애니메이션과 실사 시리즈가 연달아 공개됐다. 원작 만화의 인기가 애니메이션, 실사극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바탕한 새로운 OTA 창구 전략의 사례들이다.
<장송의 프리렌>
엘프, 드워프, 마법 등이 등장하는 정통 판타지 장르의 작품이다. 천년 넘게 살아온 엘프 프리렌이 인간 동료 힘멜과의 여정을 추억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을 비롯해 최근 판타지 애니메이션계를 지배했던 이세계, 환생, 전생, 시간 루프 등의 키워드 없이도 라프텔의 올해 4분기 애니메이션 순위 2위에 오르는 등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미기와 다리>
<사카모토입니다만?>으로 국내에도 인지도를 쌓은 사노 나미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전작과 같이 능청스러운 코미디를 바탕으로 나아가는 만화적 상상력이 두드러지는 덕에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개그 코드를 파악할 수 있는 주요작이다. 원작자 사노 나미 작가의 유작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