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2013
<무빙> 속 봉석 엄마로 눈에 익은 한효주의 멋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릴 기회다. <감시자들>에서 한효주 배우는 기억이 특출나게 뛰어난 경찰 하윤주 역을 맡아 신선한 연기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극 중 하윤주는 뛰어난 직감의 소유자인 황 반장(설경구)이 이끄는 감시반에 신입으로 들어온다. 감시반은 서울 한복판에서 3분 만에 벌어진 은행 무장 강도 사건의 주범인 제임스(정우성)를 따라붙기 시작한다. <감시자들>은 깔끔한 오락영화다. CCTV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추적 과정은 군더더기 없는 편집으로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요원들의 팀워크는 사내 연애가 아닌 각자가 맡은 업무를 충실히 해내는 것에서 나온다. 감시자들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지하철과 길거리는 익숙함 대신 새로움을 안긴다. 모니터를 종일 붙잡고 일하는 경찰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직업 탐구영화로서도 매력적이다.
어디서? 넷플릭스, 네이버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에서 볼 수 있다.
<부당거래> 2010
황정민 배우를 <서울의 봄>의 전두광으로만 알고 계신 분들께 <부당거래>는 흥미로운 선택지가 될 것이다. <부당거래>의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 반장(황정민)은 전두광에 견줄 만한 불같은 에너지의 소유자다. 유력 용의자가 사망한 유명 살인사건을 맡은 최철기는 승진하고자 윗선이 시키는 대로 작업한다. 스폰서인 장석구 회장(유해진)을 이용해 범인을 만들고 그럴듯하게 수사를 종결한다. 한편 검사 주양(류승범)은 자신의 스폰서를 구속한 최철기의 뒤를 캐다가 그와 장석구의 거래를 알아차린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대사로 널리 알려진 <부당거래>는 영화 청년 류승완의 결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돈과 명예 앞에서 추악해지곤 하는 인간의 속내를 들추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감독은 정공법의 연출로 활화산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빈틈없는 연기 앙상블, 몰아치는 음악, 힘 있는 촬영까지 더해져 영화는 강력한 장르적 쾌감을 안긴다.
어디서? 넷플릭스, 네이버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티빙에서 볼 수 있다.
<장르만 로맨스> 2021
부모님이 <무빙>의 장주원(류승룡)을 마음에 들어하시는 눈치라면, 그의 또 다른 출연작 <장르만 로맨스>를 슬며시 추천해보자. 류승룡은 한때 잘나갔으나 지금은 변변찮은 소설가이자 교수인 현으로 분해 작정하고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현에게는 두개의 사랑이 찾아온다. 전처 미애(오나라)와 불같이 싸우다가 다시 정들어버리고 동성의 젊은 제자 유진(무진성)에게는 밀어내도 소용없는 구애를 받는다. 한편 현과 미애의 아들 성경(성유빈)은 서로를 지긋지긋해하던 부모님의 뜨거운 재회에 분노한 나머지 좋아하는 누나(이유영)의 집으로 가출한다. 이 스캔들은 현의 친구이자 미애의 현 애인 순모(김희원)에게도 큰 충격을 준다. <장르만 로맨스>는 코미디의 불씨가 끝까지 꺼지지 않는 영화다. 부모님의 복장 터지는 재결합을 사춘기 아들의 가망 없는 첫사랑이 받고, 사제간의 멜랑콜리한 관계와 중년의 청정 지향 연애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희로애락의 유머가 팡팡 터진다. 특히 류승룡 특유의 마성의 남자 연기가 압권이다.
어디서? 넷플릭스,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조용한 가족> 1998
나문희 배우 주연의 <소풍>을 보고 오신 어른들께 이 작품을 권해보는 건 어떨까. 지난해 <거미집>을 내놓은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은 오인과 우연이 빚어낸 서사적 재미가 큰 블랙코미디다. IMF 뒤 산장을 개업한 여섯 식구는 가족 숙박 사업의 번창을 꿈꾸지만 첫 손님의 자살이란 불운을 맞는다. 시체를 우는 얼굴로 은폐하는 건 처음뿐, 죽어나가는 투숙객들을 땅에 묻는 데 익숙해진 이들은 이제 미소와 함께 더 잘 매장하는 법을 고민한다. <소풍>과 달리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에서 나문희는 엄마 정순임 역을 맡았다. 유혈이 낭자한 객실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온갖 근심을 내비쳤던 그의 얼굴이 점차 태연해질수록 이 영화만의 시니컬한 유머는 선명해진다. 극 중 삼촌과 조카 사이로 나오는 최민식과 송강호의 젊은 모습과 박인환과 나문희의 은근하게 끈끈한 부부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디서?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에서 볼 수 있다.
<증인> 2018
<서울의 봄> 이태신 장군(정우성)이 나오는 영화 한편을 틀어보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면? 당황하지 말고 <증인>을 틀어드리자. 정우성 배우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문지원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극 중 로펌 변호사 순호(정우성)에게 사건이 하나 떨어진다. 고용주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가사도우미(염혜란)의 무료 변호를 맡으라는 것.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고등학생 지우(김향기)가 유일한 목격자란 사실을 안 순호는 지우를 법정에 세우기만 해도 승소할 거란 생각에 일단 그를 만난다. <증인>은 엄숙한 법정물 대신 착한 영화의 길을 간다. 순호와 지우가 서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되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까지 세세히 펼침으로써 중년 남자가 각성하는 이야기란 한계를 상쇄한다. 인물의 순수한 면모를 과함 없이 표현하는 김향기의 연기가 돋보이고 정우성은 본인의 젠틀한 이미지를 살린 안정적인 연기로 극에 신뢰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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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도그데이즈>를 보신 부모님께 <미나리> 외에 추천할 만한 윤여정 배우의 작품이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윤여정은 하숙집 주인으로 분해 근사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집의 유일한 세입자가 바로 주인공 찬실(강말금)이다.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다가 감독의 죽음으로 실직한 찬실은 친한 후배 소피(윤승아)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생계를 잇는다. 자기 방의 붙박이 유령 장국영(김영민)에게 의지하며 영화 없는 삶이 가능할지를 자문한다.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인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지라도 영화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찬실은 오랜 시간 자기 꿈을 짝사랑해온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극의 환상성을 부여하며 주인공의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유령은 스크린 바깥으로도 손을 뻗어 힘들어하는 관객의 눈물을 훔친다.
어디서? 넷플릭스, 네이버 시리즈온, 웨이브, 티빙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