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평범한 취향을 거부하는 홍대병파
2024-02-08
글 : 임수연

<키스 키스 뱅 뱅> Kiss Kiss Bang Bang, 2005

감독 셰인 블랙 출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발 킬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정점은 <아이언맨> 시리즈인가, 혹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까지 넘보는 <오펜하이머>인가. 어느 쪽이 됐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분기점은 <키스 키스 뱅 뱅>이다. 흥행은 실패했지만 <아이언맨> 시리즈에 캐스팅되는 발판이 된 작품이다. 장난감 가게를 털던 좀도둑 해리 록하트(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도망가던 도중 우연히 영화 오디션장에 발을 들인다.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실패담을 늘어놨을 뿐인데 그는 덜컥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오인 받는다. 여기에 로맨스가 들어오고, 살인사건이 엮인다. 레이먼드 챈들러, 더실 해밋의 하드보일드와 네오누아르 장르에 바치는 헌사이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특유의 능청스럽고 수다스런 연기적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 혹시 그가 정말로 오스카를 받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는 사람은 알지. ‘로다주’ 최고의 연기는 <키스 키스 뱅 뱅>이라는 것을~”이라고 말해볼 기회….

어디서?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볼 수 있다.

<PTU> Police Tactical Unit, 2003

감독 두기봉 출연 임달화, 소미기, 임설

두기봉이 <독전>(2018)의 원작을 연출한 감독이라거나 <흑사회> 없이는 <신세계>도 없었다는 정도로만 기억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까. 옛날 홍콩영화를 추억할 때 대부분이 왕가위를 언급하겠지만 젊은 액션영화광들에겐 자니 토, 두기봉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그중에서도 두기봉 감독이 직업 감독으로서 의뢰받은 작품이 아닌 “내가 만들고 싶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짬을 내 취미로 만든” 하비 무비(hobby movie)의 대표작 <PTU>(경찰 기동부대(Political Tactical Unit), 직관적인 제목이다)는 홍콩의 여름 밤거리와 사복경찰, 갱단의 이미지를 감각적인 필치로 펼쳐낸 역작이다. 조직 두목이 갑자기 살해당하고 경찰은 권총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되는 영화는 정확히 인지할 수 없는(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늘어놓다 엔딩이 다가올 때쯤 실마리를 풀어낸다. 장렬하는 총격 신의 세련된 리듬이 그 시절 홍콩을 소환한다.

어디서? 웨이브, 티빙, 왓챠에서 볼 수 있다. 단, 담배 피우는 신마저 블러 처리하는 심의 규정은 적당히 ‘흐린 눈’ 하기.

<괴물> The Thing, 1982

감독 존 카펜터 출연 커트 러셀, 윌포드 브림리, 키스 데이비드, T. K. 카터, 데이비드 클레넌

이 리스트에 오르기엔 너무 유명한 감독의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봉준호의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 신하균과 이도현 주연 드라마 <괴물>이 나온 지금, 존 카펜터의 <괴물>은 충분히 ‘힙’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괴물>은 <할로윈> 등 존 카펜터의 전작만큼 박스오피스 수익을 거두진 못했지만 SF와 호러 장르에 미친 영향은 다른 대표작의 명성에 뒤지지 않는다. 외부와 고립된 남극 기지, 누군가의 몸에 외계 생명체가 침입했다. 그가 세상 밖으로 나가면 약 3년 후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를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그로테스크한 밀실 공포를 탁월하게 구현하며 신체 강탈 영화의 바이블이 됐다. 이제 “<괴물> 봤어?”라고 물으면 “존 카펜터의 <괴물>?”이라고 반응해보자(참고로 존 카펜터가 원전으로 삼았던, 하워드 혹스가 제작한 영화는 대체로 <더 씽>(1951)이라 불린다).

어디서?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컷스로트 아일랜드> Cutthroat Island, 1995

감독 레니 할린 출연 지나 데이비스, 매튜 모딘, 프랭크 란젤라, 모리 체이킨, 패트릭 말라하이드, 스탠 쇼

제작비 9800만달러, 북미 수입 1천만달러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망한 영화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덕분에 제작사가 파산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해적이 나오면 무조건 망한다”는 징크스를 깨기 전까지 잊을 만하면 소환되며 조롱당했다. <컷스로트 아일랜드>는 레니 할린 감독의 당시 부인이었던 지나 데이비스가 원톱 주연을 맡은 어드벤처물이다. <대항해시대> 등을 파는 장르 ‘덕후’들에게 중세시대 고증이 잘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존 데브니의 음악과 제작비를 마음껏 쏟아부은 액션 시퀀스의 퀄리티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보다 훨씬 낫다. 캐스팅 및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여성배우가 거친 매력을 뽐내는 모습이, 특히 감독의 부인이었기에 더욱 비난하기 쉬웠던 상황이 영화를 평가절하시킨 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오락영화를 한편 건져가고 싶다면 1순위로 추천하고 싶다.

어디서?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볼 수 있다.

<더 위치> The Witch, 2015

감독 로버트 에거스 출연 애니아 테일러조이, 랄프 이네슨, 케이트 디키, 하비 스크림쇼

넷플릭스 시리즈 <퀸즈 갬빗>의 주인공이자 곧 개봉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타이틀롤로 캐스팅된 애니아 테일러조이의 배우 데뷔작. 당시 할리우드는 ‘어디서든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그의 독특한 마스크와 연기 재능을 단박에 알아봤고 그 기세를 몰아 <23 아이덴티티>에서 제임스 맥어보이의 상대역으로 낙점됐다. <더 위치>는 특히 인디 호러영화를 기반으로 성장해 오스카까지 휩쓰는 스튜디오로 성장한 A24의 초기작이며 로버트 에거스 역시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면서 조던 필, 아리 애스터와 함께 호러 장르의 뉴 제너레이션으로 각광받았다. 중세시대 살렘마녀재판에 휘말린 소녀와 가족공동체의 분열은 종교와 가부장제의 근원적인 공포를 날카롭게 묻고, 마녀(witch)와 창녀(bitch)가 겹치는 이미지로 여성 해방을 은유한 연출이 긴 잔상을 남긴다. 좋은 배우와 재능 있는 감독, 지금 가장 잘나가는 스튜디오의 될성부른 떡잎을 확인할 수 있는 필모그래피.

어디서?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볼 수 있다.

<토마토 공격대> Attack of the Killer Tomatoes!, 1978

감독 존 드 벨로 출연 데이비드 밀러, 조지 윌슨

“난 살면서 이런 영화까지 봤어!”라는 주제가 나올 때 언급하면 “네가 1등!”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영화. 이렇게 허접한 영화를 완주한 스스로가 기특해서 성취감마저 느낄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앨프리드 히치콕의 <새>를 언급하는 뻔뻔함에 피식 웃어주다가, 사람을 죽이며 점점 거대해지는 토마토가 가끔 귀여워 보이는 자신이 싫어지고, 이런 만듦새로 뮤지컬을 굳이 시도하겠다는 뚝심을 이젠 제발 멈춰줬으면 하고 빌게 된다. <토마토 공격대>가 재밌다면 전설의 트로마 엔터테인먼트가 제작·배급한 B급 영화들, 특히 <킬러 콘돔> 역시 분명 좋아할 텐데 한국에서 다시 볼 방법이 없다. 남자들의 성기를 먹어치우는 킬러 콘돔에게 한쪽 고환을 잃은 백인 게이 형사가 전말을 파헤치다가 어느 미친 의사가 동성애자를 징벌하기 위해 신종 라텍스 물질을 발명했다는 진실을 알아낸다. 완전판 국내 OTT 정식 수입 후 <토마토 공격대> <킬러 콘돔> 동시 상영 기획을 촉구한다.

어디서? 웨이브, 왓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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