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미 시게히코는 누구인가. 그는 1936년 일본에서 태어난 영화·문학 평론가이고 <백작부인>을 쓴 소설가다. 도쿄대학교와 프랑스 파리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불문학자이기도 하다. 1970~80년대엔 <감독 오즈 야스지로> <나쓰메 소세키론> <영화의 신화학> 등 대표작들을 저술하며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등 20세기 중후반 유럽의 학문을 일본에 소개했으며 도쿄대학교와 릿쿄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때 그의 강의를 들었던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수오 마사유키 등은 하스미파의 제자로 이름을 떨치며 일본영화계를 이끌었다. 이내 그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도쿄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퇴임 이후 <존 포드론>를 비롯한 숙원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씨네21> 290호). <존 포드론>은 2022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 이듬해에 한국에도 번역됐다. 최근엔 <숏이란 무엇인가> 3부작을 저술하며 돈 시겔 등 50년대 전후의 미국 영화를 탐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여기까진 하스미 시게히코란 사람의 표면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2024년 한국의 영화잡지 <씨네21>이 그에 대한 특집 기사를 마련한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씨네21>이 주목한 것은 <존 포드론>을 한국의 젊은 영화평론가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모종의 흐름이었다. 기묘한 일이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수많은 저작 중 한국에 정식으로 발행된 것은 극히 일부다. 그럼에도 하스미 시게히코는 한국에서 “숭배의 대상이거나 부정의 대상” (김병규 평론가)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이에 “하스미 시게히코가 유령처럼 한국 비평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김예솔비 평론가) 이유가 무엇인지에 <씨네21>은 눈길을 돌렸다.
왜 지금 하스미 시게히코인가. 비평이 죽었다는 시대에 가장 고령의 비평가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어림잡기 위해 <씨네21>은 두개의 만남을 준비했다. 하스미 시게히코와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고 도쿄에 있는 그의 자택에도 방문했다. 두 번째 만남은 젊은 한국 평론가들의 대담이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병규, 김예솔비 평론가는 하스미 시게히코 비평의 매혹과 시의성을 토론했다. 더하여 <씨네21>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주요 저작물을 정리했고, 일본의 호리 준지 평론가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고다르 혁명>을 해제하는 글을 전해줬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나쓰메 소세키론>에서 작가를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고 그의 텍스트만을 바라보길 권했다. 그의 말을 빌려 이 특집 기사가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신화의 진실을 살피도록 돕는 렌즈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