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야 할 때에 결국 만나게 된다. <씨네21> 창간기념호에 하스미 시게히코를 만난 걸 인연이라 포장하고 싶지만 결국 세상 모든 인연은 의지의 결과이기도 하다. <씨네21>에서는 <존 포드론>의 한국 출판을 기념하여 (국내 평자 김병규, 김보년, 김소미, 김예솔비, 오진우 평론가의 질문을 포함) 서면 인터뷰를 먼저 진행했는데, 소개할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 어려웠다. 마침 일본에서 신간 <숏이란 무엇인가-실천편>의 발매를 기념하는 상영회가 열렸고 이우빈 기자가 한달음에 달려갔다. 우리를 흔쾌히 맞아준 하스미 시게히코 선생 덕분에 도쿄 시부야에 있는 그의 자택을 방문하여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얻었다. <존 포드론>엔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적 정수가 담겨 있다. <역마차> <수색자> 등 수많은 걸작을 남기며 20세기 할리우드 서부극의 또 다른 이름이 된 존 포드다. 그 명성만큼이나 존 포드의 영화를 다룬 글은 이미 세상에 수없이 많지만, <존 포드론>은 존 포드의 세계를 철저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저자의 상상대로 그 세계를 재창조한 유일무이의 결과물이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온화한 엄밀함’이라 자처하는 비평적 태도에 따라서 지독할 정도로 상세한 존 포드의 화면들이 가득히 기록되어 있다. 이 결과물을 간략한 수사로 옮기기는 무리다. 저자의 말처럼 존 포드의 영화를 마주하기 위해서 존 포드를 직접 보는 방법밖에 없듯이, <존 포드론>을 직시하기 위해선 <존 포드론>을 읽어야만 한다. 하스미 시게히코와의 인터뷰는 그 마주하기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자그마한 이정표가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평생을 영화의 매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영화광 하스미 시게히코의 견고한 영화적 태도와 최근 모습, 영화산업의 황혼 앞에 그가 한국의 영화광들에게 던지는 명료한 전언을 소개한다.
- <영화의 맨살>은 한국의 젊은 평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다. 올해 초 출간된 <존 포드론>도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니 반갑다. 영화란 나이를 잊게 하는 아득한 체험이다. 나야 오래 살아서 영화도 꽤 많이 본 편이겠으나 영화를 아직 많이 안 본 이들도 존 포드를 보며 나와 같은 영화적 체험을 평등하게 할 수 있다.
- <숏이란 무엇인가-실천편>의 발간 이후에 일본에서도 젊은 독자가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은데.
=연령, 성별, 국적을 넘어서 작품의 생생한 화면과 솔직하게 마주칠 수 있는 자들 모두가 내 책의 진정한 독자다. 80살을 훌쩍 넘었지만 일본인, 노령, 남성이라고 규정하는 자기의식을 가능한 한 멀리하며 <존 포드론>을 썼다. 이 책을 손에 넣는 분들도 부디 자신의 연령, 성별, 국적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고 책에 쓰여 있는 것과 맨몸으로 마주하고, 지금도 생생한 포드의 화면에 시선을 돌려주었으면 한다. 그의 뛰어난 작품들은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무시간적 혹은 비역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체험으로 여러분을 이끌 것이다. 잘 알려진 듯하면서도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포드의 작품에 신선한 시선을 보내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씨네21>에 깊은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 싶다.
- 간단하게 근황을 묻고 싶다. 최근엔 얼마나 자주, 어떻게 영화를 보고 있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외출이 드물어졌다. 최근 아오야마 신지 감독과 요시다 기주 감독, 영화평론가 야마네 사다오 등 친했던 동료들의 거듭된 이별에 몸 상태(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한다.-편집자)가 심하게 나빠졌기에 극장에 가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시사회만 종종 가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DVD로 영화를 자주 보긴 하지만 이게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DVD 감상을 포함해서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편은 꼭 보고 있고 1년에 500편 정도는 감상하고 있다. 기억해 본다면 젊은 시절 파리에서 유학했을 때와 일본에서 학교 다녔을 땐 하루에 2~3편씩 1년에 700~800편을 봤던 것 같다. 여하간 최근엔 미야케 쇼, 하마구치 류스케, 그리고 다큐멘터리쪽에선 고모리 하루카 감독의 신작을 재밌게 봤다.
-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한국에서 곧 개봉한다.
=사람의 시점숏이 없다는 면이 무척 재밌었다. 시선의 주체인 카메라가 이동하는 몇개의 장면에 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예전엔 90분짜리 영화가 많았는데 지금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처럼 쓸데없이 긴 영화가 많음을 지적한 적도 있다.
=영화의 적절한 상영시간을 완전히 결정짓는 기준은 없겠으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집중력이 2시간50분이나 되진 않는 것 같다. 적어도 내 집중력의 한계는 90분이다. 물론 극장에서 본다는 가정하에서. 예전에 B급 영화라 불리던 것들은 70~80분 정도이기도 했으니 젊은 시절에 2~3편씩 볼 수 있던 것 같다. 짧은 상영시간 덕에 더 많은, 더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 DVD를 포함한 극장 외 창구는 진짜 ‘영화감상’이 아니란 뜻으로 이해해도 될까.
=물론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개인적인 체험인 동시에 집단적인 체험이고 그런 체험은 영화관이 아니라면 할 수 없다. 어제 시부야의 시네마베라에서 돈 시겔의 <플레이밍 스타>(1960)를 상영하고 내가 강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행사를 위해 예전 영화들을 DVD로 보긴 했다. 덕분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5번째 출연작인 <플레이밍 스타>, 그의 첫 출연작인 로버트 D. 웹의 <러브 미 텐더>(1956)를 다시 봤고, 엘비스가 부른 <러브 미 텐더>의 원곡
=오랜만의 대외적인 행사여서 꽤 긴장했다. 2장 정도의 노트를 대본으로 준비했는데 시간 분배를 못해서 제대로 다 말하질 못했다. 교수 일을 할 땐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조금 난감했다. 젊은이들이 많아서 꽤 놀랐는데 아마 상영 후 이뤄진 강연이었고 <플레이밍 스타>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왔기에 젊은이들이 조금 더 본 것이 아닌가 싶다.
- 아마 모두 선생님의 팬이 아니었을까. 영화에 관해 말하는 것과 쓰는 것 중 최근엔 무엇이 더 좋은가.
=글쎄. 하나를 딱 잘라 말하긴 어렵겠으나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두 가지의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영화 화면을 직접 보여주며 말하는 것이고 하나는 화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숏이 어떻게 연속되는지를 말하는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흥미롭다.
존 포드의 서정, 반복, 배우
- 2003년 광주국제영화제 포럼에서 ‘존 포드와 던지는 것’을 말한 것이 <존 포드론> 집필의 주요 과정이기도 했다. 2001년 <씨네21>과 인터뷰에서 <존 포드론> 집필 계획을 밝힌 후 2023년에야 한국 독자들이 <존 포드론>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행운이다. <존 포드론>이 포드를 모르던 젊은 세대에게 닿고, 그들이 이 중요한 영화 작가를 새로운 시점에서 발견해줬으면 한다. <존 포드론>은 20년이 넘는 오랜 우정을 안고 있는 임재철 평론가의 헌신적인 노력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2005년 임재철 평론가가 주재하는 서울의 시네클럽에서 포드의 <웨건 마스터>(1950)를 상영했고, 그 전후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어쨌든 20년 이상 전의 일이기 때문에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강연을 위한 노트를 찾아보니 이미 <존 포드론>에서 다룬 내용에 가까운 말이 적혀 있었다. 이 책은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고 첫 외국 번역이 한국어였다는 것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또 미야케 쇼와의 공동 감독 작품인 <존 포드에서의 던지는 것>(Throwing in John Ford’s Movie, 2023) 상영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나라도 한국이었다. 존 포드 개인과 한국과의 유대감 또한 적지 않다. 한국전쟁 중 찍은 <이것이 한국이다>This is Korea!, 1951)는 뛰어난 다큐멘터리 작품이지만 픽션 작품만을 다룬다는 <존 포드론>의 원칙에 따라 이 작품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또한 1959년 한국의 여배우 문혜란을 알게 된 것도 포드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교우 관계는 책의 의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매우 간단하게 ‘각주’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 <수색자>(1956)의 후반부에에서 내털리 우드를 ‘두팔’로 안아 올리는 존 웨인의 모습을 두고 조금도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적었다. 영화에서 감정의 원천과 가치란 무엇인가.
=영화의 감상적인 기능이나 그 설화론적 배치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다만 ‘감상적’이든 ‘감정의 근원’의 농후함이든 그것이 과도한 표현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서정성’이라는 것을 주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마 포드 또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감상을 (하나의) 영화의 이론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사실 영화든 소설이든 감상적인 것, 혹은 서정성은 ‘축축한 것(젖은 것)’이어서는 안된다. 가능하면 ‘건조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개인적인 취미의 영역을 넘어서진 못한다.
- 포드에 있어서 그 ‘메마른 서정’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수색자〉의 첫머리, 남군 병사 모습의 존 웨인을 멀리서 알아본 도로시 조던의 말없는 행동과 그 허리를 덮고 있는 흰 앞치마가 바람에 나부끼는 광경이 있다. 관객 중 누구도 두 사람이 예전에 사랑했던 사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도 숏의 적확한 연쇄와 억제된 음악의 선율에 따라 마치 러브신 같은 순간이 화면을 뒤덮는다. 이것이야말로 메마른 서정의 전형이 아닐까. 그에 비해 존 웨인이 내털리 우드를 두팔로 안아 올리는 종막의 광경은 유감스럽게도 그 영역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내털리 우드라는 여배우가 도로시 조던에 비해 충분히 포드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포드의 또 다른 순간이 떠오른다. <리오 그란데>에서 존 웨인이 막사에 들어온 아들에게 엄격하게 대하더니 아들이 나간 후 장성한 아들의 키를 가늠하는 장면이다.
=아, 그 장면은 훌륭한 장면이지. 나도 뭉클했다. (웃음) 그저 순식간에 지나갈 수도 있는, 별 의미 없는 장면인데도 포드가 너무나도 잘 연출한 화면이다. 아버지가 일어나 텐트 천막에 다가가서 자신과 아들 중 누구의 키가 더 큰지 재보는 장면을 말하는 게 맞나.
- 맞다. <아파치요새>에서 헨리 폰다의 딸이 술집의 여주인에게 자기의 모자를 씌워주는 장면에서도 반복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포드의 그런 장면들을 모아서 꼭 글을 써 보길 바란다. (웃음)
- <존 포드론>에서 언급되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가령 <청년 링컨>은 아무래도 재판 영화라 공간도 좁고 인물의 움직임도 비교적 제한돼 있다. 그러나 후반부의 재판 시퀀스는 감정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장면이다. 헨리 폰다의 ‘뒤로 기대는 자세’로 잘 알려진 재판 장면 연출에서 주목한 요소가 무엇인가.
=확실히 포드의 작품에는 많은 재판 장면이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프리스트 판사>(1934)의 그 딕시의 대합창으로 끝나는 더할 나위 없는 낙천적인 재판이다. 포드가 가장 존재감 있는 배우라고 인정했던 헨리 월솔― 말할 것도 없이 사일런트기 포드의 걸작 <켄터키 프라이드>(1925)에도 나왔고 그리피스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영화사가 가장 자랑해야 할 배우 중 한명― 이 얼굴을 보여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 법정 장면은 <태양은 밝게 빛난다>(1953)에도 받아들여지고 있다만 여기서는 재판 자체보다 창녀를 매장하는 긴 장례식의 아름다움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고 부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청년 링컨>을 재판 영화라는 범주로 분류하는 것에는 동조할 수 없다. 영화 초반 가지가 무성한 높은 나무의 줄기에 긴 다리를 대고 독서에 빠져드는 열린 자연의 광경은 정말로 훌륭하다. 그 후 비밀스럽게 연정을 품고 있던 젊은 여성과 함께 강둑을 산책하고, 헤어지고 나서 강가를 향해 돌을 던질 때까지의 옥외 장면의 연출의 호흡은 존 포드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후반의 재판 장면은 뛰어난 것이라도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은 아니었다.
- 어떤 행동의 반복되는 이미지가 영화 작가의 조건이라면 어느 정도까지의 예외가 작가의 기질을 뒤집지 않는 한에서 허용되는 것일까.
=주제론적인 체계의 분석에 있어서 그 예외성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 질문을 받아들이겠다. 규칙을 확정하는 것은 예외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포드의 여성들 대부분이 거울 앞에서 화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네 남자와 기도>(1938)에서 로레타 영의 꼼꼼한 화장 솜씨를 본 이후다. ‘아, 포드의 작품에는 거울이 거의 부재하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보란 듯이 거울 앞에 몸을 두는 일은 극히 드물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됐다. 내가 그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존 포드론>의 제3장 「그리고 인간」의 Ⅱ 「비와 거울」의 두 번째 「반영」이라고 하는 항목이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앞서 제3장의 Ⅲ 「노래가 불리고 춤이 춤을 춘다」의 「주느비에브와 캐슬린, 그리고…」 항목에서 다시 한번 거울 앞에서 화장하는 여성에 대해 아주 짧게 언급하고 있다. 바로 <코레히도르 전기>(1945)에서 여성 장교 도나 리드가 대장 로버트 몽고메리의 초대로 전쟁터에 흔한 판잣집 같은 레스토랑에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다. 그곳에서의 그녀는 마중 나온 존 웨인의 눈앞에서 입구 옆 그림자가 된 부분에 놓여 있는 듯한 거울에 얼굴을 비춰 솜씨 있게 화장을 해 보인다. 이 뜻밖의 숏의 훌륭함은 어떤가. 이미 여러 번 보고 있었을 <코레히도르 전기>에서 얼마 전까지 이 거울 같은 것의 존재는 깨닫지 못했다. 여기서 도나 리드 옆모습의 거울 속 반영은 <네 남자와 기도>의 로레타 영보다 훨씬 훌륭하다. 자신도 모르게 이게 영화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 포드의 여성은 거울을 보며 화장하지 않지만 <네 남자와 기도>(1938)의 로레타 영은 예외라고 언급했다.
=로레타 영은 도나 리드가 그렇듯 존 포드의 영화에는 한번밖에 출연하지 않았다. 다섯편이나 되는 작품에 주연한 모린 오하라나 중기에 두편, 후기에 두편 정도 주연하고 있는 조앤 드류나 베라 마일스와 비교해 포드의 작품에 한편밖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여배우들이 있다. 그중 역설적으로 출연이 극히 드물다는 예외성이 오히려 그 작품을 빛내는 배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로레타 영이다. <스코틀랜드의 메리>(1936)의 캐서린 헵번, <역마차>(1939)의 클레어 트레버, <토바코 로드>(1941)의 진 티어니, <모감보>(1953)의 에바 가드너, 〈일곱 여인들〉(1966)의 앤 밴크로프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세계는 움직인다>(1934)의 매들린 캐럴이나 <모호크의 북소리>(1939)의 클로데트 콜베르도 특히 포드적인 여성상에 담겨진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역시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 〈황색 리본>(1949)에서 빅터 맥라글렌이 몸집이 작은 병사를 안아 올려 (마치 사람이) 오브제인 것처럼 벽에 던지며 장면을 마무리 짓는다고 말했다. 포드가 배우(인간)를 하나의 오브제로 보고 있었다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감독인 포드가 이른바 스턴트맨들과 극히 친한 관계를 갖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두고 싶다. 실제로 포드는 덩치 큰 남자에게 ‘던져지고’ 총격을 받은 말에서 ‘전락’하는 것에 능숙한 스턴트맨들을 많이 기용했다. 〈역마차〉의 스턴트맨이었던 야키마 카누트와 그 후도 깊은 관계를 유지해서, <모감보>에서는 제2반 감독으로서 야수들의 생태의 촬영을 맡기기도 했다. 그런 스턴트맨들 중 중기 포드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이 프레드 케네디다. 화면을 보면 맥라글렌에게 던져지는 것은 바로 이 스턴트맨 겸 조연자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포드 영화의 폭력 장면에 있어 스턴트맨이라는 특수한 역할을 연기하는 인물들의 존재가 매우 중요했다.
- 포드에게 배우란 무엇일까.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론처럼 포드에도 명확한 배우론이 있었나.
=존 포드가 로베르 브레송처럼 각각 작품에 걸맞은 명확한 배우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겠다. 더구나 감독으로서의 그가 배우들의 선택에 무언가 집착하고 있었다고 해도 몇년에 한편밖에 찍지 않았던 브레송과 어느 시기까지만 해도 20세기 폭스사의 계약 감독으로서 한해에 평균 세편이나 되는 작품을 찍어야 했던 포드와는 배우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드는 “존 포드 스톡 컴퍼니”(The John Ford Stock Company)라고 불리는 한 무리의 마음에 드는 배우 집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스탭의 일원에 불과했던 존 웨인처럼 사일런트 말기의 여러 작품에 살짝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를 〈역마차〉의 주연자로 맞이하는 데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존 웨인의 성숙을 기다릴 만한 시간적인 여유를 자신에게 부과하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