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특집] 하스미 시게히코를 들여다보는 렌즈
2024-04-06
글 : 송경원
글·사진 : 이우빈

<플레이밍 스타> 강연

3월23일 도쿄 시부야에 있는 미니 시어터 시네마베라에선 돈 시겔의 <플레이밍 스타>(1960) 상영 후 하스미 시게히코 평론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숏이란 무엇인가-실천편>의 발간 기념 행사였다.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의 최근 관심사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던 자리였다. 이 소중한 기회를 붙잡기는 쉽지 않았다. 며칠 전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사전 예매 현장은 인산인해였고, 행사 당일 142석 규모의 시네마베라 상영관은 빈자리 없이 채워졌다. 이 행사를 기획한 시네마베라의 지배인 나이토 유미코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하스미 시게히코 선생님만큼 영화 팬을 모을 수 있는 평론가나 관계자는 없다”라며 그의 건재한 영향력을 입증해주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스스로 “50년대 미국영화가 나의 뿌리”임을 연신 밝히고 있다. 그중 그의 유년 시절과 현재에까지 막대한 의문과 경탄을 일으킨 영화 작가로 돈 시겔과 리처드 플라이셔를 꼽고 있다. 아직 한국에 출간되지 않은 그의 최근 저작 <숏이란 무엇인가>의 중심 제재가 돈 시겔의 <베이비 페이스 넬슨>(1957)이기도 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플레이밍 스타>를 만든 돈 시겔의 탁월함 중 하나로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단 2곡의 노래만 부르게 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무척 단순해 보이는 사실이지만, 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강력히 원했던 제작사(이십세기 폭스)의 개입이나 관객들의 기대를 상쾌하게 배반한 작가영화의 뚜렷한 사례라는 뜻에서다. 즉 이번 행사에선 하스미 시게히코가 50년대 전후의 미국영화를 말할 땐 영화 내부의 논리뿐 아니라 당대의 영화사적 맥락까지 함께 곁들인다는 동향을 살필 수 있었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자택 서재엔 담배 냄새가 농후하게 배어 있었고, 영화 관련 책과 사진 및 영상물이 서재의 온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화광’ 하스미 시게히코의 면모가 단번에 느껴졌다. 사람이 발디딜 공간마저 침식해가는 듯한 온갖 영화의 흔적들 사이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존 포드론>은 하스미 시게히코가 반세기 넘도록 집필을 구상하고 진행한 역작이다. 그만큼 책의 내용은 누구도 쉬이 비아냥대지 못할 만큼 탄탄하다. 동시에 저자는 영화의 한 장면을 잘못 기억하고 썼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등 자신의 허술함과 모순을 매력적으로 고백하기도 한다. 종장의 제목 ‘포드에 대한 논의를 끝내지 않기 위해서’처럼 <존 포드론>은 포드에 대한 논의, 비평에 대한 논쟁을 끝내려는 마침표가 아니다. 미래의 자신과 다른 비평가들에게 남기는 숙제에 가깝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하스미 시케히코가 온화한 미소를 짓더니 기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리처드 플라이셔의 영화를 얼마나 봤나요?” 기자가 “2편밖에 보지 않았습니다”라고 잘못을 시인하자 이내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Just Tell Me When to Cry : A Memoir by Richard Fleischer>라는 두꺼운 책을 꺼내 보였다. 그러곤 “제가 당신에게 숙제를 내겠습니다”라며 “리처드 플라이셔의 영화와 이 책을 보고, 책의 제목이 누가 누구에게 무슨 의미로 했던 말인지 알아보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서재를 둘러보던 기자는 책꽂이에 붙어 있는 로베르 브레송의 <호수의 란슬롯>(1974) 미니 포스터를 발견했고 갑작스러운 질문을 건넸다. “브레송의 영화를 좋아하십니까. 어느 영화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하스미 시게히코는 “전부”라고 즉답했다. 이어서 “아직 한국엔 발간되지 않은 <숏이란 무엇인가-실천편>에 브레송의 <돈>(1983)에 대한 글을 실었다. <숏이란 무엇인가>는 애초 3부작 기획이어서 <숏이란 무엇인가-역사편>의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 1부는 구술록 기반이었고 2부는 직접 쓴 글들을 묶었다. 3부도 내가 쓴 글이긴 한데 2부보단 분량이 적을 것 같다. 아무튼 난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영화 작가인 브레송과 돈 시겔을 동시에 좋아하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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