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신장이 커졌다는 요즘 신인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키(189cm라지만 실물로 보면 더 크게 느껴진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면, 그다음엔 또래보다 성숙하지만 아직 소년의 해맑음을 잃지 않은 얼굴이 보인다. 단적으로 그는 TV드라마 데뷔를 하자마자 10대 학생(<일타 스캔들>에서 부모가 시키는 대로 우선 공부에 전념하고 있는 모범생 선재)부터 30대 비서(<하이클래스>), 심지어 현생과 전생을 아우르며 시대를 초월한 악연(<이번 생도 잘 부탁해>)을 넘나들며 얼굴을 비췄다. 외적으로 좋은 달란트를 가진 신인에게 일찍 찾아온 행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에겐 무대와 카메라의 차이를 절감하며 매체 연기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이 있었고, 현장에서의 배움은 올해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하이라키> 주연을 꿰차는 밑거름이 됐다. “학교 연극무대에서는 이른바 느껴지는 대로 연기할 때가 많았는데 카메라 앞에서는 자칫 과해 보이거나 감정이 덜 보일 때가 있었다. 카메라에 찍힌 내 모습을 모니터링하면서 그 접점을 찾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느끼고 표현하는 것과 제3자가 봤을 때 받아들이는 바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결과가 잘 녹아든 작품이 <일타 스캔들>의 선재다. 노래방에서 지코의 <아무노래>를 엉망으로 부른다든지 해이(노윤서)와 마음을 확인한 후 “손잡자, 손잡자”고 애드리브로 어리광을 부리던 모습은 본능적으로 느꼈던 감정과 행동이 시청자에게도 캐릭터 본연의 어설픈 풋풋함으로 전이됐던, 신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좋은’ 연기다.
“아버지가 농담 삼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가 됐으면 한번쯤 빛나는 인생을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웃음)” 모의고사 성적도 우수했다는 그의 학창 시절은 일견 <일타 스캔들>의 선재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의 부친의 표현대로 ‘빛나는 인생’을 향한 분기점은 고3 때 찾아왔다. “공부를 하다가도 배우들의 연기를 너무 보고 싶어서 <미스터 션샤인>을 자꾸 꺼내 보던” 이채민은 결국 본능이 이끄는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공부와 연기과 입시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은 결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19학번 새내기가 됐다. 성실한 기질은 기본기를 중요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괜히 멋있는 음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눌러서 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부끄럽다. 오히려 발음이 안 좋아져서 전달력이 떨어진다.” 기존의 목소리를 버리는 데만 2년을 쏟았다는 이 신인이 인터뷰가 끝난 뒤 향할 장소 역시 발성 학원이었다. “예전엔 발성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몰랐는데 요즘엔 시간이 금방 흘러갈 정도로 즐겁게 배우고 있다”며 기본기 훈련도 흥미로운 놀이처럼 받아들이는 그가 언젠가 찍고 싶은 영화는 “발성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누아르물이나 사극 장르”다. 상대가 너무 정석적인 코스를 밟는 모범생처럼 느껴질 때쯤 그는 곧 독립을 앞두고 있다며 ‘일기 쓰기’가 목표라는, 너무 소박해서 이유가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방 안에서 일기를 쓰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갑자기 문을 열면 너무 부끄러운데 혼자 살면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허를 찌르는 매력의 소유자가 성실하고 심지어 즐기고 있다면, 마음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로맨틱코미디에 도전하고 싶다. 이를테면 <쌈, 마이웨이>에서 박서준 선배가 김지원 선배와 꽁냥꽁냥대며 보여줬던 케미스트리? 여자가 먼저 애교를 부리면 남자가 따라 하는 모습을 무척 재미있게 봤다. 감독님과 함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리허설하는 과정도 즐겁지 않을까.”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기브온의 <Heartbreak Anniversary>. 술잔 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라이브하는 모습을 우연히 유튜브로 봤다. 흰색 반팔 티에 검정 슬랙스만 입었는데 어쩜 그렇게 멋있을 수 있지? 너무 섹시해서 완전 반했다. ‘이게 할리우드의 자유로움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웃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다.”
2024 <하이라키> 예정 2023 <이번 생도 잘 부탁해> 2023 <일타 스캔들> 2022 <환혼: 빛과 그림자> 2022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 2021 <하이클래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