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눈썹과 오래된 흉터 사이에 묻혀 있는 어두운 눈. 사막 바람에 휘날리는 드레드록스 헤어와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는 청동빛 근육. ‘창이파’ 넘버3이자 철퇴를 휘두르는 도적 ‘곰’은 김지운 감독의 액션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작은 역할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스쳐 지나가는 캐릭터는 37살의 늦깎이 연기자인 마동석이 데뷔 초기 맡은 역할 중에서도 유난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마치 얼굴에 난 깊은 상처처럼. 16년 후, 피지컬 트레이너 출신 배우 마동석은 역대 가장 성공적인 한국 배우 중 한명으로 10년 넘게 활동 중이다. ‘곰’의 철로 상징되는 압도적인 힘은 <범죄도시>의 파괴적인 주먹을 거쳐 넷플릭스 영화 <황야>에 이르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처럼 다가온다. 매체를 넘나드는 ‘마동석 돌풍’은 2024년에도 그 위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현대적이며 접근하기 쉬운 형태의 남성성
많은 외국 시청자들, 특히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마동석의 지울 수 없는 첫 이미지는 할리우드 데뷔작인 마블의 <이터널스>가 아니라 <부산행>에서의 보호자다. 아내 성경(정유미)의 보호자로서 KTX 열차의 좁은 통로에서 석우(공유)와 나란히 좀비를 막아선 상화(마동석)는 건장하고 강인할 뿐 아니라 착한 마음씨가 돋보였다. 그는 위기에서 우리를 보호해줄, 영웅의 뒷모습을 형상화한 존재였다.
넓은 등 뒤로 숨고 싶은 영웅의 이미지는 마동석의 특별하고도 대표적인 이미지다. 그는 여러 면에서, 특히 육체적으로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을 연상시킨다.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80년대 마초 액션 스타들의 초월적인 남성성이야말로 마동석의 근간이다. 마동석은 그들의 강인함은 물론 부성애를 바탕으로 한 아우라를 물려받았다. 이러한 매력은 그의 개그와 잽으로 못난 놈들을 처단하며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80년대의 폭발적인 액션 보디와 파급력 있는 테스토스테론이 지금까지 유행하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동석은 80년대의 마초성에 그치지 않고 현대적이며 접근하기 쉬운 형태의 남성성을 지닌다. 그의 존재는 위압적이지만 그의 페르소나는 성적인 위협에서 거리가 멀다.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마동석은 슈워제네거가 분한 ‘코난 사가’의 코난과는 다르다. 과거 많은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여성들의 보호자에 가깝다.
그는 <부산행>의 공유처럼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부드럽고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위협적이지 않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비주얼과 포용 가능한 귀여움은 가정적인 남자로 소비될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마동석은 보호자다. <부산행>처럼 직접 보호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범죄도시>처럼 동료 형사의 가족이나 평범한 시민들의 보호자 역할을 구현한다. 디스토피아의 황무지에 방치된 사람들, 악당들의 먹이가 되기 쉬운 사람들 앞에 마동석이 버티고 서 있다.
코미디를 장착한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마동석이 지향하는 액션 스타는 아무래도 실베스터 스탤론일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오버 더 탑>(1987)에 영향을 받은 듯한 마동석의 팔씨름 드라마 <챔피언>만 봐도 알 수 있다. 몇년 전 스탤론의 제작사 발보아 프로덕션과 팀을 이루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범죄 스릴러 영화 <악인전>의 미국 리메이크 영화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느꼈다. 비록 그 이후 이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언젠간 우리 모두가 꿈꿔왔던 돈 리(Don Lee)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결이 성사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바라건대 팔씨름의 형태라면 더 의미심장할지도 모르겠다.
마동석은 공식적으로 해외에선 돈 리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영어 매체에서 약간의 혼란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이 별명은 또 다른 유형의 스크린 아이콘인 몇몇 홍콩 무술 스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음성적으로는 도니 옌(Donnie Yen: 견자단)과 브루스 리(Bruce Lee) 사이 어딘가에 속하지만, 사실 마동석의 액션 스타일과 유머 브랜드는 성룡(Jackie Chan)과 같은 스타들에게 훨씬 더 빚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동석이 할리우드 스타들을 능가하는 또 다른 지점이 다름 아닌 코미디이기 때문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은 상황을 시원하게 돌파하지만 사실 코미디적인 측면에서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반면 마동석은 웃음을 얻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다. 물론 <압꾸정>에서의 과한 의상과 겉모습처럼 때때로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마동석의 가장 재미있는 역할 중 상당수는 평범하고 코믹한 캐릭터들이었다. 이원석 감독의 <상의원>에서 관리자 판수가 보여준 그의 독특한 스타일처럼 말이다. 이렇게 거친 남자가 이토록 폭넓은 코미디 스펙트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걸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마동석이 출연한 영화들은 그의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성공적인 결과물일 뿐 아니라 그의 대표적인 캐릭터 마석도라는 이름에 어울린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선택한 3천만명에 가까운 관객들은 이번 4편에서도 놀라운 사전 예매 수치로 그 애정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영화 최초로 3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프랜차이즈의 탄생을 눈앞에 둔 상태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상업적 전망은 장밋빛이지만 시리즈가 확장됨에 따라 침체를 겪는 부분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결과물은 마동석이 사랑하고 사랑해온 요소들 중심으로 만들어졌지만 어둠도 짙어졌다. 그의 영화들은 마동석의 페르소나에 의존해왔는데 여기엔 캐릭터가 더욱 빛나도록 희생된 다른 캐릭터들이 있다. 마동석 외의 캐릭터가 덜 부각될수록 그의 영화들도 점차 덜 흥미로워진 것이다. 가령 윤계상 배우가 열연한 장첸은 <범죄도시> 1편에서 더할 나위 없는 강력한 적수였다. 이 시리즈는 진선규, 손석구, 최귀화, 박지환 같은 배우들의 새로운 발견을 통해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범죄도시3>에서 마석도가 무자비한 단독 적수가 아닌 한쌍의 악당을 상대하기로 하면서 마동석과 대척점에 있는 빌런의 기여도에 대한 잘못된 계산을 해버렸다.
(마동석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8편까지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제 관객들은 최소한 4편의 <범죄도시>를 추가로 약속받았다. 여기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마동석 주연의 다른 프로젝트들도 있다. 마동석 월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마동석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가 더욱 궁금할 때다. 그는 30대 후반에 스크린 데뷔를 했고, 42살에 첫 주연을 맡았다. 성적 학대를 다룬 법정 드라마 <노리개: 그녀의 눈물>에서 출발한 그의 페르소나는 이후 여러 이미지들이 더해졌고, 현재 한국 최대의 영화 스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지금 마동석은 53살이다. 이런 사실은 그가 가진 순수한 신체성이 얼마나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자아낸다. 그가 지난 몇년 동안 얼마나 다작을 했는지를 고려해보면 그가 지금 맞서 싸우는 진정한 적은 시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마동석은 오랫동안 업계에서 가장 헌신적인 일중독자 중 한명이다. 그는 성공적인 훈련 요법을 수행하듯 영화 경력을 쌓아나갔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체육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톰 크루즈가 60대가 되어서도 우리의 마음과 상상 속으로 계속 달려들어 날아갈 수 있다면, 마동석이 그 길을 갈 수 없을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의 강펀치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쪽에 판돈을 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