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지구 공간 속의 우리들, 장영자 프로그래머의 추천작과 선정의 변
2024-05-29
글 : 장영자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장영자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반세기 가운데 가장 뜨거운 4월을 보냈고, 다가오는 여름에는 수년째 그러했듯 매해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과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프로그램은 기후 위기, 환경 재앙과 투쟁, 해결책, 쓰레기 문제, 자연과 공존 등 주요 환경 이슈를 기반으로 작품을 선정했으며,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문도 따로 마련해 접근성과 대중성을 높였다.

환경문제를 좀더 쉽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작품 선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환경문제는 무겁고 불편하다.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광산댐, 이탈리아 타란토의 제철소로 인한 대기오염, 서유럽으로 돌아온 늑대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첨예한 논쟁, 괴짜 변호사의 해초로 지구를 구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가 쓰는 종이컵, 프라이팬에 함유되어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분해되지 않는 영원한 화학물질 문제 등 함께 살아가는 지구 공간 안에서 서로 기억하고 주목해야 할 지구 곳곳의 환경문제를 묵직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 5편을 소개한다.

헤제이투 Rejeito

페드로 데 필리피스 / 브라질 / 2023년 / 75분 / 국제경쟁, 지구 비상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주민들은 광산 회사 발레를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철광석 채굴을 위해 건설된 거대한 광산 댐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미 2019년 붕괴 사고로 270명이 사망한 희대의 환경 재앙이 일어났다. 지금까지도 사건의 주범인 다국적 광산 기업 발레에 어떠한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들은 새로운 광산 계획에 착수한다. 댐 난민들과 지역 정치인이 지역사회를 위협하는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맞선다.

방가랑 Bangarang

줄리오 마스트로마우로 / 이탈리아 / 2023년 / 75분 / 국제경쟁, 지구 비상

굶어 죽느니 암에 걸려 죽겠다는 선택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1960년대 세워진, 유럽에서 가장 큰 제철소가 있는 이탈리아 남부 공업도시 타란토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철소의 붉은 먼지는 공장 근처 외에는 살 수 없는 가난한 지역민들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 높은 소아암 발병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소아암 희생자들의 얼굴이 담긴 대형 벽화가 시내를 처연하게 바라본다. 최악의 환경 재앙으로 논의되는 유럽 최대 제철 공장이 있는 타란토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방가랑’은 자메이카어로 소란, 무질서, 혼돈을 의미한다.

늑대의 나라에서 In Wolf Country

랄프 뷔헬러 / 독일 / 2023년 / 102분 / 국제경쟁, 야생의 세계

동화 속 악당인 늑대는 수백년간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공포의 상징으로 문화적 각인이 되었다. 사실 서유럽에는 꽤 오랫동안 늑대가 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돌아왔다. 독일의 경우 늑대는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일부 지역에 드문드문 살고 있다. 유럽에서 늑대의 귀환은 자연과 인간과의 공존에 관한 뜨거운 논쟁거리다.

해초를 구해줘 Send Kelp!

블레이크 맥윌리엄 / 캐나다 / 2024년 / 89분 / 슬기로운 음식 생활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나의 문어 선생님>과 국내에도 개봉되어 많은 관심을 받은 <위대한 작은 농장>이 만난 것과 같은 환상적인 수중촬영과 함께 재미있고 기발한,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해초에서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 변호사 프랜시스는 괴짜 해초 양식업자로 거듭난다. 과연 해초는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린 워리어: 포에버 케미컬 Green Warriors: Forever Chemicals

마르탱 부도, 마농 드 쿠에 / 프랑스 / 2023년 / 48분 / 지구를 구하는 거인들

과불화화합물은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지 않는 화합물로 영원한 화학물질(Forever Chemicals)이라고도 불린다. 테플론 프라이팬, 콘택트렌즈, 종이컵, 친환경 빨대 등의 코팅 재료, 심지어 과자 포장지에도 함유되어 있으며 일상용품 외에 물, 토양, 공기에서도 발견된다. 이들은 체내에서 잘 배출되지도 않고 버려진 후 분해도 되지 않는다. 전세계 수많은 공장에서 생활용품 제조를 위해 과불화화합물을 사용한다. 화학적 안정성으로 인해 분해되지 않는 이 ‘영원한 화학물질’은 인체 내부에 축적되어 암을 비롯한 건강 문제를 일으키고 면역 체계를 손상시킨다. 15년 전 백혈병 진단을 받은 테드 반 데르 블리스는 지역 화학 공장 인근에 살고 있다. 지역 채혈 캠페인에 참여한 그는 자신의 혈액이 ‘영원한 화학물질’인 과불화옥탄산(PFOA)에 심하게 오염되었음을 알게 된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소재한 화학 공장 부근의 강과 그 지역의 모유, 수유 어머니들의 모유 샘플을 테스트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세계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해 한국에서는 아직 규제나 관련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