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해외 예술영화는 궁극적으로 한국영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
2024-06-28
글 : 정재현
사진 : 백종헌

10년 전 규모 대비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던 <프란시스 하>, 한국의 시네필들이 셀린 시아마의 이름을 부르짖도록 만들었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낯선 배우와 낯선 감독을 기억하게 만든 <애프터썬>까지. 그린나래미디어(이하 그린나래)는 시네필들에게 해외 영화제 시즌마다 올해는 그린나래가 어떤 영화를 가져올까 기대하게 만드는 이름이 됐다. 2년 연속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슬픔의 삼각형> <추락의 해부>)을 수입한 그린나래는 연초 <추락의 해부>가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또 한번 인상적인 예술영화 흥행 기록을 세웠다. 믿고 보는 그린나래는 지금의 한국 아트하우스 영화시장을 어떻게 진단할까. 늘 좋은 영화의 첫 번째 관객을 자처하는 유현택 대표와의 대화를 전한다.

- 연초 개봉한 <추락의 해부>가 인터뷰일 기준 10만3393명의 관객수를 돌파했다. 내부에선 이 기록을 어떻게 자평하나.

= <추락의 해부>가 극장에서 거둔 10만 관객의 성과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15만, 20만 관객에 준하는 성과로 체감했다. 한국영화 시장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65% 정도밖에 회복이 안된 상황이다. 아트하우스 시장도 마찬가지다. 5만 관객을 목표로 한 영화는 3만 관객을 채우기 힘들고, 20만 관객을 목표로 한 영화는 10만 관객이 들면 좋은 정도다. 뿐만 아니라 예술영화 박스오피스 또한 허리 격에 해당하는 중간 규모의 작품이 사라지는 중이다. 말하자면 동원 관객수가 10만명 아니면 1만명인 상황이다. 1년에 10편의 영화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흥행 수치가 극단에 있다 보니 회사 입장에선 10편을 묶어 결산해도 시장이 확장됐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급변하는 영화 소비 트렌드 속에서 어떻게 비용 지불은 낮추고 수익을 높일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30초 정도 되는 <추락의 해부>의 법정 신 클립을 처음 보았다. 미리 구매하고 싶었지만 내부 의견을 종합한 결과 당장 수입하긴 어려웠다. 잔드라 휠러의 입지가 지금과 달랐고,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전작이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칸영화제에서 완성작을 봤다. 기대 이상으로 영화가 마음에 들어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 지난해 수입한 <애프터썬>만 해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큰 호평을 받았음에도 공개 당시엔 감독과 배우가 유명한 작품은 아니었다.

= 아무래도 칸영화제는 경쟁부문이 가장 주목을 받는다. 우리 또한 구매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경쟁부문을 먼저 검토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후 비평가주간과 감독주간 등에서 숨은 보석을 찾아낸다. <애프터썬>도 그런 케이스다. 폴 메스컬과 샬럿 웰스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영화가 너무 좋았다. 회사의 결과 맞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지금의 관객수는 예상 못했다.

- 올해 칸영화제에서 <에밀리아 페레즈>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신성한 나무의 씨앗> <바늘을 든 소녀> <마이 선샤인> <더 발코네트>를 수입했다. SNS에서도 매년 칸영화제에서 그린나래가 사들이는 작품의 편수가 화제다.

= 지난해 칸영화제에서도 다섯 작품을 구매했다. 산술적으론 한 작품 더 산 거다. (웃음) 노에미 메를랑 연출, 셀린 시아마 공동 각본의 <더 발코네트> 정도를 제외하면 칸에서 작품을 확인한 후 구매를 확정했다. 우리의 역할은 좋은 작품을 구매해 국내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큐레이터다. 좋은 영화를 발견하면 언제든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칸에서 시사한 후 너무 좋아 구매를 결정한 케이스다.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경우 쏠쏠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아트하우스 시장에서 셀린 시아마 신드롬을 일으켰다.

= 다양성영화 시장에서 가장 중추적으로 흥행을 견인하는 요소 중 하나가 팬덤의 존재다. 감독 혹은 배우를 중심으로 뭉친 팬덤이 흥행은 물론 그린나래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한다.

- 시네필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혹은 비난이 ‘사놓고 왜 개봉을 안 하나’ 아닌가.

= 개봉작의 수가 이전에 비해 줄면서 원성을 덜 듣긴 한다. (웃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처럼 일본보다 먼저 개봉시킨 경우도 있지만, 개봉 일정은 본국의 개봉 일정을 고려하다 보니 시기를 확정하는 게 쉽지 않다. 물론 해외에서 이미 VOD가 풀린 작품이 한국 흥행에 영향을 줄지도 고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했던 개봉 시기가 낫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개봉 시기를 확정한다. 요즘은 오스카 레이스에 예술영화가 참전하는 경우가 늘면서 오스카 캠페인 일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수입한 <에밀리아 페레즈>는 넷플릭스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네온이 북미 배급을 담당한다. 그럴수록 이들의 오스카 캠페인과 전략적으로 시너지효과를 낼 국내 개봉 시기를 찾게 된다.

- 영화제 마켓 상황은 어떠한가. 팬데믹 이전의 활기를 되찾았나.

= 그래도 마켓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정도의 회복세를 보인다. 그런데 유독 한국 아트하우스 시장 회복이 더디다. 특히 수입 시장이 열악해졌다. 지금은 딱 내가 볼 영화만 보는 시장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추락의 해부> 개봉 당시 우리는 경쟁작으로 <웡카>를 꼽았다. 워너브러더스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웃음) 꼭 봐야 하는 한두편의 영화가 시장 전체의 흐름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재편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영화는 2차 시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고, 2차 시장 또한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보니 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 VOD 2차 시장은 TVOD의 과금으로 탄탄했는데, 홀드백 이슈 등이 중첩되고 OTT 소비 트렌드가 그 위로 탄탄하게 자리잡다 보니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 수입사 입장에서는 급변하는 아트하우스 시장에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성향 분석이 어느 때보다 주효해 보인다. 지금 아트하우스 소비시장의 동향을 어떻게 진단하나.

= 정확한 답은 늘 모르겠다. 65% 정도의 회복세라 해도 <추락의 해부>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관객수는 분명 관객이 극장 경험을 요한다는 진리를 입증하는 유의미한 지표다. 이때 다시 한번 팬덤의 보유 여부가 중요해진다. 관객은 1만원 이상의 거금을 내 극장을 찾는다. 당연히 그들은 어떤 영화에 돈을 지불할 때 ‘시네마틱 체험’을 만족스럽게 누리고 극장 밖을 나설 수 있을지 고심할 수밖에 없다. 그 당위성을 충족하기 위해선 감독 혹은 배우가 지닌 명확한 팬덤을 포함해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아야 할 명백한 이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 예술영화의 흥행을 위해선 시네필들의 호응을 넘어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가닿아야 한다. 달리 말해 타깃으로 삼는 관객층의 저변이 매번 달라져야 하고 또 넓어져야 한다.

= 수치로 정량화할 수 없는 시네필 영역에 신규 관객을 어떻게 유입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예술영화 시장의 관객수를 1만 관객에서 5만 관객까지 늘릴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한 상영관 안엔 1주일에 예술영화를 한편 보는 시네필이 있는가 하면 한달에 한번 혹은 분기에 한번 예술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소비자들이 우리 입장에서 잠재 고객인 셈이다. 그들을 설득하는 접근법을 다각도로 펼칠 필요가 있다.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계층도 잠재 고객의 메인 타깃이다. 그린나래도 전시, 음악 페스티벌 등 개봉 당시 영화 이상으로 소구되는 타 분야 예술과 협업하는 방식을 택하며 관객 유치에 힘쓴다.

- 해외 예술영화가 시네필의 단일한 즐거움이 아닌 문화, 예술 전반을 두루 즐기는 이들 모두가 공통으로 즐기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됐다. “영화제를 가도 록페스티벌을 가도 도서전을 가도 다 똑같은 사람들만 있다”는 트윗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결국 공연장이나 미술관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그 시간에 극장에 오도록 만드는 게 아트하우스 시장의 급선무가 됐다.

= 사실 극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전시회, 록 페스티벌, 맛집을 순방한 후 나중에 극장에 오면 이미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상영이 끝나버리니 말이다. 가끔 SNS에서 “이 영화 꼭 보고 싶은데 이번주엔 극장 가기가 어렵다. 다음주까지 틀어주려나”와 같은 글을 볼 때마다 일일이 찾아가 “이번주에 꼭 극장에 가셔야 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극장 홍보 전략도 변화하는 추세다. 극장에 간 후 볼 영화를 매표하는 문화도 사라졌고 극장 안에서 머무르는 시간 자체가 짧아졌다. 극장 방문 이전에 게임을 끝내야 한다. 관람 이전에 이루어지는 홍보 전략이 극장에 집중하는 마케팅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10만명의 힙스터들이 <추락의 해부>를 극장에서 봤지만 20만, 30만명의 힙스터는 OTT에서 <추락의 해부>를 볼 수도 있다. 과거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을 10만 관객이 보던 시절과 비교해본다면 케이블TV에서 <희생>을 틀어줄 리는 없으니. (웃음) 지금의 수치는 플랫폼의 절대적 증가로 볼 수도 있겠다. 똑같은 10만 관객이어도 코아아트홀에서 단관 개봉으로 만든 수치와 전국 각지에서 만든 수치의 의미가 다르듯 말이다. 그럴 때일수록 2차 시장에 있는 관객을 어떻게 스크린으로 가져올지에 관한 고민이 선행된다.

- 더이상 영화의 인증 문화가 주요한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영화에 관한 정보를 인스타그램이나 X(옛 트위터)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홍보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 10년 전만 해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프란시스 하>를 보고 SNS에 인증하던 게 ‘힙’한 문화였다. 한데 지금은 실관람객의 자생적 바이럴이 손쉬운 시장이 아니다. SNS를 통한 홍보 전략을 사전에 구성한 후 영화를 사진 않는다. 다만 영화를 구매한 이후 X에서 반응이 올 것 같은 영화와 인스타그램에서 반응이 올 것 같은 영화를 구분하는 정도의 전략은 세운다.

- 굿즈 마케팅은 아트하우스 시장에서 얼마나 유효한가.

= 여전히 실효성에 관한 고민을 한다. 또한 굿즈 마케팅이 가진 본질적 효율성에 관한 고민도 많이 한다. 우리도 한동안 ‘굿즈나래’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굿즈 마케팅에 힘을 쏟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개봉하려는 영화와 굿즈 마케팅이 어울릴지 거듭 회의하며 굿즈 마케팅을 지양하는 경우가 늘었다. 구조적으로 본다면 저예산으로 개봉하는 독립·예술영화는 아직 굿즈 마케팅을 대체할 전략이 미비하기 때문에 굿즈를 통한 모객이 훨씬 선호되는 측면이 있다.

- 제도적 지원을 포함해 지금 아트하우스 영화시장에서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 제도적인 지원은 분명히 필요하다. 우리를 포함해 많은 수입사들은 해외 예술영화를 구매해 배급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한국영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해외 예술영화 수입은 개봉 지원 사업, 상영관 확보 등의 제도적 지원에서 언제나 배제된다. 현업 종사자들과 함께 당장 필요한 정책이 무언지 취합하는 과정도 전보다 중요해졌다.

이 감독, 놓치지 않을 거예요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셀린 시아마 감독이 서운해하려나. (웃음) 영화를 수입하는 일은 결국 그 영화의 첫 번째 한국 관객이 되는 일이다. 첫 번째 관객으로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구조를 들여다보고 싶게 만들고, 차기작을 기다리게 만든다. 계속 이야기한 ‘시네마틱 체험’을 선사하는 감독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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