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을 뽑으라 하면 김재원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통상적인 정치 이력이 없던 인물이 신당 조국혁신당의 비례대표로 당선됐을 뿐 아니라, 그 인물이 가수 ‘리아’라는 사실이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의 관심이 특별했다. 대중문화계 현업에서 오래 활동해온 그가 문화예술인들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살펴줄 것이란 기대였다. 그의 첫 목표인 ‘블랙리스트 방지법’ 제정이 그 기대에 부응할 예정이다. 또한 그는 의정 활동을 위해 출장을 갈 때마다 저녁엔 지역 예술인들을 만나곤 한다. “옛날 가수들이 지역에 가서 낮엔 행사를 뛰고 뒤엔 밤무대 두세탕을 뛰면서 돈을 벌었던 것처럼 바삐 움직이려 한다”라는 그의 비유에선 오랜 현업 종사자의 관록과 융통성이 한껏 느껴졌다.
- 갑작스러운 출마였는데도 당내 비례대표 경선에서부터 좋은 결과를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경선 때는 어머니께서 병상에 계셨던 터라 워낙 정신이 없었다. 주변에 투표 독려도 제대로 하질 못해서 기대를 안 했다. 이후 경선 결과를 보고 놀란 뒤에 생각해보니 확실히 시대가 변했음을 느꼈다. 경선 투표엔 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 50%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제 국민은 정치를 무척 다양하고 세분화한 분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예전엔 정치인이란 직업이 정치만 하는 사람들을 칭했다면, 이젠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에 목소리를 내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해진 것이다.
- 당선 후 개원까진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나.= 아쉽지만 개인 활동은 거의 준비를 못했다. 신당이고 의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지역위원회나 시도당 등 당 단위의 안건이 산적해 있었다. 거대 정당이면 초선은 좀 뒤에 있어도 될 텐데, 난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일을 해내느라 아주 바빴다. 첫 등원 전날인 29일에야 의원실에 들어왔다. 여야 대치로 인해 업무보고까지 지연되면서 일이 더 늦어지고 있다. 맘 같아선 부처에 직접 찾아가서 빨리 진행하고 싶었는데 보좌진이 말리더라. (웃음) 국회란 게 역시 마음대로 되는 곳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기름이 새더라도 계속 시동을 걸어놓고 언제든 달릴 준비 중이다.
- 얼마 전 영화계 인사 9명과 간담회 자리를 가졌다. 영화산업에 대해 원래 관심이 있었나.
= 늘 관심이 있었고 지금 가장 화두인 객단가 문제 등도 관심이 있던 쟁점이다. 용어만 다를 뿐 음악산업과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하다. 내가 막 활동했던 90년대는 카세트테이프와 CD의 헤게모니가 1년 만에 뒤바뀌고, 곧바로 MP3가 CD를 잡아먹던 때였다. 거대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며 어마어마한 자본과 유통망을 구축하며 판도를 바꿨다. 그 자본의 순환으로 10명씩 되는 아이돌 그룹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예전의 듀오나 트리오 같은 가수 형태가 거의 사라졌다. 한 문화산업의 격변기를 직접 겪은 셈이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거대 멀티플렉스 계열사나 플랫폼이 시장에 진출해서 자본, 제작, 배급, IP를 전부 가져가버리니 점차 중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가 걸릴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음악이든 영화든 소규모 창작 단위의 사람들은 먹고살 길이 사라지고 있다.
- 저작권 전문가로서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 세계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OTT 콘텐츠의 IP 규제나 관리도 제도적으로 무척 미비한 상황이다.
= IP 저작권을 재산권적 측면에서 볼 때 콘텐츠 저작권을 플랫폼에 넘기는 건 창작자들의 먹고사는 문제와도 크게 연관돼 있다. 사후 70년까지 보장되는 저작권을 넘겨야만 다음 작품을 위한 자본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문제다. 지나친 산업화로 인해 문화예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음반 제작을 위한 창작 융자금은 보통 300만원이다. 창작자들에겐 이 돈으로 큰 수익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후의 창작 활동을 더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뿐이고, 결국 저작권이라도 넘겨 당장 제작비를 융통하게 되는 거다. 한편 저작권 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방법으론 블록체인 기술이 세계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수만개에 달하는 음악, 영상 콘텐츠의 저작권을 각 기업에 맡기기보다 세계 단위의 통합적인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해 창작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거다. 대기업 플랫폼의 수익 분배 문제, 구체적으론 영화 객단가의 정보공개 문제에 대한 개선책도 나오게 된다. 정부 차원에서도 숙고하여 저작권 제도에 대한 과도기적 정책을 계속 펼칠 필요가 있다.
- 객단가, 저작권을 포함 영화·영상 산업에 걸친 구조적 문제의 개선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 간담회 자리에서 말했던 대로 대기업 위주의 산업생태계에 정부가 직접적인 구조조정을 취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개입이 없으면 예술의 다양성은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정부에선 K콘텐츠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관련해 2027년까지 5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언제나 큰 산업 단위에만 적용되는 것이고, 사실상 그만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투입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지율, 전국 동시 지방선거 등을 위해서인지 계속하여 이런저런 세금을 없애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문화예술의 권리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인 사회권을 보장하기조차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 문화예술 권리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개선할 예정인지.
= 입당할 때부터 ‘정치도 문화다’라고 공표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를 하나의 문화로 이해하고 실제 사회의 속도에 맞는 정책과 법안을 논의하는 일이다. 과거와 달리 사회, 기술의 발전 속도는 너무도 빠르고 정치 문화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적 지체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안이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당대 문화를 가장 빠르게 함축하고 퍼뜨릴 수 있다. 그러니 예술 표현의 자유를 절대 막아선 안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을 임기 목표로 삼고 있다고 들었다.
= 그렇다. 예술의 권리를 막는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 홍콩영화계를 보면 문화예술 산업에 대한 정치적 규제가 어떻게 산업을 무너뜨리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내부에서 그런 사태가 발생하고 계속 싸우고 있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블랙리스트 방지는 사상 문제와 무관하다. 누구나 억압받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여러 간담회나 토론회, 현장 방문을 통해서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다. 개인별로 아주 다른 사례가 있는 터라 개별 면담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 개별 사례를 가능한 한 모아서 법안에 구체적인 보상 기준 등을 마련하려 한다. 지금 85% 정도 작업이 완료됐으니 곧 발의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후 행보도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