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재정과 영화 예산, 증액할 방도는 없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예산이 2%만 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통상 문화 선진국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문화재정이 2%지만, 2024년 문체부 예산은 정부예산 656조6천억원 중 6조9545억원으로 약 1.1% 수준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대에 머무르는 현실”(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임을 부정하긴 어려우며 “한국의 GDP 대비 비율을 고려하면 최대 3%까지 확대될 필요”(전재수)가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금의 문화재정 수준은 “K컬처로 글로벌 문화강국을 이룩하겠다는 정부 기조가 무색”(전재수)하다는 게 야당 의원들의 중론이다. 다만 문화재정이 2023년 대비 3.2% 증액된 것을 따지면 “정부에서도 문화재정에 분명히 신경 쓰고 있으며, 큰 성과가 없는 문화예술 사업은 과감하게 구조조정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이 여당측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의 설명이다. 반론은 바로 등장한다. “현 정부가 문화예술 정책을 이윤 창출에만 입각한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전재수)는 것이다.
이에 의원들은 각자의 시선에서 문화예술 예산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당위성을 설명했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기술사회가 가속할수록 인간의 기본적인 문화권을 보장하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며 이윤 창출의 목적이 아니라 문화복지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로서 문화재정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승수 의원은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미래의 유망 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문화 기반을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문화예술 분야 정책의 증진을 요구했다. 정상진 조국혁신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예술인지원법을 제정해 문화재정 확충의 디딤돌”을 세워야 하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문화예술 모태펀드를 조성하여 문화예술 분야별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라고 개선책을 제시했다.
올해 7조원가량의 문체부 예산 중 영진위의 사업비 예산은 467억원으로 1%를 한참 하회하며, 이는 정부예산의 0.01%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사업비보다 36% 정도 감축됐다. 예산 규모만을 따질 때 국회에서 문체부와 영진위 예산이 주요 사안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다. “왜 지금까지 국회에서 여러 문화예술계, 영화계 현안이 해결되지 못했나를 들여다보니 결국은 기본적으로 문화예술 예산의 황폐화”(강유정)가 포착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지역 문화예술 관련 사업의 예산 결정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나 문체부가 아닌 재정 당국의 평가”(김승수)가 주효했다는 맥락이다. 영화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하며 영화산업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할 영진위의 역할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영화 예산의 향방을 예측하기 위해선 부과금, 조직 형태 재편 등 영진위에 얽힌 고질적 재원 문제와 구조적 한계를 짚는 단계가 자연스레 이어져야 한다.
2. 부과금 폐지 발표, 쌀쌀한 국회 반응
지난 3월27일 정부가 발표했던 부과금 폐지 발표에 대한 현직 의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부과금 폐지 논란이 일자 영화인들이 즉각적으로 펼쳤던 의견은 영진위 재원인 영화발전기금(이하 영발기금)을 충당하는 부과금이 폐지되면 영진위의 존립과 이후 사업이 불투명해진다는 것이었다(<씨네21> 1451호 ‘“대화가 필요하다”,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 논란… 영화계 반응 중간 점검’). 이에 대외적으로 정부가 밝힌 부과금 폐지의 근거는 영화 티켓값 인하를 통한 극장 소비자의 부담 감소였다. 김승수 의원은 “큰 방향성에선 편법에 가까운 준조세를 폐지하고 국가 일반 예산에서 안정적으로 영발기금을 마련해주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정부 기조를 설명했다.
이에 강유정 의원은 “티켓값에서 해봐야 500원 줄이는 게 실질적으로 민생 안정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이며 “영화산업의 창작 근간을 씨앗부터 말리는 위험을 동반”한다는 거센 반론을 건넸다. 또한 강유정 의원은 부과금 폐지 논란을 문화예술계 정책기조의 전반적인 문제로 꼬집었다. 부과금 폐지를 통한 영진위 사업의 축소로 독립영화가 가장 큰 피해를 맞게 되듯이 “독립 출판, 독립 서점 등 ‘독립’이나 ‘신생’이란 말이 붙은 문화예술계의 세계가 무너질 것이며 이러한 경향이 지금의 정부 기조”란 뜻이다.
부과금 폐지 논란엔 “영화계와의 협의 없는 일방적 폐지란 폭거나 다름없다고 생각”(전재수)한다는 강한 비판도 있었다. 사전 협의의 부족이란 점에선 “장기적으론 부과금을 폐지하더라도 불안정한 영발기금 재원의 충원 방식을 먼저 잘 고려해서 진행해야 한다”라며 신중론을 펼친 김승수 의원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어서 김승수 의원은 “문체위 차원에서 문체부와 대책을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부과금 폐지 사안은 총선 이후 진척이 잠잠한 상황이다. 이제는 영진위의 운영 방향성 등 영화 정책의 미래에 대해 물을 차례였다. “영화예술 지원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기조와 목적 방향성의 재정의”(정상진)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다.
3. 영진위를 둘러싼 의구심의 연속
“영진위가 옛날 영화진흥공사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예산 확보나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는 데 있어 현재 영진위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의문이 든다.”(정상진) 영진위의 필요성과 운영 방향성에 여러 의문부호가 따르면서 항간엔 영진위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이 합쳐질 것이라는 후문이 퍼졌고, “영비법을 개정해 영화·OTT 콘텐츠간 통합 지원체계를 구축”(6월17일 문체부의 제3차 콘텐츠산업 진흥 기본계획 발표 중)하겠다는 전망까지 공표됐다.
영진위의 조직 구조를 바꾸려는 방향성에는 여러 의구심이 따랐다. “영화산업과 OTT 산업을 합친다는 명목으로 영진위와 콘진원을 통합한다면 이 두 조직의 통합 예산은 10+10=20이 아니라 10+10=15~18 정도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재원)라는 것이다. 나아가 “정부 기조에 맞지 않는 조직을 이런 방식으로 축소하는 것이 행정부에선 비일비재하며, 최근 영진위 예산과 권력을 줄이는 것도 결국은 영화 정책 자체를 줄이려는 전조 증상”(김재원)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현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기조 수립부터 참여했던 김승수 의원에 따르면 “영진위의 조직 통합 사안은 아직 국회와 심도 있게 논의된 상황”이 아니며 “당장 정부 정책으로 단언하긴 어려운 수준”이다. 덧붙여 “이미 지난 정부부터 각종 문화예술 R&D 기능을 콘진원에 포함하며 조직이 커진 상황이고, 조직이 너무 커지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한계”(김승수)도 있다. 문체부 관계자 A씨도 “지난 발표는 시대 변화에 맞게 영화와 OTT 콘텐츠에 종합적 지원을 펼치겠다는 의도였고, 기관들의 통합 같은 사안은 종합 지원 체계 구축 이후의 문제이므로 아직 구체적인 단계는 아니다”라고 정리했다. 다만 영진위의 형태가 바뀔 가능성이 없진 않다. “영화예술을 지원하고자 만들어졌던 영진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어야 하냐는 논의는 본격화”(강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임 영진위 위원장 인사에 대한 의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강유정 의원은 한상준 위원장의 부임을 “현 정부의 인사 특징”이라며 “특별한 결격사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선임의 근거나 적극적인 개선 방향성을 아직 보여주지 않은 인물을 여당 조직이나 여러 기관의 인사로 발탁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원 의원도 “투쟁적이기보다 온화한 인사를 선택하며 정부가 이후 위원회의 미래를 좌지우지하기 위한 초석을 둔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의원들은 영진위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영화인들의 지지가 가장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보기엔 공공기관 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당사자들의 반응이 기관의 중요성과 근본적인 기능을 판단하는 가장 핵심적인 근거”(김승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영진위에 투입되는 예산 규모는 정부재정에 큰 타격이나 변동을 줄 규모가 아니다. 대신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지지를 받는지 지탄을 받는지에 따라 결국 기관의 구조를 수술할 것인지를 정부와 국회가 판단”(김승수)하게 된다는 뜻이다. 강유정 의원 역시 “영화계 진보인사들조차 영진위를 독임제로 바꿔야 한다는 등 다소 극단적인 변화의 필요를 요구하고 있다”라며 “많은 영화인에게 지금 영진위의 역할론이 방치되는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4. 국회와 영화계의 가교는 튼튼할 것인가
영진위에 대한 영화인들의 문제 제기는 영진위 차원의 자정능력을 넘어선 일이기도 하다. 영진위의 예산과 사업이 당대 정부의 기조에 따라 좌지우지되며, 문체부의 실무 부서 정도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영진위 위원장 개인의 역량이나 9인 위원의 활동만으로 어려움을 해결할 수준”(정상진)은 아니란 것이다. 박기용 전 영진위 위원장이 회의 자리에서 언급했던 “영진위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다. 영진위가 사업 방향성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문체부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라는 말은 최근 영진위의 상황을 간결히 진단하기도 했다(<씨네21> 1424호, ‘예산은 줄고 말할 곳은 없다, 2024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논란’).
“국회 차원의 공론장 복원은 영화시장의 회복과 지속 가능한 영화산업 구축을 위한 첫걸음”(전재수)일 수 있다. 영진위의 권한만으로 해결이 요원한 문화예술 예산, 부과금 등 정책기조에 대한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결국 영화계는 국회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년 동안 영화 좀 돌봐달라며 국회 문을 두드렸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영화계 원로 A씨)라는 아쉬움이 터져 나오면서도 영화인들이 계속하여 의원들을 방문하는 이유다. “정부는 문을 닫았지만, 국회는 제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정상진)가 영화계와 국회 사이의 가교를 무너뜨리지 않고 있다.
실제로 강유정 의원은 5월15일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와의 간담회를 진행했고 “대형 멀티플렉스, 배급사의 의견도 취합하여 객단가 문제 등을 파악”했다. 또 27일엔 영화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를 포함한 문화 불공정 사례 피해자들과의 ‘문화산업 불공정 개선을 위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입법 토론회’ 자리를 마련했다. 김재원 의원 역시 “3~4명으로 예정됐던 영화인과의 간담회에서 9명의 관계자를 만났다”. 김승수 의원은 “최근 한국영화감독조합측 관계자와 만나서 영화 저작권 문제를 청취”했고 “부산국제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를 찾아 관련 현안을 파악하고 있으며 내달 스크린독과점 관련 국회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영화계 현안 해결을 위해 의원들과 정치계가 역설한 의견은 “영화산업의 문제가 영화계만의 문제로 비추어져선 안된다는 것”(강유정)이다. 정상진 위원장도 “영화계의 어려움을 한국 문화예술 전반의 시야로 확장해 많은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남겼다. 영화산업의 타개책을 음악산업과 연결하여 바라보는 김재원 의원, 영화계 문화 불공정 사례를 문학, 출판계 등 여타 문화예술 산업과 포괄해 조치하는 강유정 의원, 문화산업공정유통법 등을 통해서 영화를 포함한 콘텐츠 산업 내 부당한 저작권·수익 침해나 불공정 사례를 전반적으로 방지해야 한다는 김승수 의원의 의견 등도 유사한 맥락이었다. “창작자들을 지키고 적절한 수익 분배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누가 반대하겠나. 그렇기에 문화예술계 법안 특유의 주관적인 기준을 조정하는 데 있어 끝없는 논의가 필요” (김승수)하다. 문화예술계, 영화계 쟁점이 당론이나 정쟁을 초월한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앞서 “벽을 허물고 함께 이야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정상진)하다는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필요하며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