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언제까지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명탐정 코난>으로 본 프랜차이즈 애니메이션의 세대적 의미
2024-07-24
글 : 서찬휘 (만화 칼럼니스트)

미스터리 장르의 특징과 소년만화적 대중성의 공존

일찍이 에도가와 란포,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형성한 일본 추리 문학은 서구권의 미스터리소설을 계승하고 자체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급기야 요코미조 세이시의 탐정 캐릭터인 긴다이치 고스케의 손자를 자처하는 또 다른 만화 캐릭터 긴다이치 하지메(<소년탐정 김전일>의 그 ‘김전일’)가 등장할 만큼 일본인들은 미스터리 장르를 오래 그리고 깊이 사랑해왔다. 이러한 문화적 저변은 <명탐정 코난>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약을 먹고 어린아이가 된 주인공 구도 신이치가 둘러대는 이름이 에도가와 코난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다름 아닌 ‘에도가와 란포’의 에도가와에 대문호 ‘코난 도일’의 코난 아닌가? 에도가와 란포라는 대작가의 이름 또한 또 다른 미스터리 장르의 대가인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온 것이고 보면 참 재밌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적 저변만이 <명탐정 코난>의 압도적인 인기를 설명해주진 않는다. 이 작품이 여타의 미스터리 장르 만화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까닭은- 작중 살인사건이나 죽는 사람의 수가 남부럽지 않게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 장르 작품임을 감안해도 몹시 대중적이고, 또 다양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그림과 내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부터 약물로 어린애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이 작품에는 본격 미스터리 하면 생각할 수 있는 심각함과 귀여움이 놀라울 만큼 즐겁게 공존한다.

그런데 이 공존은 거의 대부분의 인물 배치에서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어린이 몸이 된 주인공에 맞춰 소년, 소녀들이 이입할 구석을 두는가 하면(어린이 탐정단), 너무나 틀에 박힌 듯하게 뭐든 만들어내는 박사님 역(브라운 박사)도 뻔뻔하리만치 대놓고 등장하고, 그걸 또 그럴싸하게 써대며 액션을 펼치는 주인공하며, 주인공인 코난에 비해 일견 무능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균치를 상회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어른들(유명한 탐정 및 경찰들)과 뭔가를 꾸미고 있는 매력적인 흑막(검은 조직)의 배치가 그렇다. 여기에 러브 코미디의 한축으로 진짜 여주인공이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지만 막상 어느 쪽도 약한 꽃다발의 역할과는 거리가 먼 모리 란과 하이바라 아이, 라이벌 역인 괴도 키드나 핫토리 헤이지 같은 인물들의 대비까지 놓고 보자면 주인공부터가 1인2역이라 할 복합성을 띤 이 작품에서 읽는 이들이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조 사라진다.

이렇게 <명탐정 코난>에는 본격 추리물의 틀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각 인물들의 역할이 지극히 전형적인 듯 복합적으로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어 소년 만화의 주 독자는 물론 미스터리 장르 문법에 익숙해진 이들,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게 즐길 수 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자칫 지식 대결과 사건의 잔인함이 부각되기 십상인 미스터리 장르에 소년 만화스러운 과장과 인물의 다층적 매력을 부여한 텍스트로서 새로운 독자 및 관객의 유입은 물론 나이 들어 다시 볼 때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30년이란 세월은 한 세대다. 어려서 본 코난을 어른이 돼 자식과 함께 볼 수 있게 된 시간인 셈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프랜차이즈 비즈니스의 의미

<명탐정 코난>은 비단 독자와 관객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는 업계인들의 세대도 아우르는 작품이다. 벌써 26~27년째 제작되다 보니 애니메이터와 성우에 이르기까지 초기부터 참여하고 있는 중견과 베테랑이 신인들과 섞이고 있다.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으로 코난 극장판을 세 번째 맡고 있는 나가오카 지카 감독은 2024년 4월20일자 <앙·앙>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코난이란 작품에만 있는 두께”라 언급한 후 “새로운 바람이 들어오면서 코난 애니메이션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명탐정 코난>은 보는 이들도, 만드는 이들도 세대를 거듭하며 함께할 하나의 연결고리로서 마주하는 대상이다. 스포츠에 빗대어 표현하면 그야말로 존재만으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환희와 감동을 일으키는 ‘프랜차이즈 스타’라 할 만하다. 어린이 때 본 작품을 자식과 함께 보는 것은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즐길 만한 대중(즉 비오타쿠층 대상)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명탐정 코난>이라는 IP 비즈니스의 성과가 가능한 까닭은 애니메이션과의 강한 연결성을 지닌 일본 출판만화의 특성이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TV와 극장이라는 대중을 대상으로 노출 창구를 카탈로그 삼고 이를 다시 만화 판매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 일본의 출판만화 비즈니스 전략이다. 만화책이 물경 2억6천만부, 최신 극장판 관객수 1천만명 등 애니메이션 노출도가 노출도를, 흥행도가 흥행도를 만들어내는 국민적 프랜차이즈의 정점에 오른 이 작품을 오로지 기계적인 전략의 성공이라고만 볼 순 없다. 일본에서 많은 작품들이 애니메이션 노출을 통해 책 판매고를 높이려는 전략을 시도하지만, 모두가 <명탐정 코난>같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탐정 코난>의 성과는 다매체 전략만이 아닌 작품이 지닌 매력과 대중성이 장르적 저변까지 더해 빚어진 결과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압도적인 수요와 이를 연결 지어 소비하는 일본 특유의 시장성과 규모가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전주만 나오면 대학 축제가 뒤집어지는 뽀로로 같은 캐릭터가 있지만 이들은 초통령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어린이들과 그 어린이를 TV 앞과 극장으로 데려오는 역할로서의 부모까지가 시장의 실제 한계선이다.

여러 면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강세인 일본과는 결이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한국에서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바탕을 둔 프랜차이즈 IP가 나올 수 있을까? 특히 실사화쪽에서 강세를 보이는 한국에서 가능한 일일까? 한국 만화의 헤게모니를 장악 중인 네이버 웹툰은 최근 웹툰 IP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화를 시즌을 거듭해 추진하며 일회성 영상화에서 그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욕망은 읽힌다. 다만 전 세대를 아우를 만한 대중성과 시간을 차분히 쌓아나갈 수 있는가는 아직 미지수다. 작가와 업체가 사고를 치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변화하는 사회상 등에도 끊임없이 조응해야 한다. <명탐정 코난>의 인기에서 네이버 웹툰을 비롯한 한국의 콘텐츠 플랫폼 업체들이 배워야 할 것은 비단 다매체 전략만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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