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코난이 달리면 나도 달린다,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김선혜 성우
2024-07-25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코난은 애증의 캐릭터다. 항상 사랑스럽고 내 인생에서 무척 의미 있는 존재지만, 그만큼 내가 이 친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에게 느끼는 분노가 상당하다.” 이는 한 캐릭터를 수십년간 연기해온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감상일 것이다. 2000년 <투니버스> 4기 성우로 입사한 김선혜 성우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 <명탐정 코난> TV시리즈 2기 때부터 현재까지 코난의 한국판 성우를 담당했다. 어릴 때부터 추리물을 좋아해온 그에게 “코난과 일생을 함께하는 건 운명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오랜 시간 해왔다고 해서 허투루 넘기는 부분은 없다.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이하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에서의 코난의 호흡, 추리할 때의 감정선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김선혜 성우는 초 단위로 세심한 분석을 가했다. 녹음 과정을 들려주는 그에게서 코난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 더빙을 위해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을 일찌감치 관람했을 텐데, 이번 극장판을 시사한 소감이 궁금하다.

= 지난해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 때까지만 해도 액션 신이 굉장히 많았는데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에선 추리극이 강화됐다. 코난이 절친인 핫토리와 함께 추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더 재밌게 녹음했다. 핫토리가 나오면 괜히 내 마음도 편해진다. 코난과 핫토리가 서로 친하다 보니 티키타카가 잘되고, 말투도 좀더 건방지고 쾌활해진달까. 그 또래 말투가 그대로 나오면서 분위기가 유쾌해진다. 그리고 이상하게 코난이 핫토리랑 나오면 배경에 꽃이 많아진다. (웃음) 이번 극장판은 홋카이도가 배경인데, 그런 자연경관의 변화에서 오는 마음의 편안함이 있어 더 좋았다.

- 개봉 후에도 극장에서 여러 차례 영화를 관람한다고. 녹음할 때와 달리 극장에선 무엇을 주의 깊게 보는 편인가.

= 녹음을 준비할 때는 아무래도 내 부분을 더 많이 보게 되는데 극장에선 다른 관객처럼 영화 자체를 즐기러 간다. 코난이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게 시그니처인데 해당 장면이 하이라이트일 때가 많아서 극장에선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 더 유심히 보기도 한다.

- 매번 극장판의 오프닝을 새로 녹음한다. 이번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오프닝을 녹음할 때 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

= 이번 오프닝에선 코난이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고 외친 뒤 짧게 웃는다. 슬쩍 지나가는 부분이지만 내 입장에선 ‘어, 얘가 웃네?’ 싶었다. 극장판마다 내용이나 분위기에 따라 오프닝도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번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은 핫토리와 괴도 키드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좀더 유쾌해졌다. 그런 점이 반영된 것 같아 빠르게 지나가는 웃음임에도 잘 살리려고 했다. 사실 오프닝을 녹음하는 게 제일 어렵다. “난 어린아이로 변해 있었다”에서 ‘다’를 얼마나 임팩트 있게 처리할 것인가, 힘을 얼마나 줄 것인가에 관해 정말 많이 고민한다. 극 초반에 나오기 때문에 톤을 잡는 게 어려워서 끝까지 녹음을 끝낸 후 오프닝을 재녹음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후반부로 갈수록 톤이 잡히고 감정선이 정리되니까 그다음에 오프닝을 녹음하면 더 통일성이 생기기도 한다.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녹음 환경이 달라져 전과 달리 대부분 혼자 녹음할 때가 많다고.

= 그렇다. 하지만 극장판의 경우 나는 항상 혼자 녹음해왔다. 코난의 대사가 워낙 많아서다. 게다가 극장판은 TV애니메이션보다 신경 쓸 게 많다. 큰 스크린으로 작품을 보기 때문에 TV애니메이션의 경우보다 입길이를 더 정확히 맞춰야 한다. 녹음한 뒤 입 길이를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을 녹음이 끝날 때까지 수없이 반복한다. PD님과의 조율 과정도 긴밀하게 이루어진다. 주로 대사보다는 호흡과 감정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서로 해석 차이로 인해 의견이 갈리는데 그 차이가 대단히 미묘하다. 예를 들면 슬픔과 애잔함 중 어떤 감정이 더 어울릴까, 호흡을 어디서 끊고 이어갈까와 같은 것들이다. 그런 감정들을 말의 속도를 살짝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했을 때의 차이를 같이 조율해가는 것이다. 내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입장인 PD님의 의견을 수용할 때가 많다.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을 녹음할 당시 기억에 남는 디렉팅이 있다면.

= 이번에 함께한 PD님이 내가 <투니버스> 전속 성우 시절부터 20년 넘게 봐오신 분이다. 그런데 나보고 “박영남 선배님(캐릭터 짱구 역으로 잘 알려진 58년차 성우다. - 편집자)처럼 70대 넘어서까지도 하겠다. 소리가 가면 갈수록 훨씬 더 좋아진다. 대단하다”고 하신 거다. 이 칭찬을 들은 뒤론 다른 디렉팅은 다 잊어버렸다. (웃음) 그만큼 감사하고 행복한 칭찬이었다.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극장판에선 코난과 핫토리가 함께 추리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는데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문자표 추리 장면이다. 이 장면을 녹음할 당시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 그 신에서는 핫토리랑 머리를 맞대고 퀴즈를 풀듯이 비밀을 찾아나가기 때문에 감정 표현보단 지적인 냉철함을 보여줘야 해서 톤과 전달력에 신경을 많이 썼다. 녹음할 때 PD님과 나의 대본상에서의 문자표 해석이 달라서 왜 서로 해석이 다른지에 대한 토의도 이뤄졌었다.

- 극의 후반부에서 코난이 괴도 키드와 함께 보물에 관해 밝혀낸 점을 풀어낼 땐 문자표를 해독하는 장면과는 또 다른 톤으로 추리를 전개한다.

= 정말 많이 고민한 장면이다. 보물의 미스터리가 해결되긴 하는데, 그걸 통쾌하게 말하기보다는 오노에 가문의 역사적 배경과 연결되면서 감정선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 감정을 어떻게 쪼개 이야기하면 더 잘 전달할지 계속 장면을 돌려보고 대본을 분석했다.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에선 상대적으로 적지만 전편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이하 <흑철의 어영>)까진 액션의 비중이 훨씬 컸다. 액션 신을 연기할 때의 접근법이 궁금하다.

= 액션 신은 녹음 전 시사를 할 때 대사만큼이나 호흡을 주의 깊게 체크한다. 물에 빠지거나 수영을 할 때, 산에서 내려오면서 점프를 하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지면에 몇번 닿았는지, 어디서 숨을 몇번 쉬고 어떻게 내쉬는지를 계속 체크하고 연습한다. 코난은 누구와 싸우기보다는 혼자 하는 액션이 많다. 그래서 그 호흡들을 하나하나 초 단위, 혹은 그보다 더 짧은 단위로 체크해둔다. 대본에 직접 ‘흣! 흣!’ 이런 식으로 호흡의 길이까지 체크해 써둔다. 그러지 않으면 까먹으니까 계속 보면서 될 때까지 하는 거다. 특히 <흑철의 어영>에선 물에 빠져 거의 숨이 차올라 죽을 듯한 호흡을 해야 했다. 내가 직접 물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실제 상황과 같은 소리를 낼지 숨을 참아보는 식으로 준비한다. 이번 극장판에선 액션의 강도가 세진 않았지만 코난이 몇번 점프하는지 세는 게 일이었다. 연기할 땐 코난과 내가 한몸인 것처럼 코난이 달리면 나도 달린다, 라는 감각으로 임한다.

- 과거로 돌아가 처음 코난 캐릭터를 맡게 된 과정을 듣고 싶다.

= 프리랜서로 활동한 지 1~2년밖에 되지 않은 시기였다. 때문에 <명탐정 코난> 시리즈의 주인공은 꿈도 꾸지 않았고 주변 인물로라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당시 PD님이 내게 코난 역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감사한 제안을 주셨다.

- TV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1기에서 코난을 연기한 최덕희 성우를 존경하는 선배로 자주 꼽는다. 선망하는 베테랑의 뒤를 잇는다는 건 설레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 최덕희 선배님을 정말 좋아해서 성우 공부를 할 때도 롤모델처럼 여기며 따라 했다. 그래서인지 최덕희 선배님이 그만둔 자리에 후임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몇번 있었다. 목소리는 완전히 다르지만 선배님의 연기를 들으며 연습하다보니 닮아간 부분이 있는 듯하다. 다만 코난을 연기할 땐 선배님과 차별화를 둬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고민 끝에 더 낮고 진중한 느낌의 코난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목소리를 체화하기 위해 정말 많이 연습했다. 지금에야 <명탐정 코난> 시리즈 녹음을 즐기고 있지만 처음엔 부담이 많이 됐던 게 사실이다.

- 코난의 목소리 톤을 잡을 때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 남자아이고 상황에 따라 코믹함과 진중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고려했다.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톤이 달라지는데 어른들과 이야기할 때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유쾌한 면이 강조되고 친구들과 있을 땐 더 차분해진다는 점을 신경 썼다.

- 추리할 때는 목소리에 무게감이 한층 더해진다.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을 보면서도 자주 느꼈다.

= 녹음할 때 항상 국어사전을 옆에 펼쳐두고 장단음을 찾아본다. 성우의 역할 중 하나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추리하는 장면에선 발음을 흘리거나 불분명하게 말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추리 장면에서만큼은 아는 단어라도 장단음을 다 표시해둔다. 일부러 그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 그 밖에 대본에 또 어떤 걸 표기하나.

= 나만의 표기법이 있다. 어디에 호흡을 넣고 끊어 읽을 것인지, 입 길이에 맞춰 말을 더 빨리 할 것인지 천천히 할 것인지를 나만의 기호로 표기한다. 코난이 당황한 부분에선 땀 한 방울 그려두는 식이다. 그래야 기억하기 좋으니까. 나만의 기호 표기를 해둔 대본이 아니라 깨끗한 새 대본을 보고 연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무척 불안할 거다.

- 일본 성우들의 연기나 감정적인 표현을 참고하기도 하나.

= 근 20년째 일본 성우들의 연기와 감정선을 보고 듣고 있는데, 한국 성우가 해야 할 일은 일본 성우들의 감성을 한국의 정서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나라마다, 언어마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과 감탄사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성우들의 연기를 참고하긴 하지만 그걸 모방하기보다는 어떻게 내 식대로 연기할지를 더 연구한다.

- <명탐정 코난> 극장판은 TV애니메이션과 달리 이름, 지명 등이 로컬라이징되지 않는다. 연기한 성우로선 이에 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미 한국화된 이름이 익숙해진 상황에서 일본 본토의 이름을 부르면 남 부르는 것 같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확실히 있다. “란 누나”라고 부르면 미란이를 부를 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이걸 가장 많이 체감할 때가 ‘기준이 형’을 부를 때다. “기준이 형!”이 아니라 “아무로 토오루!” 하고 부르면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갑자기 선을 긋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관객들이 이질감을 덜 느끼게끔 하는 게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이름이 입에 더 붙게끔 노력한다. 팬들에게도 몇번 이야기했는데 ‘미란이’와 ‘란’, 두 이름이 특히 어렵다. 게다가 “미란이 누나~” 하고 귀여운 척해야 해서 더 어렵다. (웃음)

- <명탐정 코난>을 보고 자란 팬들이 종종 성대모사를 한다. <명탐정 코난: 할로윈의 신부>로 <씨네21>과 X(구 트위터)에서 스페이스를 진행했을 때, 한 팬의 성대모사가 너무 똑같아 화제가 됐다.

=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성대모사를 할 땐 대상의 성격 묘사, 어미 처리나 톤 같은 것들을 잘 따라 하는 게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그분은 너무 똑같아서 ‘그래, 나 이렇게 말하긴 하지’ 싶더라. (웃음) 따라 하는 분들이 생길 정도로 내가 나만의 말투를 만들어냈구나, 그만큼 사람들에게 익숙해졌구나 싶어 뿌듯하고 감사하다.

- 올해로 데뷔 24년차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어떤가.

=사실 성우에게 24년이 그렇게 긴 세월은 아니다. 더 오래 활동한 선배님들도 계시고 또 성우는 얼굴과 목소리가 바로 매칭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인식되는 데에 적어도 10년 이상은 걸린다. 그래서 연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소속사에서 24주년 기념으로 유튜브용 콘텐츠를 하나 준비해주셨다. 그간 해온 캐릭터들을 사진만 보고 맞힌 뒤 목소리 연기하는 콘텐츠였다. 사실 그 캐릭터들이 다 기억날까 싶었는데, 하나하나 전부 떠오르고 O.S.T를 들을 땐 울컥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유튜브 댓글에서도 눈물이 난다는 댓글들이 있었다. 생면부지의 많은 분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내가 해온 일들이 생각 이상으로 유의미하다는 걸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양주란(공민정)의 엄마 서연숙으로 등장한 신이 화제가 됐다. 꾸준히 매체에 출연 중인데, 성우로서 연기할 때와 매체 배우로서 연기할 때 어떻게 다른가.

= 성우들은 대사 한줄을 말하더라도 대본을 보고 한다. 20년 넘게 해온 습관이 있어 짧은 대사라도 대본이 없으면 불안하다. 하지만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숙지한 채로 상대배우와 합을 맞춰야 하는데 생각처럼 적응이 쉽지 않다. 어려운 만큼 또 재밌다. 매체 연기를 계속 해나가기 위해 내게 주어진 숙제는 현장 상황에 잘 녹아들고 또 더 자연스러운 말투를 찾는 것이다. 코난과 오랜 시간 함께해와서인지 드라마에서 내 본래 목소리를 듣고 코난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은 그것도 내 일부라고 받아들인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 김선혜의 목소리로 들릴 수 있도록, 성우가 아닌 배우 김선혜로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좋아하는 <명탐정 코난> 시리즈

“<명탐정 코난> 8기의 <적과 흑의 크래쉬>. 검은 조직과의 스토리가 굉장히 흥미롭게 다뤄진다. 그 밖에 <명탐정 코난> 6기에서 <검은 조직과의 정면승부, 보름달 밤 두개의 미스터리>도 정말 좋아한다. 베르무트에게 맞서기 위해 코난이 장미 분장을 하고, 인성이가 도일이 분장을 하고 파티에 참석하는 내용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회차라 재밌게 관람했고 지금도 가끔씩 찾아본다.”

성우로서의 직업병

“종종 아이들의 발음을 지적한다. 그러면 ‘아 엄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 감정이 중요한 거지 내 발음 틀리는 게 중요해?’라는 반박이 돌아온다. (웃음) TV를 보다가도 미묘하게 틀린 연예인들의 발음이 신경 쓰인다. 작은 차이로 단어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니까 발음에 주의를 기울여온 습관이 실생활에서도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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