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이야기를 중간부터 보기 시작하거나 오랜만에 다시 접한 경우 혹은 원작이 있는 작품에 도전할 경우 느끼는 감정이 있다. 극 중 인물들은 이미 서로 아는 사이 같고 소개 없이 등장하는 누군가는 전편에 등장한 것 같은 찜찜함 말이다. ‘그땐 그랬지’식의 대화가 오갈 때면 추억할 ‘그때’가 가물가물하거나 없는 입장에선 소외감마저 들고 한다.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27번째 극장판인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이하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에도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이 종종 있다. 이번 편은 원작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을까. 몰라도 내용을 따라가는 데 무리 없지만 알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원작과의 연결고리를 소개한다.
1. 핫토리, 괴도 키드에게 뽀뽀할 뻔하다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에서 핫토리는 괴도 키드를 ‘징그러운 놈’이라고 칭하며 경멸한다. 원작 에피소드 <괴도 키드 vs 공명, 표적이 된 입술>에서 핫토리가 카즈하로 변장한 키드에게 입 맞출 뻔한 충격을 겪어서다. 이전에 신이치와 란의 뽀뽀 장면을 목격한 핫토리는 좋아하는 카즈하의 입술에만 눈이 가는 지경에 이른 상태다. 핫토리와 카즈하는 ‘요정의 입술’이라고 불리는 보석을 훔치러 가겠다는 키드의 예고장을 받은 박물관을 방문하고, 이미 현장에 있던 숨어 있던 키드가 다음 변장 상대로 카즈하를 선택하면서 이 사달이 난다. 란과 코난의 등장으로 결국 뽀뽀는 무마됐지만 카드에게 속아 넘어갔단 사실은 핫토리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2. 오키타, 오오카, 오니마루 삼인방과 핫토리의 인연은 검도 대회장에서
핫토리가 출전하지 않은 검도 대회는 심심하다며 투덜대던 오키타 소지, 핫토리를 보러 헬기 타고 홋카이도로 날아온 여인 오오카 모미지 그리고 후반 결투에 오키타가 데려온 강력한 검도인 오니마루 타케시는 원작 <사랑과 추리의 검도 대회>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오키타는 핫토리도 인정하는 검도 라이벌로 개구쟁이 고등학생이다. 오오카는 어린 시절부터 핫토리를 운명의 상대라고 믿고 짝사랑해온 재벌가 소녀이자 일본의 카드 게임 카루타의 귀재다(오오카의 카루타 재능은 극장판 <명탐정 코난: 진홍의 연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마 정중앙에 검은 점이 있는 오니마루는 전국 2연패를 자랑하는 최고의 검도 선수로 잠시 등장한다. 이들이 얽혀 있는 사건은 핫토리, 오키타, 오니마루가 출전한 검도 대회가 열린 체육관 뒤편에서 심판이 죽도에 목이 벤 살인사건이다. 핫토리를 응원하러 온 코난과 란이 죽은 심판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3. 북두성 사건에서 니시무라 경부와 처음 만나다
모리 코고로는 홋카이도 경찰의 니시무라 경부를 보고도 구면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코난의 말대로 이들은 ‘북두성 사건’에서 만난 적 있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는 원작은 <우에노발 북두성 3호>다. 모리 탐정과 란, 코난이 탄 홋카이도행 열차 ‘북두성 3호’에서 보석상이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니시무라 경부가 이 사건을 담당하면서 그는 코난 일행과 함께 범인을 찾는다. 범행이 추리 소설가이기도 한 코난(=쿠도 신이치)의 아버지 쿠도 유사쿠가 쓴 미발표 작품과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다.
4. 신이치, 영국의 빅 벤 앞에서 란에게 사랑을 고백하다
카즈하에게 고백할 장소를 물색하던 핫토리에게 란은 하코다테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 100달러의 야경이라고 불릴 만큼 멋지다고 추천한다. 그러자 핫토리는 하코다테산이 영국의 빅 벤보다 근사하냐고 되묻고 이때 란의 머릿속에는 신이치와 빅 벤 앞에서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간다. 이 장면은 <홈즈의 묵시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 영국에 오게 된 란은 신이치에게 그 사실을 전화로 자랑한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신이치로 돌아가 영국에 있던 코난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거기에 분노한 란은 화를 내고 만다. 자신의 태도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란을 만난 신이치가 급기야 빅 벤 앞에서 사랑을 고백하면서 팬들의 열광하는 명장면이 탄생했다. “넌 내게 아주 까다롭고 어려운 사건이야. 만약 내가 홈스라도 해결하지 못할 거야.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건 말이지!”(쿠도 신이치)
5. 핫토리와 카즈하의 유구한 고백 실패의 역사
우여곡절 끝에 핫토리는 카즈하에게 고백하지만 직전의 섬광탄 폭발로 일시적으로 청각이 마비된 카즈하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며 응수한다. 핫토리의 고백 실패 장면은 코난 팬들에겐 익숙한 장면이다. 서로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확인하지 못한 채 친구 사이를 이어오고 있는 둘은 오랜 세월 팬들의 마음을 애태웠다. 엇갈림의 역사는 <사랑과 추리의 검도 대회>를 포함한 다양한 에피소드에 걸쳐 쓰여왔다. <좀비가 둘러싼 별장>에서는 입을 떼려는 순간 좀비 떼의 등장으로 핫토리가 딴소리를 해버리고 <코난과 헤이지의 누에 전설>에서는 금빛 호수 앞에서 무르익던 분위기가 군인들의 출동으로 깨지면서 원점으로 돌아간다.
6. 그 밖의 자잘한 연결고리들
히가시쿠보가 만든 검 두 자루를 가져가겠다는 괴도 키드의 예고장에 코난이 그는 ‘빅 주얼’만 노린다며 의아해하는 장면이 있다. 괴도 키드는 그동안 세계 곳곳의 최고로 값비싼 보석을 전문적으로 훔쳐왔기 때문이다. 카즈하는 칼집에 검을 넣는 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데 원작에서도 그는 청각이 발달한 인물로 나온다. 경관으로 변장한 키드가 다친 아버지 나카모리 경감을 바라보는 딸 아오코에게 신경 쓰는 건 둘이 모종의 인연을 맺어와서다. 키드의 본모습인 쿠로바 카이토와 아오코는 소꿉친구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지만 연인은 아닌 애매한 사이다. 쿠로바 카이토가 키드인 걸 모르는 아오코는 키드 전담 형사인 아버지가 키드 때문에 힘들어하자 그를 미워한다. 비밀스럽고도 어려운 관계라는 점이 이 커플의 인기 요인이기도 하다.